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인 직장 상사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어떤 모양일까?
미국에서 공무원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일 외에 별도의 만남을 가진 적은 딱 한번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이 참 좋고, 그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글에서 그들의 실명을 밝힐 이유가 없다. 이 글은 순전히 내가 바라본 그들이기에 객관적인 사실에서 과장되거나 축소되었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빛나는 마음이다.
상사 A, 그를 스승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
A는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새었고 손목 마디와 얼굴에도 굵은 주름이 있다. 한 번은 내게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은 자식들이 있어." 한다. 그러고보니 그는 할아버지같지 않고 아버지같다. A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서류 작업을 위해서는 안경을 낀다. 그에게서 종종 '꼰대스러움'을 느낀다. 예컨대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나를 한번 쭈욱 훑더니 "너는 왜 또 그걸 잃어버린거냐?" 한소리 한다. 앗차! 아이디를 또 깜박한 것이다. 아이디를 달고 다니는 인생을 살지 않아서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한참 얼어 있었다. A는 그렇게 일과 관련한 지적을 할 때는 인정사정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에게서 적의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터에서 만나는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인간적인 사람 냄새가 아닌 근원을 알수없는 적대감 혹은 무관심을 느낀다. '아, 저 인간이 나를 지금 뭉개려고 하는구나. 이런거를 불리Bully라고 하는거 아닐까?' 그럴 때가 힘들다. 무시당한다는 기분. 법적으로는 시민인데 늘 외국인 노동자인것 같은 기분. 누군가 그랬다. "어떤 미국인들은 너가 외국인인 아시안인데 미국 공무원일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들면 어깨가 축 처진다. 나의 상황은 마치 충북 청주의 한 공무원 조직에 새로 들어온 동남 아시아 여성같다.
그런데 할아버지같기도 하고 아버지같기도 한 A에게서는 그런 적대감이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는 말그대로 초짜이기에 궁금한 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초기에 자꾸 물어봐서 머릿속에 지식을 쌓아놔야 나중에 욕먹지 않는다. 이는 내가 한국에서 첫 회사생활을 했을때 나와 함께 입사한 K가 해 준말이다. 그 말은 내가 언제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때 늘 아로 새기는 말이다. 이 일터에서도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아니, 아직도 그걸 모르냐! 책 찾아봐!' 라고 핀잔과 지청구를 날린다. A는 내게 "언제나, 뭐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라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질문 세례를 날렸다. 만약 그가 없었으면 내가 이 일터에서 이렇게 안정된 마음을 갖고 일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며칠 전 A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퇴근을 오분 앞두고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조물닥 거리며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A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 A, 스마트폰 안해요?
A: 그걸 왜 해?
나: 온라인상으로 직장 사람들과 연결되면 좋잖아요. 친구도 될 수 있고요.
A: 나는 일에서는 친구를 만들지 않아. 예전 직장에서도 그랬어. 다른 부서 사람들 중에서는 친구를 만들었지만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직장 동료를 친구로 만들지 않았지.
나: 아니 왜요?
A: 일터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면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할때 거절하기 어려워져. 그러면 공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흔들리게되지.
그의 말이 참으로 놀라웠다. 평소에도 그는 공평함을 추구했다. 어떤 일이든지 순서대로 처리하고 그 누구에게라도 개인적 호의를 베풀거나 선처를 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공평한 처사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대부분이 백인들로 구성된 이 일터. 물론 여기에는 히스패닉도 있고 흑인도 있다. 나는 아시안이면서 또 성인이 되어 미국에 왔다는 자격지심이 있다. 그래서 늘 뭔가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그럼에도 '전부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갖고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이불처럼 덮어주는 것이 바로 A의 공평한 마음이었다. 또한 나는 가끔 그에게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빠도 나와 키가 비슷하고, A도 그러하다. 또한 가끔씩 버럭 버럭 화를 내는것 같으면서도 속정이 깊은 사람. 거기에서 아빠의 얼굴과 A의 얼굴이 겹쳤다.
언젠가 다가올 그의 은퇴식
A는 이 일터에서 오랫동안 일한 베테랑이다. 정확한 햇수는 모르지만 십오년은 족히 넘게 일한것 같다. 그런 그의 독특한 은퇴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도 정확한 은퇴 날짜를 모른다.
"나는 그냥 어느날 훌쩍 떠나버릴거야. 그냥 어느날 문득 일에 전화해서, "나 오늘 일 안나갑니다. 오늘부터 나는 은퇴합니다." 이렇게 할거라고."
처음엔 어이없게 느껴졌다. 실제로 다른 동료는 '왜 그가 그렇게 자신의 은퇴날짜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유난을 떠는 지'에 대해 의아심을 품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은퇴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했고, 당신들과의 긴 인연을 이렇게 끝마치니 잘 들있으시오.' 와 같은 일종의 작은 은퇴식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그마저 나의 착각인가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일에서 자신의 생일을 널리 알려 말로라도 '축하해!' 라고 말해주기를 원하고, 또 어떤 이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마음과 마음의 차이를 잘 아는 것도 일터에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다.
-Just let it go.
=그냥 내가 조용히 어느날 없어지도록, 그렇게 내버려둬.
나는 그의 영어 한 문장 let it go를 이렇게 한국식으로 이해했다.
사실 내가 A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할 만한 이야기 꺼리는 거의 없다. 그는 아마도 7-80년대 미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그시대의 미국 문화를 알리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일터에서 그를 만났음으로 일과 관련한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인간성과 됨됨이를 느낀다.
"내 정확한 은퇴 날짜를 아는 사람은 오직 내 아내 뿐이야. 그리고 그녀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아. 심지어 내 자식들도 모른단다. 왜냐고? It is none of their business."
손을 허공에 내치며 푸후~ 하고 얼굴을 일부러 찌푸린다. 그는 이토록 사적인 인간이다. 공과 사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사람. 그런데 그렇게 엄격성을 따지고 공과사를 분리하는 A가 나를 일적으로 좋아해준다. 그는 게으른 사람을 싫어한다고 한다. 나처럼 한국이라는 사회 문화적 토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애증할정도의 '근면성실'이 살과 뼈에 각인되어 있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어쩔땐 내가 남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일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똑같은 돈을 받는데 말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은 일보다 수다를 좋아하는것 같기도 하다. 나도 어쩔땐 그런 수다에 섞인다. 또 그것 역시 중요하다. 대신 근본을 잊으면 안된다.
A, 참으로 사람의 인연은 신기합니다. 내가 이 곳 워싱턴 주의 일터에서 당신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합니다. 어쩔 땐 정말 인생은 별것 없다고 느껴집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딸것같은 패기만 있는데, 진짜 인생의 별것은 당신같은 마음씨를 발견할 때 입니다. 그래서 나는 감사합니다. 당신이 언제 은퇴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출근했는데, 출근하지 않은 당신을 생각하며 "갑자기 당신을 잃었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불안함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당신이 한 말처럼 그냥 툭, 떨어지는 공같은 마음일것 같습니다. Just Let it go.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며칠 혹은 몇달 함께 일할지 모르겠지만, 늘 웃는 얼굴로 그리고 내 값어치를 하는 직장인의 얼굴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