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꾼 ‘꿈’ 이야기다. 내가 어느 공연장에서 아내를 찾고 있다. 무슨 <전국 여고 동문 합창대회>라는 공연에 아내가 출연한 것이다. 아내는 아침부터 공연 연습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고, 나는 공연 시간 전에 아내가 부탁한 의상을 전달하러 간다. 공연 때 입을 흰 블라우스를 세탁소에 맡겼는데 오후에나 받게 돼서다.
나는 ‘아니, 노래도 잘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합창대회에 나가?’라 투덜대며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입구 객석에 앉아 계시던 장인어른이 “어이, 황 서방! 자네 왔는가?” 하며 부르신다. “아 예, 혼자 오셨어요?” 했더니, 눈으로 저쪽 끝 자리를 가리킨다. 장모님과 큰 아주머님이 멀리 떨어져 계셨다. 속으로 ‘아마 장모님이 그러자고 하셨나’ 싶었다. 두 분 사이가 안 좋아서 그랬을 거라 짐작된다. 그리고 몇 자리 앞쪽에 막내 형님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 모두들 거리도 있고 사이에 관객들이 많아 가까이 찾아뵙지 못하고 목례를 드리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조금 기가 막혔다. ‘아니, 자기는 친구 합창단에 인원수 채우려고 출연하는 주제에 온 친정 식구들을 모두 동원했네’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사연인 즉, 아내의 친구가 “우리 학교 동문들이 모여 합창단을 하고 있는데, 경연대회를 앞두고 인원이 모자라니 네가 좀 출연 좀 해줘”해서 다른 고등학교를 나온 아내가 ‘용병’으로 차출된 것인데 말이다. 공연장을 나와 아내를 찾으니, 출연자들은 모두 옆 체육관에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체육관 앞에 가니, 안내판에 각 출연 팀 별로 구역을 나눈 안내판이 있었다. 언뜻 보아도 출연 팀이 30여 팀이나 되는 듯한데, 옆에 있던 안내자가, “어딜 찾으세요?”한다. 그래서 아내 친구의 학교 이름을 대니 “저를 따라오세요”해서 쫓아갔다. 그 체육관은 농구 코트였는데, 출연자들이 많아 스탠드에 학교별로 나눠서 대기 중이었다. 그 안내자가 데리고 간 곳은 농구 코트 안의 본부석이었는데, 그 위의 스탠드에는 40대쯤 보이는 여성들이 떼 지어 연습을 하거나 팀별로 분주히 떠들고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안내자가 “부인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라고 해서 얼떨결에 불러주니, ‘어라?’ 장내 안내 방송을 하는 게 아닌가?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00 씨는 지금 즉시 본부석으로 내려와 주십시오. 남편께서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그 순간 스탠드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환성과 야유 비슷한 걸 보낸다.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그만 꿈에서 깨 버렸다.
아침에 아내에게 그 꿈 이야기를 했더니, “개꿈이네!” 하며 웃어넘긴다. 그리고 다음날, “여보, 어제가 엄마 기일이었네. 내가 달력에 표시까지 해놓고 잊었어. 그래서 당신이 그런 꿈을 꾸었나 봐” 한다. 그날은 마침 한국에선 <어머니날>이기도 했다.
군인들이 장기자랑을 벌이며 휴가증을 받는 코너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는 장병들의 외침으로 유명한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가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멀리 있는 아들을 보려는 생각으로 한 걸음에 달려오신 어머니가 무대 뒤에 앉아 계실 때, 가슴을 울리는 노래
<그리운 어머니>가 흘러나오면 사회자의 애절한 멘트가 시작된다. 이제까지 흥겨웠던 표정은 사라지고 병사들의 얼굴에는 눈물이 어린다.
뽀빠이 이상용이 무대 뒤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 어디에서 오셨어요." "예, 저는 아들 보러 강원도에서 왔어요." "어머니 오시는데 힘드셨죠. 그래 얼마나 걸리셨어요?" "예, 꼬박 하루 걸렸네요" "어머니, 아들 보고 싶으시죠" "예, 그럼요" 뽀빠이 이상용은 연병장의 장병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한다. "저 무대 뒤의 분이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그러자 수많은 장병들이 무대 위로 뛰어오르고 장병들은 하나 둘 줄을 맞춘다. 그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던 뽀빠이는 장병들의 곁으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뒤에 계신 분이 어머니 맞습니까?" "예!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어찌 자식이 어머님의 음성을 듣고 모르겠습니까? 저의 어머님이 확실합니다." 대한의 남아다운 씩씩한 모습의 우렁찬 외침이다. "고향이 어디예요?" "예, 저는 서울입니다." "예끼 이 사람아, 어머니는 강원도에서 오셨는데 “뛕!” 그러며 내려 보낸다. 그 장병은 쭈뼛쭈뼛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장병들은 배꼽을 잡는다. 그리고 인터뷰는 계속된다.
"예! 저의 어머님이 확실합니다. 어젯밤 꿈에 신령님께서 오늘 어머님이 오신다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합니다." 그리고 다음, "저는 어머님의 향기에 이끌려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어찌 자식이 어머님이 오신 것을 모르겠습니까! 저의 어머님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몇 명의 장병을 지나치고.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어머니는 한 분인데 서로 자식이라니..." 객석의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돌이켜 보니, ‘어머니는 항상 내 뒤에 계셨는데…’ 그동안 잊고 지낸 것이다. 5월이 되면 어머니 꿈을 자주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