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한 발자국

서른 살, 대학원생 그 시작.

by 달솜

그 7년의 시간을 조금 들여다보자면,

나를 갉아먹던 두려움은 도망이 되었다.


대학원에 떨어질 것 같아서 취업하겠다고 하고,

취업이 안될 것 같으니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이미 내가 되고 싶었던

이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다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해내질 못했었다.

어차피 실패할 것 같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취업이든 대학원이든 나에게는 핑곗거리를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내가 뭔가를 하려고 계획 중이다'라는 도피처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던 7년의 시간 속에서 여러 번 도망쳤다.

시험을 보러 가지 않기도 하고, 내 차례직전에 뛰쳐나오기도 했다.

실패가 두려웠고, 내 실력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고, 눈앞은 새하얘졌었다.


그래도 마냥 다음이 있을 줄 알았다.

'내년에는, 다음에는 꼭'이라는 말로 나는 날 현혹시켰다.

29살이 되기까지 늘 다음으로 미뤘었다.

‘다음 해에는 대학원생이 되어야지’

'내년에는 꼭 대학원생이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하늘이 유난히도 높던 어느 가을날,

나는 그동안과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낙엽도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냄새가 나고 쌀쌀해지던

29살, 가을

면접장을 뛰쳐나와 펑펑 울던 나는

다음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희망을 가질 때면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 나이에 대학원은 좀 아니지 않아?”

“친구는 벌써 이만큼인데 대학원을 가는 게 맞아? “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려고 했지만,

다음이 없을 것만 같았던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원하던 대학원에서 ‘원하던’을 빼고

나를 받아주는 대학원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입학원서를 다시 써 내려갔고

내 생일이 조금 지난 아주 추운 겨울날,ㅠ면접을 보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온 면접은

이상하리만큼 떨리지 않았다.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나온 나는

그냥 마음이 홀가분했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음에도

홀가분했던 이유는 ‘도망치지 않았다’였던 것 같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

그게 날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 설날 무렵,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그곳엔 내가 원하던 단어들이 모두 있었다.

나의 이름, 교육대학원, 그리고 합격.


어쩌면 그 합격이라는 글자에는

나의 바람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밖으로 나오질 못하는 딸을 보는 부모님의 바람도

모두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식을 전달할 때 눈물이 맺혀

부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긴 시간 나에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했을 그간의 걱정들도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앞으로를 그릴 수 있을 딸을 오랜만에 마음 편히 보는

나의 부모님의 얼굴을.


그래서 소식은 가장 무덤덤한 어투로

“대학원 면접 봤는데, 오늘 결과 나왔어.

등록금은 내가 다 할 거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 였다

말도 채 다하질 못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부모님의 축하도 나에게 맞춰 무덤덤했다.

"언제 면접 봤어~? 잘했네 "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간의 걱정이 튀어나와 안도하는 모습처럼 보일까,

그 모습마저 조금의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

나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모두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는 것을.


대학원입학만으로

앞으로의 그 어떤 것도 보장하고

결정해 줄 수 없음을 알지만,

그저 어두컴컴하고 춥던 겨울을 끝내고

세상밖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음에

모두의 평안이 되었음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 긴긴 마음의 겨울을 끝내고

나는 서른 살, 대학원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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