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지망생, 이종환
어젯밤, 후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DJ 이종환 별세!”
다큐멘터리 작가 김연옥이 1982년에 쓴 글을 보면,
"이종환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그는 마흔다섯이다.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치켜 올라간 눈꼬리, 유난히 큰 콧대. ‘한밤의 음악 편지’, ‘팝 튠 퍼레이드’,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그가 한창 날리던 시절에 맡았던 프로들을 얘기할 때는 메모를 해가며 밑줄까지 쳐가며 열심히 설명하였다. 임국희, 조영남, 송창식 같은 이름에는 더러 동그라미를 치고, “세환이는 형주가 데려오고”, “4월과 5월은 제 발로 찾아오고”, “학비만 대주면 노래하겠다”는 경기여고를 막 졸업한 양희은을 만난 사연, 미 8군에 있던 신중현을 잡은(?)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였다."(MBC 가이드 1982년 7월호)
이종환은 1964년 MBC 라디오 피디로 입사하였다. 1970년에 음악다방 쉘부르를 경영하다가, 가수 이수미와의 스캔들로 1973년 여름에 MBC를 떠난다. 그 뒤 8년 동안 방송을 떠나 있었지만, 언젠가는 “꼭 전화가 올 것이다”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은 덕에 1981년 4월, 다시 MBC의 마이크를 잡는다. 굳이 선후배를 따지자면, 까마득한 후배 뻘 되는 어린 동료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깍듯한 인품을 가졌다. 가수들에게는 섬뜩한 카리스마를 지닌 듯 하지만…
그가 늘 ‘우리 가게’라 부르던 쉘부르는 많은 통기타 가수들이 스타가 되기 전에 거쳐 갔던 곳이다. ‘이종환 사단’이라는 호칭을 그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니언스, 이수미, 김정호, 홍민, 위일청, 강승모, 석찬, 쉐그린, 이영식, 이수만, 채은옥, 강은철, 김인순, 김세화, 현혜미, 권태수, 남궁옥분 등이 그의 ‘사단’이었다. 송창식, 이장희, 윤형주, 김세환, 이문세와 MC 허참 등도 이종환을 거쳐 갔다.
한때는 34명쯤의 꿈 많은 젊은이들이 쉘부르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들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논하고 싶고” “그가 손을 대면 모든 게 정돈되는” “무언가 힘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1989년 미국 LA로 건너가 미주 한인방송에서 3년 동안 사장을 하다가 가수 이장희에게 경영을 넘기고 1992년 다시 MBC로 복귀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변덕스러운 날씨 같은 것 , 2003년 ‘이종환의 음악 살롱’ 프로그램 진행 중, 음주 방송 논란으로 다시 2년 동안 방송을 떠나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쉘부르 경영 시절에도 저녁시간 짬 내어 가게에서 “병 둘, 마른안주!”하며 직접 주문도 받고, 손님들이 건네는 맥주잔도 사양하지 않았던 애주가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는 술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다. 언제나 음악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걸 두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영예만큼이나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 살이. 폐병을 앓고 있으면서 지난해 11월까지도 방송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영원한 DJ 이종환.
1982년, 그는 김연옥 작가와의 대담에서, “귤밭 갈고, 낚시하며, 사진 찍으러 다니는 농사꾼 이 꿈이다.”라고 말한다. 농사꾼 지망생, 이종환. 이제야 흙 곁으로 갑니다.
이종환 선배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마이크’를 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