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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Jan 13. 2020

3년만의 한국 방문기 2

사람의 얼굴

    잊고 있었던

    삼년만에 말과 마음이 통하는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사실은 잊고 있지 않았다. 다만 멀리 있고, 내 앞에 놓인 삶에서 허우적 대다보니 그 만남이 늦어졌다. 

    한국에 있을 때 매일 얼굴을 보거나 통화를 하는 사이들은 아니었다. 사람과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있어 그 안에서 영혼이 춤추게 하라 하는 루미 시인의 말처럼 살았다. 이 우정에는 분명히 힘이 있다. 이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교류할 때 올라오는 긍정의 에너지들이 있다. 나는 이같은 우정을 뗏목에서의 만남이라 부르고 싶다. 세상살이는 때로는 파도가 거세게 치고, 소용돌이가 있는 바다를 나홀로 허우적 거리며 열심히 고군분투하는것 같다. 망망 대해 속에서 나는 뗏목을 부여잡고 겨우 숨을 골라 쉬고 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 그들 역시 각자의 뗏목을 하나씩 부여잡고 살기 위해 열심히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우리는 눈이 마주친다. 아, 당신도 그 곳에서 잘 살아 있었군요. 눈빛의 교환. 그리고 지어지는 미소. 나는 그것이 우정이 아닐까. 그 미소와 눈빛에서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수다도 체력. 먹고 힘내자. - 성북동 디너쑈. 2020. 1. 루꼴라 피자. 
삼년만의 만남들

    그래서 나는 이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 있는 서울이 좋다. 서울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있고, 내 20대를 키운 곳이다. 앞뒤 재지않고 열심히 잘 놀았던 20대. 우리는 신나게 춤을 췄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또 깔깔댔다. 이들과 함께 있을때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과 껍데기에서 자유로웠다. 굳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었고, 감사히도 나를 좋아해 주었던 인연들. 구관이 명관. 오래 보아 온 얼굴을 보면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하느라 정신이 없다. 삼년만에 봤지만 그 캐릭터는 그대로이고, 시간의 흔적이 조금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이렇게 만나서 서로의 소식을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러 내가 서울에 왔지. 수다를 통해 이들의 내공이 느껴진다. 이들이 가끔씩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는 '받아적고 싶은'말들도 있다. 그러면서 아, 그렇지. 그러하다. 그렇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다. 20대 때, 그런 순간들을 통해 내가 성장했고 위로 받았다. 근묵자흑. 내가 물드는 순간들이 나를 키운 뿌리가 되기도 하고 영양소가 되었다.


기린의 나라에 간 코빨간 코끼리

    미국 이민자가 되어 보니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아, 나는 코끼리의 나라에서 왔는데, 여기는 기린의 나라구나. 그래도 코끼리가 꿋꿋이 기린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건, 옛날 옛적 코끼리가 다른 코끼리들에게서 받은 긍정의 힘과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코끼리는 가끔 이렇게 다시 코끼리의 나라로 들어와 친구들과의 수다를 통해 다시 힘을 받는다. 또 중요한 게 있다. 이 코끼리는 유달리 코끝이 빨갛다. 그래서 코끼리의 나라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코끼리의 나라에서 코의 길이와 두께와 색깔은 항상 엄격한 제한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코가 빨간 코끼리는 서울에서 코가 파랗고 노란 코끼리들을 만났다. 코끝에 색깔이 칠해진 코끼리들은 그래서 서로가 소중하다. 코빨간 코끼리는 다시 기린의 나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빨간 코를 긍정하며 다시 하하하 웃으며 살아간다. 바다만 건너면 그 곳에 노랑이 파랑이 코끼리도 몸 마음 건강히 잘 지낼거라 믿으며 말이다.


좋은 기운 받고, 다시 고고씽

    수다의 힘은 강하다. 위로도 받고, 영감도 된다. 모국을 방문한 내가 모국어로 수다를 떨며 받은 위로는 그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나다.


친구의 의미는 뭘까.

    내가 검열받지 않고 나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만들어 진다. 친구들은 나의 말을 재단하지 않는다.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 끄덕임과 눈빛을 받으면 한껏 위로를 받는다. 때로 우리는 미친듯이 깔깔댄다. 유머, 농담의 코드가 통한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나 해외살이를 하며 코드가 맞고 한국어로 말 통하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이 인연들이 소중하고 고맙다. 내가 위로 받은만큼 그들 또한 그러했기를......

달콤한 위로. 한성대역. 2020. 1.

*이 글의 저작권은 조소현에게 있습니다.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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