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다이죠부? 괜찮아?
03.
오전 여덟 시. 오타루의 가스등은 아직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현은 커피숍 셔터를 올렸다. 냉기가 그의 허리를 스치고 들어왔다가 원두 볶는 향에 밀려 물러났다. 커피 머신의 예열음이 낮게 깔리고, 유리 공방의 화덕에서 숨 같은 열기가 '쉬익' 하고 새어 나왔다.
'어젯밤 봤던 모습을 말해야 할까?'
평소의 미오와 달리 어딘가 빛나는 모습이지만 너무나 빠른 발걸음.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그녀의 뒷모습. 이현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충분한 이유 없는 관찰은 상대방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으니까. 대신에 그는 오늘의 일본어 인사를 연습했다.
“이랏... 이랏샤이... 이랏샤이마세… 이랏샤이마세... 어서 오세요.”
발음을 몇 번이고 굴리던 이현의 표정이 굳어 있자, 카운터 안쪽에서 지켜보던 미오가 웃었다.
“혀를 너무 세게 말면 어색해져요. 힘을 좀 더 빼고 자연스럽게, 숨을 내쉬듯이.”
미오는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 이현에게 건넸다.
“목을 먼저 풀어요. 그리고 오늘은 원두 혼합 비율도 조금 바꿔 보죠. 겨울에 어울리게, 고소한 맛을 아주 살짝만 더 높여서.”
그녀의 말투는 밝았지만, 손끝은 조심스러웠다. 컵 가장자리를 닦는 움직임이 유난히 느렸다. 밤의 표정이 낮의 손끝에 아직 남아있는 듯 했다. 이현은 그 사실을 알아채고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오하요-! 오늘도 굶지마!”
그 때 카페 문이 철컥 열리며, 누군가 외쳤다. 덮밥 포장가방을 양손에 든 한 청년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비니를 쓴 채 장난기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직원? 미오가 말했던 한국인?”
“응… 서울.”
“오케이. 난 '이츠키'라고 해. 축구선수 손흥민. 굿.”
이츠키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더니,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현은 얼떨결에 그와 악수를 나눴다.
“주문한 덮밥 맞죠?”
미오의 말에 이츠키가 테이블 위에 포장된 음식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맞아. 연어 두 개, 가리비 하나. 그리고...”
그는 이현을 힐끗 보더니 눈을 찡긋했다.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로 와사비는 조금만.”
“와사비… 조금.”
이현이 따라서 말하자, 이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어, 내가 좀 가르쳐줄게. 레슨비는… 사탕.”
“사탕?”
“응. 가게 카운터 옆 잔에 있는 알사탕. 다 떨어지면 네가 채워.”
그의 가벼운 농담에 공방의 열기와 커피 향이 겹쳐, 실내 공기에서 갑자기 사람이 사는 냄새가 더해졌다.
한산해진 브레이크 타임. 미오가 포스기 옆에 작은 노트를 놓았다. 표지에는 연필로 ‘현—일본어’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의 단어는 '오츠카레사마.' 뜻은 한국어로 '수고했어요.' 그리고 '다이조부?' 뜻은 '괜찮아요?'”
이현이 따라 말하자 미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발음 괜찮은데요. 이현 씨는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 있어요."
"아! 그렇죠? 아직 멀었어..."
"아니요. 전 그 억양 좋아요.”
“왜요?”
“방금 말한 '다이조부'가 어딘가 진짜로 괜찮냐고 묻는 것처럼 들려서.”
그 말에 이현은 멈칫했다.
'괜찮냐고 묻는 사람과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밤이 지나가야 할까.'
미오는 일본어 연습 노트 아래 한 줄을 더 썼다.
'온천. 온천물처럼 천천히...'
“이현 씨. 말은 온천물처럼 뜨거울수록 천천히 해야 해요.”
“그럼. 차가운 말은요?”
“듣는 사람에게 차가운 말은 가능하면 하지 말아야죠.”
미오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지나가는 바람에 맡겨요.”
오후 두 시. 유리공방에서 장인이 색유리를 불 위에 달구고 있었다. 가느다란 관의 끝에서 말랑해진 유리가 장인이 내뱉는 숨결에 맞춰서 부풀었다. 장인이 관을 돌릴 때마다 유리는 지구가 잡아 당기는 힘에 맞춰서 모양을 바꿨다.
이현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카메라 셔터를 조용히 눌렀다. 다른 사진을 더 찍으려는데 렌즈에 미오의 모습이 비춰 보였다.
“예쁘죠?”
미오가 유리 조각들을 정리하며 물었다.
