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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Oct 09. 2019

자기고백의 위대함

데미무어의 회고록 Inside Out 

    며칠 전 애완견의 아침산책을 하는데, 귀에서 듣고 있는 오디블Audible 덕분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엉엉엉하며 소리내어 우는 게 아니었다.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Demi Moore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에 압도되었다. 

데미 무어의 회고록 인사이드 아웃 표지


    인 사이드 아웃Inside Out '안이 바깥이 되다.' 혹은 '안에서 밖으로.' 이 정도의 해석이 맞을까? Inside out. "셔츠를 뒤집어 입었어." 라고 말할때 "Your shirt is inside out." 라고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그녀의 책 제목이다. 왜 이 문구가 책 제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참고로 영화의 스포일러 포함을 밝히듯 이 글에도 그녀의 책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결론/핵심은 이 제목에 모두 담겨있다.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내 안에서 이뤄진다. 구태의연해 보이기도 한 말이지만, 나는 이 말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바꾸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내게 데미 무어Demi Moore라는 인명에 대한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사랑과 영혼' 영화의 한 장면과 겹친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뒤에서 있고 그녀가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 딱 그 이미지다. 사실 나는 그 영화를 전체 관람하지도 않았다. 그 밖에도 Inside Out 이 책에서 그녀가 이야기하는 많은 영화들을 나는 보지 않았다. 할리우드 여배우. 부자 배우. 그것이 데미 무어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다. 아, 그리고 한 번. 최근 어느 쇼에서 그녀의 전남편인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이었는데, 손님으로 데미 무어가 나와 그를 놀리는 로스팅Roasting 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것이 전부였다. 그녀의 자서전인 이 책은 8시간 정도 들을 수 있으며 다른 책에 비하면 짧은 분량이다. 이 책을 들으며 그 전에 들은 타라 웨스트 오버의 Educated도 떠 올랐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는 것이 갖는 힘은 강하다. 특히나 미디어가 만드는 이미지 뒤에 사는 연예계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이미지 너머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들려준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저자와 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할진대, 자녀를 낳아 키우는 사람으로서는 더욱이 그 능력의 한계가 뚜렷해 보이고, 그로 인한 저자의 상처는 듣는 사람인 내 입을 떡벌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정말로 저런 부모가 존재한단 말이야......' 약 십오세 정도였던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이혼한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그 당시 알고 지내던 레스토랑 사장에게 강간을 당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저자의 어머니가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딸의 강간에 대한 댓가로 500불을 그 남자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 일이 일어난 후 저자는 수십년동안 (심지어 자신의 첫남편에게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 일 외에도, 이 책 전반에는 저자의 삶을 슬프게 만드는 수 개의 사건들을 접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듣는 내내 이 책의 전반적인 어조가 상당히 슬프게 느껴졌다. 서글픈 노래, 슬픔이 바닥에 배어있는 그런 책이며 인생이다. 

    이 책을 들으며 느낀 또 다른 사실은 '돈이 많다고 저절로 내면이 풍요로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아마도 그녀는 전세계인들의 상당수가 알아보는 유명세와 그에 따른 부를 갖고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듣다보면, 아 부자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 저런 여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저 많은 고통의 밭을 용케도 건너왔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 고통의 밭에는 알콜 중독이 있고, 관계 중독이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불안했던 유년시절. 저자의 어머니는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면 그녀의 해결책은 언제나 그 지역을 가족과 함께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저자는 자신이 평생 자신의 아버지로 믿었던 아버지가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정신적, 애정적으로 무능력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저자의 첫번째 배우자. 저자는 어떤 면에서 그와 자신의 어머니가 닮아있다고 말한다. 아, 이 또한 참으로 비극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와 세 자녀를 낳아 키운다. 그들이 할리우드를 벗어나 아이 양육과 교육의 장소로 꼽은 곳은 내가 사는 워싱턴의 이웃 주state 아이다호다. 아이다호에 몇 차례 가 봤는데, 그 곳은 정말로 산으로 뒤덮여있고, 그 산의 웅장함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특히 한여름 아이다호는 말그대로 거대한 진녹의 웅장한 자연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 역시 그러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올해 2019년 여름 아이다호 

    데미 무어는 세 딸을 키우며 살다 8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생모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즈음 남편과의 이혼을 공식적으로 알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째 관계는 그녀를 거의 파멸 가까이 이끌었지 싶다. 아이 양육을 위해 그녀가 입에 대지도 않았던 술을 두 번째 남편인 애쉬턴 쿠쳐를 만나면서 다시 마시게 된다. 아, 정말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잘 만나는게 중요한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고백한다. '애쉬톤이 직접 내게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나도 술을 함께 마시기를 원하는 것 같아 나는 가볍게 다시 술에 손을 댔다.' 나는 이 부분처럼 결정적인 부분도 없다고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만큼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면 이런 모든 것이 안보이는걸까. 나의 생각과 나를 지켜주는 경계를 스스로 망쳐버리는 선택. 그것이 '이걸 하면 그가 나를 더 사랑해 줄까' 하는 절박함에서 나온건가...... 듣는 내내 씁쓸했다. 

    또 한가지 이 책을 들으며 인상이 무척이나 깊었던 부분은 여성으로서 할리우드 배우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몸과 싸우고, 때로는 몸을 학대하고, 싫어하기도 하며, 끊임없는 '이미지, 살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나는 그러한 부분들이 진절머리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책을 들으며 울기도 하면서 저자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목소리로 직접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황색잡지들에서 나를 떠드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말하는 내 이야기.' 여전히 이 시대 여성 배우의 자기 발화는 힘이 있다. 


*여기에 실린 본인의 글과 사진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조소현 (필명 달순)-

*이미지 출처: 구글 https://www.ebay.com/p/23034615025?iid=312786236838&chn=ps&no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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