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일기
이천 이십년 구월 십 구일의 일기
#간만의 쓰기
쓰기는 쉽지 않다. 나를 위한 일기를 쓰는 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렇게 공개적인 글을 쓰는 일은 더더욱 큰 맘을 먹어야 한다. 나는 그 맘을 먹기 위해 현재 'Meet Up'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Shut up and Write'이라는 줌미팅에 들어와 있다. '입 닥치고 글쓰자' 모임인데, 클릭 몇번으로 들어온 이 곳에서 사람들은 계속 뭔가를 주저리 주저리 말하고 있다. 이렇게도 사람은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모임에 클릭으로 들어와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앱에 감사한다. 나를 다른 사람들 (얼굴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과 연결을 시켜줘서. 그래서 나의 밋밋할 수 있었던 하루를 이 글쓰기 포스팅 하나로 가득 채우게 해 줘서 감사하다.
#내 자신이 되는 법
이 법은 쉽지 않다. 세상은 나를 자꾸 이리 저리 흔들고, 잡아 당기고, 일터에서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씩씩하고 싶은데, 현실은 반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페북에서 강남순이라는 분의 글을 보았다. 이 분의 글의 핵심은 '당신은 행복한가'였다. 행복이라는 이 단어. 참으로 잡고 싶은데 잡기 쉽지 않은 단어. 물질적 만족감 = 행복감은 아니라는 말. 지나치게 일 혹은 돈벌기에 빠지지 말고, 자신이 행복해 지는 길을 찾아보자는 말. 나는 그 글을 보고 괜히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리고 내가 뭘 하면 행복해지는지를 생각했다. 행복이란 단어를 내 식으로 정의하자면, 내 마음이 웃음짓는 일이다. 스스로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돈과 연결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돈을 쓰면 일시적인 행복감이 느껴진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 다음으로 일시적이나마 나를 무한하게 행복한 감정을 들게 하는 것은 인스타그람, 유투브등에 나와 있는 애완견들을 보는 것이다. 동물과의 유대감은 생각보다 크다. 남편이 데려온 반려견은 현재 시부모님댁에 있다.
그 다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만족감이 들게 하는 것은 글쓰기다. 비록 글을 쓰려고 마음 먹기까지는 너무도 어렵다. 누군가의 말처럼 불타는 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이 들어야 시동이 걸린다. 시동을 걸려면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 그 마음을 먹기가 싫어서 브런치를 방임했던 그동안 나는 무겁고 많은 핑계들을 만들었다. 새 일을 시작했으니까. 코로나 블루가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으니까. 원래 내 꿈은 출판이었는데, 그것은 꿈도 못 꾸고 있으니까. 이런 핑계들은 보이지 않게 나를 꽁꽁 매두어 결국 또 다시 침대 위를 뒹굴며 아무것도 안하게 했다. 그 위에서 내가 하는 것은 휴식이 아닌 도피. 그래서 더 피곤했는지도 모르겠다.
#일터에서 벗어나는 법
해외에서의 일터. 미국살이 칠 년째. 아마 그 시간의 공을 들여 나는 현재의 내 직업에 도달했다. 미국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다만 너무 일, 일터, 일터에서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몰두하다보면 어느 새 '내 자신이 어디에 있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에너지의 80을 일에 쏟아 부어 버렸고, 남은 20으로 뭔가를 하려니 진이 빠지고, 흥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매주 나갔던 영어 모임에도 몇번씩 빠졌다. 사람에게 치이는 기분이 들다보니, 사람들과의 교류가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저 강남순이라는 분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아, 그렇지. 나는 행복한가? 이 직업을 갖기만 하면, 나는 마치 삶의 어느 한 단계에 '올라간' 사람처럼 굴 것 같았다. 그리로 그 언덕 위에 오르면 모든 것을 평정한 사람처럼 당당해지겠지. 그것이 나의 바람이었건만, 현재 나는 이 일터에서 또 새로운 국면들을 맞이하면서 소진되고 있다. 사실 일의 속성이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뭔가를 받으려고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뭔가를 만들고, 제공해야 하며, 그리고 그 일을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부디끼며 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직업을 통해 온전한 행복감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나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이 질문을 거울을 비추듯, 정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언제 행복한가.
글을 쓸때.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을 때. 그것이 일기라 할지라도, 지나간 일을 반추하며 읽는 일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심지어 나는 '일기 후기'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과거에 쓴 일기 그 밑에 추가 노트로 '일기 후기'라고 해서, '지금 되돌아서 이 일기를 보니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구나 등등'의 말을 주저리 썼다.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반성과 후회, 그리고 회상하며 키득거리는 재미가 있었다.
남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을 때. 아, 어쩜 저런 문장이 나올까. 감탄이 나올 때. 그것은 질투이면서 자극이다. 뇌의 자극.
나의 첫 털내미 (털+딸내미) 벨라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때.
다른 반려견 동물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무한한 애정이 들때.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사 주거나 해 줄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할 때.
일터에서 학생들이 '아하!' 하는 표정을 짓거나, 같이 웃으며 공감이 될 때.
코로나라서 새로 맞이한 집콕 온라인 생활에서 새로 만난 운동 코치와 운동을 하며 진짜로 근육이 생기고 있을 느낄 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할 때.
독서를 하면서 아하! 하는 느낌이 올 때.
여기까지 쓰고나니 조금 마음이 정리가 되고, 근황이 정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