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파니 Mar 13. 2023

꿈은 죽지 않는다

불알친구에게





"음~! 여기 커피는 깊은 향과 풍미가 있단 말이야."

얼마 전, 산책을 하다 간만에 동네 근린공원을 들렸다. 자판기에서 무려 400원 상당의 고급 커피를 뽑아 들고 공원 한가운데 마련된 벤치에 앉아 향과 맛 그리고 자연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청명한 날씨와 한낮 따듯한 햇살에 눈이 절로 감겼다. 안락한 기분에 취해 의식이 아득해지려는데, 까르르! 식겁한 소리에 눈을 번뜩 떴다.


어느새 다가와 앉았는지, 20대 초반 여자 셋이 바로 옆 벤치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재잘대고 있었다. 안락한 기분을 좀 더 누리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자릴 뜨기 위해 남은 커피를 입안에 한껏 털어 넣었다, 뿜을 뻔했다. "우린 불알친구잖아!"  긴 생머리에 청순한 그녀들에게 이런 걸쭉한 표현이 들려올 줄이야. 자웅동체급 우정을 확인한 그녀들은 "평생 가자!" 외치며 더욱 크게 까르르르! 웃었다. 해맑은 웃음이 전염된 듯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저 풋풋한 모습을 보며 어쩌자고 쌍방울이 달린 그녀들을 상상하고 마는지. 떨치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 괴랄한 형상을.


몸서리치며 공원을 나섰다. 평상심을 되찾자 세월에 묻혀 희미해진 얼굴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쌍방울 그녀들처럼 평생 갈거라 믿었던 친구 A였다.


30대 초반, 2년 넘게 꿈만 좇던 나와는 달리, 창업이 꿈이었던 A는 숯불통닭집을 열었다. 그래서일까.

"쯧, 사람이 포기를 몰라!" 지인들이 내 꿈에 혀를 찰때, A는 통닭을 정성껏 요리해 주며 가슴 찡한 말을 건넸다. "해봐, 될 거야."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로 불러 벅찬 위로를 해주니, 너무도 뭉클한 마음에 물었다.







"이거... 유통 기한 지난 닭은 아니지?"  


하! 실소를 터뜨린 A는 닭다리를 내 손에 쥐어 주며 답했다.


"죽지 않아."


농담이겠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면 어떠하랴. 차가운 현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A의 따듯한 통닭 덕분이 아니던가. 훈훈하면서도 가끔 설사를 할 때면 혹시나 하는....


합리적 의심 속에 난, A의 조력이 헛되지 않게 꿈을 향해 더욱 박차를 가했다. 드디어, 포기를 모른다는 야유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보란 듯! 꿈을 접었다. 안 되면 끝이다, 다짐했던 공모전에 낙방하고 능력이 없음을 냉정하게 인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와~! 정신 차렸구나!" 환호하며 축하해 주었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니 어찌나 기분이 더럽고 좋던지.


A에겐 볼 낯이 없어 오라는 통화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다. 어느 늦은 저녁, A가 통닭을 싸들고  내가 사는 옥탑방에 찾아왔다. 평상에 앉아 달빛아래 소주잔을 기울였다. 다른 친구들에겐 "그깟 꿈이 뭐라고, 후회도 미련도 없다!" 호기롭게 말했지만 A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 몸처럼 붙어 다닌 사이인지라 내 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A는 가게에서 벌어진 재밌는 일들만 얘기할 뿐 구태여 위로하지 않았다.  그의 속 깊은 배려에 나 역시 장단을 맞춰 한껏 떠들며 웃었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이 헛헛해지는 건 왜인지. 꼭지가 돌게 술이 오르자 텅 빈 마음에 금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내, 꾹꾹 눌린 감정이 눈물, 콧물을 타고 세상 찌질하게 터져 나왔다. 오늘만 산다! 소주를 병째 들이켜는 날 묵묵히 바라보던 A는 닭다릴 지그시 쥐어 주며 말했다.


"죽지 않아."


어스름한 달빛아래, 씩~웃는 A의 표정과 닭다리가 유난히 빛났다. 멀뚱히 눈만 꿈벅이던 난, 똥꼬에 털이 나는 불상사도 잊은 채 울다가 웃었다. 다음날, 퉁퉁부은 눈과 코에서 입, 다시 뺨으로 번진 허연 콧물 자국을 보며 쪽팔려 죽을 뻔했다.


