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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Jan 29. 2020

적응

미국에서의 이사. 살벌한 아파트 원룸. 새벽 소음.

#퉁-투웅-퉁

    이 아파트로 이사온 이후 계속 이런 소리가 들렸다. "퉁-투웅-퉁"이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다가 또 때로는 계속해서 들리기도 했다. 대중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밖에서 혹은 위층에서 테니스 공을 치는건가? 낮에는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그 소리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낮잠을 멈출수 없었다. 낮에 잠을 잔 탓이겠지. 밤 열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또 이 소리에 눈이 번쩍 떠 지고 말았다. 그 후로는 나 홀로 매트리스와의 싸움이 일어났다. 꽤나 무거운 매트리스를 낑낑대며 끌고 거실로 나갔다. 이불과 베개도 함께 들고 갔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여전히 한번 깬 잠은 다시 들 줄 몰르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였다. 심지어 벽에 붙어있는 시계의 초침은 또 왜 그렇게도 크게 들리는걸까. 아아아아...... 나는 왜 이렇게도 예민한것인가...... 나를 자책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참으로 적응이 안되었다. 잠이 오질 않으니 한국어 팟캐스트를 들어 보기도 했다. 반가운 목소리에 잠시 마음이 설레이기도 하고, 낯선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거실로 나온 매트리스 오른쪽으로는 냉장고가 있고, 발밑으로는 현관문이 있다. 거실에서 잠을 자려니 더 불안했다. 왠지 현관문이 턱 하니 열리고 내 몸이 쭈욱 밖으로 나가버릴 것 같았다. 혹은 이 냉장고에서 나오는 전자파들로 내 머리가 더 둔해지는 건 아닐까. 온갖 상상이 들었다. 심지어 이 작은 방 한칸짜리 아파트의 월세를 생각하니 우울함이 몰려 오려고 했다. 아, 이 한 몸 뉘이는 일이 이토록 고단한 일이던가......

    나의 '집'들을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집. 미국에서의 집'들'. 뭣모르던 석사 시절 내가 살던 전세 원룸의 현관에는 곰팡이가 득시글 거렸다. 전세금이 적지 않았는데, 나의 둔함은 그러한 줄도 모르고 그냥 그 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한 번은 친구가 내 집을 방문하더니, 현관문 위에 핀 곰팡이를 지적하며 "아니, 이게 뭐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가 있냐!"고 기겁을 했다. 그녀의 기겁이 내게 경종을 울렸다. 아...... 이런 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구나...... 나는 그만큼 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귀는 소머즈의 딸인지, 왜 이렇게 예민한걸까.


    그런데 이 모든 잡생각의 원인은 불면에서 기인했으며, 불면의 원인은 이 글의 소제목인 저 소리 "퉁-투웅-퉁"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파악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처음에는 예전 집에서처럼 '이웃집에서 나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괜시리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만약 그런다면 미국에서는 누군가가 911을 불러 끌려갈지도 모른다. 망상을 더 하자면 총기 소지 사회이기에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도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어난 일중, 한 이웃집 주인이 "저 집이 좀 이상한것 같은데 경찰 양반 한번 저 집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주구려." 하는 마음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그 경찰은 해당 집에 가서 아무 문제 없이 그 집에 잘 있는 여성을 총으로 쏘아 죽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진짜 이런 일을 생각하면 참말로 여기가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하는 의구심이 심각하게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아아. 내가 왜여기까지 와서는...... 과 같은 신세한탄의 길로 빠져든다. 혼자만의 신세한탄으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이 "퉁-투웅-퉁"하는 소리가 이웃집의 누군가가 한밤 중에 홀로 테니스를 치는 소리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퍼뜩 든다. 그러자 물고가 트이듯, 이 방에서 울리는 소음의 근원은 이웃집이 아니라 이 집안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의 탐정 기질이 발휘되었다. 아아아. 원인은 바로 벽 너머에 있었다. 내가 새로 이사 들어온 지 일 주일도 되지 않은 이 작은 집은 사각형의 한 가운데를 벽이 떡 하니 막고 있다. 차라리 이 벽이 없었다면 스튜디오 형태로 더 훤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 얄미운 벽이다. 그 벽을 사이로 안방과 거실이 나뉘어진다. 안방 안쪽에는 화장실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집 밖에 있다. 이 집이 놓여있는 위치. 그것만 빼면 집 안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아, 그래도 햇살이 들어온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다시 그 문제의 벽으로 돌아가자면, 그 벽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히터이다. 미국집에서 가장 '싫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공기를 데펴서 집안을 따듯하게 하는 것. 한국처럼 마룻바닥이 따듯해 지는 일은 없다. 이 히터는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일단 소리가 엄청나다. 그리고 "퉁-투웅" 소리의 근원은 바로 여기였다. 이 기계와 연결된 어떤 통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다. 그게 아닐리가 없다. (증명할 길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살벌한 이 원룸 아파트 1층에서 살아남고 싶다. 우선 일년 계약을 한 이유도 있거니와 이사도 겁이 난다. 우선은 잘 지내는 것이 목표다.

문제의 난방기. 박물관에 전시해야 할 것 같은데, 80년대에 지은 집의 난방기이니 너도 고생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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