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네를 설레게 하는 여인의 목욕

추자도에서 목욕하기 좋은 날

by 황현수

추자도에서 해군 생활을 할 때다. 당시 추자도 인구는 약 3,000명 정도였고, 섬 마을 치고는 제법 살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섬 전체에 목욕탕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봄날, 부대 기지장이 “오늘 저녁 마을에서 손님들이 목욕하러 오시니 샤워장 청소를 잘해 놓아라” 지시한다. 난, 부임 한지 얼마 안 되어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마을에서 혼례를 치를 때 가끔 기지 내에 있는 샤워실을 이용한 단다. 신부가 결혼 전 정갈하게 해야 하는데 목욕을 하려면 제주나, 목포로 가야 하니 부대 안의 시설을 빌려 준다는 것이다.


사실 샤워실이라야, 샤워 꼭지 몇 개에 3~4 명이 들어갈 정도의 탕이 있는 시설이 전부인데 군부대에 들어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황공’한 곳으로 알려진 것 같다. 군 시설을 이용할 정도면 추자도에서는 기관장급의 자녀일 것이고, 아마 기지장은 샤워실을 빌려주고 생색깨나 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샤워실의 탕은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아 뜨거운 물을 채우려면 취사실에서 밥 짓는 솥에 물을 끓여 퍼 날라야 하는 구조다. 탕에도 수도꼭지가 있지만, 일반 세수나 할 수 있는 용량이라 탕을 채우기 위해 여러 명이 1~2시간 정도 힘을 써야 했다. 요즘 같으면 갑질이라고 투서가 들어갈 일이지만, 그때 우리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뜨거운 물을 퍼 날랐다. 여러 상상을 하면서…


우리 기지는 마을에서 15분쯤 올라와 언덕 중턱에 있었는데, 목욕을 올 때는 신부와 어머니가 같이 왔다. 대개 일과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마친 시간이어서 영외 거주자들은 퇴근하였고, 주로 하사관과 병들만 있는 밤 시간이다. 아마, 영외 거주자들은 ‘누가 오는지?’ 같은 고급 정보를 알고 있었겠지만, 첩보가 빈약한 수병들은 알 수 없었다. 기지에 올라오는 언덕 초입부터 망원경으로 주시하지만, 어두워서 신분 확인이 어렵다. 겨우 기지 입구에 있는 전봇대 불 빛을 지나야 신원 확인에 들어간다. ‘우체국에 근무 중, 아버지는 누구, 몇 년 전 인천에서 살다가 들어왔고 고등학교를 목포에서 다녔음. 나이는 몇 살, 이름은...’ 어찌 되었던 그만하면 섬 부대의 첩보 수준으론 민첩했던 것 같다. 벌써 42년 전의 코미디 같은 일이다.


두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사우나 시설이 얼마나 좋은 지, 6~ 8천 원이면 목욕을 할 수 있었다. 부산에는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사우나가 있다고 하니 목욕 문화 대국이라 할 수 있다. 이 목욕 문화를 외국에 수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여인의목욕4.jpg 한국의 대중목욕탕은 1905년에 서린동에 처음 문을 열었지만, 발가벗고 목욕하는 문화가 익숙지 않아 곧 문을 닫는다. 사진은 1960년대의 목욕탕으로 주로 여인들이 사용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목욕 문화는 어땠을까? 1905년 서울 서린동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모르는 사람끼리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대중 목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더 옛날로 올라가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담장이덩굴로 덮인 우물가에서 탄생하여 동천에서 목욕한 후 광채를 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설화지만, 그 당시 목욕 문화에 근거한 이야기라 짐작된다. 선조들은 ‘목욕 자체’ 보다 ‘목욕재계’에 관심을 두었다. ‘목욕재계’는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것이었다. 신라시대에는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목욕이 습관화되었으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 벌을 내리기도 한다. 불교가 국교로 부흥하면서 목욕 문화는 더욱 성행하게 된 것이다.

여인의 목욕.jpg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목욕하기 좋은 날을 정해 주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목욕 문화는 고려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으로 전승되어 대중화되었다. 그동안 주술의 수단이었던 목욕은 고려시대부터 질병 치료 및 예방 의학이 되었으며,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내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오에는 예로부터 창포의 잎과 뿌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던 풍습이 전해진다

여인의 목욕1.jfif 여인들의 목욕 장면을 훔쳐 보는 남정네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 사상을 중시하며 목욕 문화가 변화를 맞게 된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남녀의 혼욕과 알몸 노출 목욕을 불온한 행위로 간주하여 옷을 걸치고 전신욕을 하였다. 이때부터 집에서 옷을 입은 채, 부분 목욕의 시대가 열리다 보니 전신욕은 연례행사였다.


나라에서 목욕하기 좋은 날로 음력 3월 3일, 5월 5일, 6월 15일, 7월 7일, 7월 15일 등으로 정했는데, 모두 늦봄에서 늦여름이다. 이날 개울가 숲 속에는 여인들의 목욕을 훔쳐보는 남정네들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은 남정네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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