다음 해, A도 가게문을 닫았다. 외진 주택가 골목에 자릴 잡다 보니 손님이 뜸한 탓도 있었지만, 재개발 퇴거가 컸다.  영업 마지막날, 정시에 가게문을 닫고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남은 음식재료와 술을 최대한 소진해야 됐기에 골뱅이소면 무침에 뻔데기탕까지 그동안 맛볼 수 없던 메뉴가 줄을 이었다. 안주빨을 세우며 정신 놓고 술을 마시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겼다. 거한 취기에 피로해진 우린 한 순간 침묵했다. 눈을 내리 깔고 잔을 매만지던 A는 소주를 단번에 삼키며 크으~! 미간을 짙게 구겼다. 보증금은 임대료로 다 까먹고 은행 빚만 남았으니,  씁쓸함이 깊게 밴 저 표정이 소주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A는 화장실을 간다며 가게를 나섰다. 잠시 뒤 돌아온 그의 눈가가 촉촉했다. 마치 눈물이라도 흘린 것처럼.

기회다! 찌질하게 울었던 꼴사나운 흑역사를 나만 가질 순 없을터, 똑같이 해줄 꿍꿍이로 닭다릴 집어 들고 측은지심을 다해 물었다.


"에휴.... 힘들지?"

"뭐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A가 되물었다. 아닌 척 하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독촉했다.


"괜찮아, 맘껏 울어도 돼."

"왜 울어?"


A는 뭔 소리냐는 듯 내 얼굴을 말똥말똥 바라봤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당황한 난, 따지듯 말했다.

 

"빚 지고 폭삭 망했잖아!"


울려야 한다는 절실함에 노골적으로 말해 미안했지만 확신했다. 그가 화장실에서 남몰래 슬퍼했음을.

A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빚 갚고 다시 하면 되지."


크아~!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A의 눈에 눈물이 배었다. 촉촉해진 그의 눈가를 맹하게 응시하며 꼬옥 쥐고 있던 닭다릴 떨구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폐업으로 몰린 암울한 상황에도 명쾌하게 삶을 긍정하는 A가 실로 존경스러웠다. 꿈이 미완으로 끝난 건 매한가지인데, 울고불고 진상을 부렸던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했다. 그러고 보면, A와 불알친구가 되었던 건 이토록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상반된 극끼리 강하게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마흔에 접어들며 A와의 우정도 서서히 자력을 잃어 갔다. 이 시기 난, 아내와 함께 토탈공예 공방을 창업했고, A는 여전히 재기를 노리며 투 잡을 뛰었다. 서로의 삶이 녹록지 않았기에 만남은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공방을 열고 삼 개월 무렵 A가 찾아와 뒤늦은 축하를 해주었다. 먼 길 마다 않고 와준 반가움도 잠시, 그는 오후 알바를 가야 한다며 한시간도 안 돼 일어섰다. 배웅하는 정류장에서 A는 3년 안에 재기할 거란 포부를 힘 있게 밝히며 물었다.


"다시 할 거지?"


그가 듣고자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지만 이제와 무슨.... 쓴웃음 지으며 말을 아꼈다. 때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섰고 머뭇거리던 A는 "해봐, 될 거야." 급하게 말을 건네곤 재빨리 승차했다. 그는 차창너머로 히죽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도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이며 엄지를 들었다. 이후로 만남 없이 통화만 근근이 하던 어느 날, A는 바뀐 연락처를 알리지 않고 소식을 끊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싶다가도 불알친구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서운함에 마음이 쓰렸다.


그와 깜깜무소식으로 어느덧 5년이 흘렀다. 먼저 죽는 놈 관뚜껑 닫아 주자던 우리의 다짐은 비록 공수표가 됐지만, 함께한 추억은 평생 갈 것이기에 남은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그리고 해봐 될 거야란 그의 당부대로 다시 꿈을 펼친 지금, 혹여 A를 만나게 된다면 정류장에서 하지 못한 대답, 이 글과 그림을 보이며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나, 죽지 않았다!"

 



 

이전 01화 나도 살아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