“응. 단단해 보이는 유리가 이렇게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섬세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마음도 그래요. 온기를 잘 모르는단단한 마음들도 충분히 뜨거운 시간들을 겪은 뒤에는 언젠가는 예쁜 모양으로 굳어요.”
"그런가요?
"그럼… 모양이 잡히기 전에 깨지는 건?”
“다시 녹이면 돼요.”
미오의 대답은 짧았고 정확했다.
'지예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나의 마음도 충분히 뜨거웠을까?'
이현은 미오의 말에 갑자기 지예와함께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다음날 이현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만든 김밥과 달걀말이를 도시락통에 담아 왔다. 명분은 일본어 과외 선생님에 대한 보답이지만 사실은 미오에게 건네려는 작은 용기였다.
“이거 점심에 같이 먹을래요?”
미오가 뭐라 답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이츠키가 덮밥 가방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배고픈 사람 손!”
순간의 혼란 속에 이현은 도시락 통을 카운터 위에 가만히 올려놨다. 그걸 본 이츠키가 집어 들었다.
“오, 뭐야! 이 도시락은?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고마워!”
“아… 그건...”
이현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이츠키는 젓가락으로 김밥을 하나 집어 먹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맛있어! 한국의 엄마 맛?”
“아니,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이현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도시락의 주인이 따로 있을 수도 있는데 이츠키가 훔쳐 먹네요?"
미오는 어깨를 살짝 떨며 웃었다.
“훔치다니! 문화 교류!”
이츠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외치고 한 조각을 미오에게 내밀었다.
“좋아요. 문화 교류!”
미오도 김밥 한 조각을 받아 입에 넣은 뒤에 조용히 씹었다.
“음. 소금이 살짝 많아요."
"아! 그렇죠. 요리를 자주 하는 게 아니어서."
이현은 무안해져서 말했다.
"아니요. 그래도 누군가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맛...”
미오의 그 한마디에 이현은 귓불이 뜨거워졌다. 머쓱함이 부끄럼으로, 부끄럼이 다시 웃음으로 넘어가는 시간. 이현의 도시락은 그들 사이에 작은 추억으로 남았다.
퇴근 무렵, 이츠키가 제안을 했다.
“오늘밤, 테미야 공원 가자. 하이쿠 동호회가 작은 지역 축제를 하거든.”
미오가 고개를 돌려 이현을 봤다.
“끝나고 잠깐 바람 쐬러 갈래요?”
“응. 그래요.”
테미야 공원은 언덕 위에 있었다. 아직 겨울의 모습이 남아 추웠지만 그래도 곳곳에 눈이 녹아 있었다. 해가 지며 바닷바람이 불었다. 봄을 준비하려는 듯이 나무에 조금씩 싹이 돋아 있고, 그 사이로 초승달이 얇게 걸려 있었다. 벤치 주변에 놓인 종이등이 바람에 흔들렸다. 동호회 사람들은 각자 쓴 하이쿠를 작은 종이에 적어 나무에 매달고 있었다.
“읽어봐요.”
미오가 그 중에 한 장을 떼어 이현에게 건넸다.
"눈 녹은 자리 / 물소리 먼저 와서 / 봄을 앉힌다."
“예쁘네. 이현 씨도 하나 써봐요. 한국식으로 짧게.”
이현은 망설이다가 연필을 들었다. 한글로 한자 한자 정성껏 적었다.
"흰 길 끝에 / 돌아보게 되는 사람 / 눈을 녹인 따뜻한 발자국"
미오가 이현의 시를 조용히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내용이야?"
옆에 있던 이츠키가 미오에게 묻자, 미오가 일본어로 번역해 줬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진심이 담겨 있네.”
이츠키가 박수를 ‘짝, 짝’ 쳤다.
세 사람은 노점에서 산 ‘잔기(홋카이도식 닭튀김)’와 따끈한 어묵을 나눠 먹었다. 김이 올라오는 흰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손바닥이 금세 따뜻해졌다. 그때 멀리서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둘이 다가왔다. 그들 중 한 명이 미오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지?”
남자가 미오에게 물어보는 듯 말했지만 이현은 그 말에서 묻어있는 강요하는 듯한 어감을 느꼈다. 미오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내일 저녁에 데리러 와.”
남자 중 한 명이 얇은 봉투를 내밀었다.
“확인해. 이번 달 거.”
머뭇거리는 미오에게 남자는 봉투 하나를 손에 쥐여주고 빠르게 뒤돌아 갔다. 그의 행동과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누구예요?”
이현이 물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요.”
