어반스케치 수강(2)
어반 스케치 수업 중 나무를 그리는 과제가 있었다.
거실, 책상에 앉아 스케치 북의 흰 바탕만 쏘아보며 어찌 그려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과제를 하면 강사님께 검사를 받았는데, 내 그림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갸웃, 난감해했다. 어반 스케치라고 하기엔, 그렇다고 펜화라고 하기에도.... 라며.
펜드로잉의 큰 틀에서 어반스케치와 펜화는 같아 보이지만 표현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어반스케치는 스케치란 명칭처럼 그리는 대상의 얼개만을 대략적으로 묘사한다. 반면 펜화는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어반스케치는 단시간, 현장 드로잉을, 펜화는 장시간, 사진 드로잉을 주로 한다. (정확하진 않다. 대충 그렇다는 뜻)
강사님이 물었다. 과제하는데 평균 얼마나 걸리냐고. 난 자랑스럽게 답했다. 건 당 3~4시간 정도 소요 된다고. 강사님은 역시나 난감해하며, 내준 과제 들은 1시간 넘게 그릴 것이 아니라고 했다.(아놔, 오래 그렸다고 하면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어반스케치를 가르쳤는데 펜화를 그리고 앉았으니. 강사님 말마따나 어반스케치도 펜화도 아닌, 한마디로 어정쩡한 그림이 될 밖에.
그러고 보면 난, 어정쩡한 것투성이다. 외모부터 그렇다. 주변 지인들은 놀랍게도 날 못 생겼다, 단언하지만 착각이다. 애매하게 생겨 못 생겨 보일뿐. 나이도 그렇다. 백세 시대에 오십이니, 젊은것도 늙은 것도 아닌.(늙은 게 맞나?) 특히, 심각한 건 하는 일이다. 목공을 하겠다는 건지, 글을 쓰겠다는 건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건지, 애매하다 못해 헷갈린다. 삶이 이래도 되나 싶게, 무엇하나 명확하게 못 하는 무능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난감한 건 강사님이 아니라 나였다. (꼴랑, 그림 하나 그리면서 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스스로를 꼬집고 나니, 의심이 꼬물댔다. 삶 자체가 원래 불확실하고 어정쩡한 거 아닌가?
숱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거다!' 단번에 확신을 갖은 적이 있기는 했었나? 항상, 애매한 위치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명료해 보이는 걸 선택하지 않았던가. 선명했던 일 들이 금세 흐려지는 현실은 툭하면 불확실해지기 일쑤니 긴장을 늦추지 못 한 채 말이다. 어찌 보면, 불확실한 긴장은 삶을 굴러가게 하는 또 다른 동력은 아닐는지. 이도 저도 명확하게 못하는 무능이 아닌 막연하기에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가능의 동력. 목공을 해도 되고, 글을 써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되는.
축구에서 골키퍼가 떠올랐다. 페널티 킥이나 승부차기를 할 때 골키퍼의 위치는 항상 골대 중간이다. 좌, 우를 깔짝대기만 할 뿐, 중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야 어느 방향에서 공이 날아오든 막을 수 있으니까. 만약, 골키퍼가 골대의 좌측이나 우측에 치우 쳐 골을 막겠다고 한다면, 슈터와 마주한 긴장감 쩌는 설렘 속에 공을 막아내고 느낄 환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생의 다양한 설렘과 환희를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삶이 어정쩡해야 한다. (크으~! 개똥 같은 소릴 이리도 확신 있게 하다니, 반백살의 힘이다)
자! 생각을 정리했으니 이제 그려 볼까! 이도 저도 되는 어정쩡한 그림을, 하고 스케치북에 펜을 대려는데 뒤통수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지긋이 고개를 돌리니, 아내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팔짱을 낀 채 노려 보고 있었다. 청소 담당인 내가, 나 몰라라 2시간째, 그리는 건지 마는 건지 뭉그적거리고 있어 날이 섰나 보다. 아내의 눈빛에서 '이번만 봐준다!' 란 무언의 경고가 섬뜩하게 전해 졌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으니, 어정쩡의 폐단이었다.
무사히 과제를 마치고 강사님께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갸웃갸웃,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1시간 정도 걸렸다고 담담하게 답하자, 강사님은 '와! 놀라운걸!' 하시며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6시간 걸렸다고 실토했다. (칭찬에 눈이 멀어 사리분별을 못했다) 강사님께서는 그림을 좀 더 찬찬히 보시더니 여전히 애매하다 말하며 '이것도 나름 개성이다' 라고 수긍하는 어조로 덧 붙였다.
오오~! 개성이라니, 가슴이 설레었다. 뜻밖에 칭찬을 들으니 더욱 기뻤다.(칭찬이 아닌가?) 뭔가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듯 뿌듯하기까지 했으니, 역시! 어정쩡함이 주는 설렘과 환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