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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l 25. 2020

그것이 색소폰 이란 말이지?

음! 한 여름밤에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 같군.

   그것이 색소폰 이란 말이지?”
    우리나라에 색소폰이 처음 들어온 것은 고종 때다. <러시아 수호조약>, <영 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 등으로 인해 새로운 물결이 벅차게 밀려 들어왔다. 1896년 민영환은 전권대사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해 군악대 연주를 듣게 되고, 이를 고종에 고한다. 1902년에 양악기 구성의 군악대(대취 주악단)가 창설되어 독일인 에케르트(Eckert)에게 첫 지휘를 맡긴다. 당시의 악기 편성을 보면 테너 색소폰, 바리톤 색소폰, 베이스 색소폰 등이 있었다.  

대한 제국 군악대

 다른 기록도 있다. <1925년에 상해로 원정을 갔던 조선축구단의 단장 백명권이 귀국할 때 재즈의 악보와 악기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백명권을 중심으로 홍난파, 박건원 등이 모여 곧 경음악단을 만들기로 하였다. “백형, 그것이 색소폰이란 말이지?” “응! 소리가 어때?” “음! 한 여름밤에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 같군.”한다(1983. 한국 근대 풍운사. 김경옥 저)>.  

1902년에 양악기 구성의 군악대(대취 주악단)가 창설되어 독일인 에케르트(Eckert)에게 첫 지휘를 맡긴다.

 홍난파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8인조 재즈악단은 피아노에 홍난파, 바이올린 이호열, 제1 색소폰 백명곤, 제2색소폰 이철, 트럼펫 한욱동, 벤죠 홍제유, 드럼 이상준, 트롬본 박건원 그리고 노래 이인선이었다.  그리하여 1926년에 YMCA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대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는 재즈의 본 고장인 미국도 개척 기였기에 이 공연은 의미가 특별하다. 

 일제시대를 지나, 6.25 전쟁 이후 서양 군대식 훈련에 익숙한 군인들이 경제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며 서양 문화를 지향하게 되었고, 미국의 경음악과 구미의 유행 음악이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군악대는 물론 학교마다 밴드부를 만들어 색소폰 주자가 늘어나지만, 아마추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즈음, 미 8군 무대는 대중음악의 체계를 잡는 산실이었다. 주한 미군의 규모가 커지자 미군 위문 협회(USO) 공연단이 방문하는 일이 계속되었는데, 공연단에는 마릴린 멀로, 엘비스 프레슬리, 냇 킹 콜 등 희대의 스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국의 연주자와 연예인을 동원하게 된다. 연예 용역회사들이 크고 작은 밴드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미 8군 쇼는 음악인들에게는 최고의 무대였다. 이들은 용산의 USIS라는 곳에서 공개 오디션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봉조, 길옥윤, 엄토미, 신중현, 김홍탁 등이 그 무대 출신이다. 당시의 밴드는 재즈를 위주로 한 컨트리,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 등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를 했는데 이들은 1960년대부터 방송 악단에 진출해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하며 한국 대중 음악계를 이끈다. 

1960년대 색소폰 연주로 대중에 인기를 끌었던 이봉조.

 특히 이봉조와 길옥윤은 훌륭한 색소폰 연주로 대중에게 인기를 받으며 불모지에 싹을 틔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색소폰은 대중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색소폰 연주자를 키워 내는 토양인 재즈가 인기가 없었고, 다른 악기에 비해 먹고 살 보장도 성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색소폰이 피아노나 기타처럼, 하나의 악기로 대접받는 것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다.  88 올림픽 등 대형 이벤트와 음악 시장의 확대로 이정식, 김원용, 강태환, 홍원표, 정성조, 김수열 등의 2세대 색소폰 주자들이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이정식과 김원용은 모던 재즈 스타일이고, 강태환은 일본에서 활동하며 프리 재즈의 대가로 자리 잡는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홍원표(전 MBC관현악단장)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는 홍원표(전 MBC관현악단장)는 계보상으로 볼 때, 이봉조 등의 첫 세대와 스타일이 비슷하다. 방송과 음반 작업을 오래 해서 대중적이고 편안한 음악을 시도하는데, 특히 편곡 실력이 뛰어나다. 그가 한숨을 쉬듯 바람소리를 섞어 연주할 때면 가을날 낙엽을 지게 하는 스산한 바람이 들려오고, 소리를 곱게 갈아 고음으로 연주할 땐 마치 피콜로나 클라리넷의 여린 소리가 나는가 하면, 저음의 소리를 내면 뭇 여인들의 가슴을 흔들리게 했다. 가끔이나마 토론토에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건 우리에겐 행운이다.


   요즘 한국에는 색소폰 동호회원이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곳 토론토에도 색소폰 배우는 분들이 많아졌고, 연주회도 제법 눈에 띈다.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색소폰 불기가 쉽지 않겠지만, 짬 내고 노력한 만큼 ‘행복의 멜로디’는 쌓일 성싶다. 

토론토에도 색소폰 배우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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