미오가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해 보이진 않았는데.”
“그냥 좀 아는 사람이에요.”
이츠키가 눈치보다가 일부러 밝게 말했다.
“저쪽에 하이쿠 더 볼래?”
“난 먼저 가볼게요. 내일 가게에서 봐요.”
미오가 말을 한 뒤 돌아섰다. 그녀 손에 들린 봉투가 바람에 흔들렸다. 이현의 시선은 그 사각형의 종이에 꽂혔다.
'연인? 거래? 협박?'
이현의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는 수 많은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쫓아가지 않을 거에요?”
이츠키가 이현에게 물었다.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잘했어요.”
“왜요?”
“사람은 때로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야 할 때가 있으니까.”
이츠키가 오뎅 꼬치를 종이컵에 꽂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언젠가, 미오도 한번쯤 뒤돌아 보고 싶은 때가 생길지도.”
다음 날 아침, 미오는 평소처럼 가게에 나타났다. 앞치마, 단정한 머리매무새와 조용한 미소. 이현은 어제 일을 꺼내려다, 먼저 그녀의 손등을 보았다. 선뜻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작은 상처들이 얕게 아물어 있었다.
“괜찮아?”
“다이조부.”
미오가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정말, 다이조부.”
“그 봉투는…”
그녀가 컵을 닦던 손을 멈추고 이현을 바라보았다.
“이현 씨. 지나친 상상은 상처를 만든다.”
그 말은 단호했지만, 끝에 약간의 떨림이 묻었다.
“미안.”
“사과할 필요까진 없어요.”
미오는 잠깐 숨을 고르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꾸며진 내가 아닌, 온전히 내가 되고 싶어.”
그 말은 오타루 운하의 한가운데 던져진 돌멩이처럼 조용히 떨어져, 이현의 마음에 동그란 파문을 계속 만들었다.
“내 눈엔 미오는 언제나 미오 그 자체였던 것 같은데요. 내가 그렇게 되도록… 옆에 있을게요.”
미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카운터 아래 서랍에서 무언가 꺼내 이현에게 건넸다.
“아니, 이건…?”
“한국라면. 손님이 두고 가서, 혹시 좋아할까 해서요.”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던 미오다웠다. 이현도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 문화 교류?”
“응. 문화 교류.”
카페의 휴일을 앞둔 전 날. 이현은타구미 씨에게 빌린 차를 돌려주기 위해 퇴근 뒤에 비에이에 들렸다. 민박집 문을 열자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지 고양이 미쿠가 ‘냐옹’ 하고 이현을 보면서 울며 다가왔다.
이현이 오기 전 타구미는 난로 앞에 앉아 미쿠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이현. 오늘 얼굴은… 눈을 녹인 얼굴이네.”
“네?”
“사람이 오해하면 눈이 다시 얼거든. 근데 넌 오늘,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애쓴 눈빛이야.”
이현은 어제와 오늘 미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타구미씨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영웅이 되려고는 하지 마.”
“영웅이요…?”
“영웅 대신 그냥 미오 곁에 같이 있어. 곁이되는 것만으로 힘든 시간들을 같이 흘려 보낼수도...”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노래들처럼 낮고 깊게 들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여긴 눈이 내리고 녹는 속도에 맞춰 살아. 사람의 마음도 그래.”
이현은 창밖을 보았다. 달이 낮게 걸려 있었다. 들판 위에는 얕은 물막이 달빛에 반짝였다. 낮동안 녹은 눈이 밤에 얇게 얼어붙어, 세상이 투명한 유리판이 된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타구미 씨, 저… 실은 아직도 두려워요.”
“사실 나도 지금은 두려워서 누구의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살아왔을 수도. 너와 그 전에 미오가 여기에오지 않았다면 더 그랬겠지. 내일 아침에 오랜만에 눈을 같이 치우자.”
“네.”
"그리고 차는 당분간 그냥 써."
미쿠가 이현의 발목에 머리를 비볐댔다. 따뜻한 체온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곁이 되는 법. 눈을 치우고, 라면을 나누고, 말하지 않는 무언가를 지켜주는 일.'
그날 밤. 이현은 민박집 공용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오타루의 겨울은 말이 적다. 대신물과 빛으로 말한다. 어떤 이는 봉투를 숨기고, 누군가는 도시락을 숨긴다. 숨기는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때로 숨겨야 살아진다.’
마지막 줄을 적으며, 그는 펜을 내려 놓았다. 이현은 아직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버리지도 않았다. 창 밖에서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붕의 처마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고드름의 키가 한 뼘 더 짧아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