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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n 25. 2020

가요계의 부부 듀엣

터질 거예요 내 가슴은

터질 거예요  가슴은   

잊힌 노래를 듣는 일은 잊힌 시절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얼마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터질 거예요 내 가슴은/당신이 내 곁을 떠나면/ 나는 그대 못 잊어하며/ 날마다 생각할 거야”


 듀엣  <김씨네>의 ‘터질 거예요’의 가사다.  1970년대의 노래이지만, 지금 들어도 좋다.   <김씨네>는 부부 듀엣 그룹이다.  당시 최고의 그룹사운드,  <트리퍼스>의 보컬 출신인 김효원은  김동자와 혼성 듀엣 <김씨네>를 결성하는데, 데뷔곡 ‘터질 거예요’가 빅 히트를 터트리며 인기 듀엣으로 급부상한다.  둘 다 서구적인 얼굴에다 키가 훌쩍 해 옷태가 좋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하모니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사랑의 이야기’ 등의 5집 음반까지 내며 오랫동안 활동을  한 그들은  1985년 12월에 이혼을 발표하고 팀은 자동 해체되는데 가요계의 소문난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었기에  팬들의 충격이 컸다.

 

부부 듀엣 <김씨네>의 '터질  거예요'는        1970년대 빅 히트를 터트리며 급부상한다.

   1970년대에는 남녀가 함께 듀엣을  팀이 많았는데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남녀가 같이 활동을 하는 이유만으로도 대중의 시선이 따랐던 때다또한 젊은 남녀가 함께 노래 활동을 하다 보면 핑크  스캔들도 만들어지게 되고  부부의 연을 맺는 경우도 많았다가수이기 이전에 젊은 남녀들이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초의 혼성팀 고복수, 황금심 부부

  부부 지연을 맺은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팀은 <고복수황금심>이다이들이 함께 노래한 ‘장한몽 1950년대식 ‘사랑의 정서 상징하는 노래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탐나더냐?” 외치는 가사는 아직도 기억하는 이가 많다공식적으로 팀을 결성해 음반을 발표했던 최초의 혼성 듀엣은 1968년의 <서수남과 현혜정>이다 팀은 결성  결혼까지 골인했지만, 3개월 만에 이혼한다현혜정은 원로가수 현인의 딸이다

 

부부 듀엣 <바블껌>은 포크송을 부르며 활동한다.

  1970년대 캠프송의 지존으로 평가할만한, 부부 듀엣으로 <바블껌> 있다.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그들의 대표곡인데비록 4년도  되는 활동을 했지만 인기가 많았다.'짝사랑’ ‘새색시 시집가네’ ‘토요일 밤에’등 우리 귀에 친숙한 포크송의 오리지널 가수는 사실 <바블껌>이었다.  


  다음으로 1980년에 결혼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있다당시 인기가  있던 정태춘과 신인 박은옥의 결혼을 소속사가 반대해 회사와 계약 파기까지 이르게 된다이로 인해 정태춘은 경제적 파탄의 생활을 하게 되지만,  1984년에 그들이 함께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 재기하고  노래는  아직도 사랑을 고백해야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노래다.  

정훈희, 김태화 부부 듀엣

  1989 <정훈희, 김태화>는  ‘우리는 하나라는 음반을 발표해 10만여 장의 판매를 올린다이들 부부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별 다시 재결합을 하여 부산 인근의 기장 해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부부 듀엣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함께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조갑경과 홍서범> 같은 연예 소속사  출신이다조갑경의 신인 시절에 홍서범이 포장마차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강한 ‘충동 느껴  키스를 했다고 한다그들은 3명의 자녀를 두었고, 1990년에 발표한 ‘내 사랑 튜유 부부의 지정곡이다.

 

부부 듀엣의 대명사 조갑경, 홍서범

   1970년대 초에 미 8군 무대에서 음악을 시작한 <김씨네>의 김효원은  <드래곤스>와 <트리플스>에서 보컬로 활동하다, 김 패밀리를 결성한다.  초기에  7인조로 시작한  그룹은 기동성의 불편함으로 인해  부인인 김동자 둘이서만  활동할 때가 많았은데,  1976년 공식적으로 <김씨네>를 결성한다.  1985년 그룹 해체 후 김효원은  맥 이벤트, 맥 스튜디오, 맥 기획사 등을 설립해 가수 양성 및 레코드 제작, 그룹 밴드 양성을 하고, 김동자는 솔로로 변신하지만, 별로 인기를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초,  딸의 골프 유학을 위해 미국 댈러스로 이민 온 <김씨네>의 김효원은 2004년 버지니아로 이주했다가 지금은 애틀랜타에서 뮤직팩토리라는 음학원을 운영 중이다.  이민 후에도 그는 교회에서 찬양팀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 김효원이 토론토에 온다고 한다.  우리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7080 시절, 그리고 그때의 끝나지 않은  ‘네버 엔딩 스토리’를  김효원을 통해 듣고 싶다. <2015. 여름>

https://youtu.be/bv9HTAKxcAk

<김씨네>의 '터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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