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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n 30. 2020

가수 이치현의 '집시 여인'

"행복하니, 하고 싶은 밴드 해서..."

이치현 , “행복하니, 하고 싶은 밴드 해서…”

   “넌 행복하니? 저 하고 싶어 하는 일 하고 사는 놈 너 밖에 없잖아? “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한 대사이다.  고교 동창이며 한 때 함께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던 친구가 밴드 하는 친구에게 던지는 물음은 부메랑이 되어 관객에게 되돌아온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삼류 밴드의 이야기다.  그들은 스스로를 삼류(?) 인생이라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감독이 그들을 그리는 방식에는 지극한 애정이 포함되어 있다. 


 수안보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 성우 같은 인생이 있다. 가수 이치현이다. 이치현은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보컬 ‘벗님들’의 보컬리스트로 데뷔한다. 그 뒤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만, 특별히 빛을 보지 못한다. 이치현이 55년생이니까 유현상, 윤수일과 동년배다. 하지만 이들 밴드를 대표하는 히트곡 '사랑의 슬픔'은 1988년에서야 나왔다. 그동안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었다. 참으로 긴 무명 시절이었다.

 

토론토 한가위 축제에서 공연한 이치현.

 물론 이름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운타운과 소극장 무대에서 그들은 소리 없는 강자로써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몇 번이나 해체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방의 무대를 전전해야 했었다. 새로운 멤버들도 그렇게 만났다. 처음 이치현과 이현식의 듀엣에서, '라스트 찬스' 출신의 드러머 이순남이 합류하며 3인조 밴드가 되었다가, 이치현만 남은 상태에서 김준기, 김용식, 오원철, 김태영의 4명이 합류하면서 5인조 밴드로 3집을 내놓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음악과 대중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3집은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베이시스트 오원철이 나가고 다시 베이스 김경기와 기타 오세홍이 들어왔다. 거의 마지막이다시피 어렵게 이치현은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또 다른 음반을 내놓았다. 이치현과 벗님들을 구원해 준 '추억의 밤'이 수록된 4집 '벗님들 84'였다.

 

 이미 밴드는 거의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활동도 없었고 수입도 없었다. 그런데 거의 몇 달 만에 다운타운의 디스코텍을 중심으로 '추억의 밤'이 소리 소문 없이 인기를 모으며 밴드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마침 '들국화'를 필두로 밴드의 전성기가 시작되며 공연 문화가 크게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이치현과 벗님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집 '사랑의 슬픔'이 터져 나왔다. 이치현 하면 떠오르는 노래 ‘집시 연인’이 담겨 있었다.

 

이치현이 무대 위에서 ‘집시 여인’을 부를 때 관객들은 환호를 했고, 모두들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던 밴드였다. 록의 강렬한 사운드나 특유의 거친 반항의 정서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이름바 '가요'와 통하는 것이 많았다. 달착지근한 사랑노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노래의 멜로디에도 뽕끼가 충만했다. 그런가 하면 드물게 라틴리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코러스는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모였을 때 그것은 '도시적 세련됨'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이치현의 목소리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잘생긴 데다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이치현 자신이 산타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밤무대를 전전하며 대중이 원하는 '가요'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명의 시절마저 견뎌낸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마침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가던 대중들은 도시에 어울리는 새로운 음악을 요구하고 있었다. 기성의 가요와 맞닿아 있으면서 라틴의 리듬과 나른한 서정미를 들려주던 이치현은 동시대의 어느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1hRbfqlM4

 토론토에 온 이치현은 끼가 넘치는 가수였다. 노스욕 근처의 호텔에 묶었는데,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한인들이 알아봐 싸인을 요청했다. 그 마른 몸매에 헬리콥터 조정사들이 쓰는 레이벤 선글라스를 쓰고 가벼운 스텝을 밟듯이 걸어 다녔다. 그 나이에 저 정도 폼 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무대 위에서 ‘집시 여인’을 부를 때 관객들은 환호를 했고, 모두들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 “하고픈 밴드 하니 좋냐?”라고 물어봤다. 말수가 적은 그가 웃으며 “엄청 좋지요”하며 “힘든 일이야 다 지난 일이죠. 이젠 욕심 안 부리고 사니 편해요.”한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떠나며 토론토에 대한 곡을 작곡해야겠다고 했는데, 여태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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