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

by 달여울 작가

04.

봄이 다가오려하자 오타루 항구 쪽 바람이 달라졌다. 겨울엔 날카롭던 공기가, 이제는 미세한 소금기를 품고 있었다. 카페 앞 자갈길에는 비가 스며든 자국들이 고양이 발처럼 군데군데 찍혀 있었다.

이현은 가게 문을 열며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바닷바람과 갓 갈린 원두 향이 뒤섞였다.

오늘 따라 카페에는 손님이 드물었고, 미오는 카운터 안에서 가벼운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시선이 가끔 창밖 골목 끝으로 흘렀다. 이현은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아직 묻지 않았다.

'미오의 시선 끝에 무엇이 있을까?'

오후 세 시 무렵, 한 낯선 남자가 가게 문을 열었다. 검은 양복, 번들거리는 머리카락과 좁은 눈매.

이현이 손님 맞이 인사를 하려는 순간, 남자가 미오를 불렀다.

“미오 씨.”

짧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행주로 컵을 닦던 미오의 손이 순간멈췄다.

“일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왔어. 오늘 밤, 스스키노로 와. 사장님이 기다려.”

이현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목소리의 서늘함만 느꼈다.

“손님, 주문하시는 게 아니면 그만 나가주시죠.”


남자가 천천히 이현을 바라봤다.

“외국인?”

“네.”

“그럼. 남의 일에 끼지 마. 다친다.”

미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남자가 문을 나설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문이 닫히자 공방 화덕의 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퇴근 후, 이현은 미오를 태운 차를 따라서 삿포로의 스스키노 거리로 향했다. 비 냄새가 퍼진 골목 사이로 네온사인이 물결처럼 깜빡였다. 그 위로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웃음과 욕설들이 뒤섞여 덮고 있었다.

이현은 그 사이에서, 낮에 가게에 왔던 남자가 다른 양복 차림의 사내들과 서 있는 걸 보았다. 미오는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발 앞에는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담배 연기 속에서 그들의 웃음은 더 음습한 느낌을 냈다. 이현은 그들과 술집 간판을 향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속의 네온은 번져 있었고, 남자들의 얼굴은 형광등 빛에 잠시 드러났다. 이현의 심장 박동이 커졌다.

'미오가 위험에 처해 있는 건가?'

늦은 밤까지 기다렸지만 미오는 보이지 않았다. 이현은 술집 입구를 지키던 남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대로 술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미오 씨. 미오 씨."

이현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때 술집 안 어떤 방이 잠깐 열리면서 화려한 옷과 치장을 한 미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이현을 그 방으로 달려갔다.

"뭐야. 이 자식은.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낮에 미오를 찾아왔던 남자를 포함해서 남자 여러 명이 우르르 이현에게 몰려 들었다. 이현은 그들을 떨쳐내고 미오에게 가려 했지만 놈들의 주먹이 배와 얼굴로 사정없이 날아 들었다. 그는 술집 앞으로 끌려 나온 뒤에 짐짝처럼 바닥에 던져졌다. 쏟아진 몰매에 온 몸이 욱신거렸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낯선 일본에서 그가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명. 차로 즉시 비에이로 돌아왔다. 이현은 민박집 현관에서 젖은 신발을 벗으며 타구미 씨를 불렀다.

“타구미 씨. 미오가 위험해요.”

이현은 스스키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낮과 밤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타구미는 잠시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 않았다.

“키타노카제.”

“…네?”

“스스키노의 유흥가와 고급 술집을장악하고 있다면 그 녀석들은 '키타노카제' 파의 조직원일 거다.”

타구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직 폭력배? 설마 야쿠자요?"

타구미 씨는 이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놈들이 미오 씨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죠?”

“아마. 술집 VIP를 접대 할 떄마다 미오가… 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지 마. 그건 네 일이 아니야.”

“내 일이 아니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네가 잘못 나서면, 미오가 더 다칠 수도 있어. 내가 좀 더 알아볼테니 일단 기다려.”

이현은 타구미 씨가 한 때 야쿠자였다고 했던 미오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 날, 가게에 먼저 와 있던 이츠키가 이현을 맞았다.

“어제 삿포로 술집에서의 일. 얘길 들었어.”

“타구미 씨가 얘기했구나. 이츠키 씨도 미오 씨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어?”

“다 안 건 아니지만… 대충. 이현 씨는 나서지 마요. 어차피 여기 사람도 아니고.”

이츠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오가 어떤 상황인지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두 모르잖아."

'여기 사람도 아니고.'

이현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츠키의 말이 맞았다. 게다가 그 말 속에는 미오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이현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진심도 함께 있었다. 둘은 카운터에 나란히 서서 갓 내린 커피향 속에 침묵을 나눴다. 미오는 점심이 지나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했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래요?”

한산한 시간, 미오가 먼저 제안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항구 쪽으로 걸었다. 배들이 정박한 부두에는 갈매기들이 모여 있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멀리서 바다 냄새가 진하게 몰려왔다.

“이현 씨 얼굴 이리 보여줘요.”

미오는 가방에서 약을 꺼내어 어제 다친 이현의 얼굴 위로 조심스럽게 발라줬다. 그리고 입김을 불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어제… 그 사람들이랑 무슨 관계예요?”

미오의 동작을 잠시 멈췄다.

“그 사람들이 험하게 대했을 텐데 괜히 나섰다가 큰 일 날 수 있어요?”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미오 씨. 오빠 병원비 때문이에요?”

“네. 저들과 계약이 되어 있어요.”

미오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짧게 대답했다.

“그럼. 내가.”

“안 돼요.”

미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해요. 이 일에당신까지 엮이면…”

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바다를 바라봤다.

“저기 보이는 바다. 이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만 한 번 밀려들어가면 끝없이 깊어요. 거기까지는 오지 마세요.”


돌아오는 길,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첫 빗방울이 미오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빨리 돌아가죠.”

비는 금세 굵어졌고, 골목 바닥의 물 웅덩이가 빠르게 몸짓을 키웠다.운하 위로 비가 그물처럼 흩어졌다.

이현은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서 미오의 머리 위에 씌워주며 말했다.

“우산이 없어도... 당신을 혼자 두진 않을 거예요. 같이 비를 맞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미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 말,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손끝에 부딪혀 부서지는 빗방울처럼 작은 떨림이 있었다. 이현이 잡은 미오의 손으로부터 온기가 전해져 왔다.

이현이 다녀간 그날 밤, 타구미는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낡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명함과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젊었고, 옆에는 웃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타구미는 한참 사진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오랜만이네. 다시는 연락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스키노에서 여자 애 한 명을 빼 올거야. 날 좀 도와줘야 겠어."

타구미는 수화기 너머의 남자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부탁했다.

"타구미. 그게 어떤 일이지 알잖아. 여자 애 한 명 때문에 놈들과 전쟁을 할 수는 없어."

"키타노카제로부터 그 애를 구하는 건 내가 할거야. 그 뒤로 놈들이 그 애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않게만 뒤를 부탁해. 그리고 그 애의 오빠가 갈만한 병원도 알아봐 줘야 겠어.”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고 살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들도 생각해야지?"

"생각이 좀 바뀌었어."

"알겠어. 이걸로 내가 자네에게 진 빚은 더는 없는 걸로."

상대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타구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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