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순 Dec 18. 2020

참, 잘쓰는 사람, 강화길1  

강화길 소설집 '화이트 호스'

#음복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또 왜 그렇게 눈물이 났나 모르겠다. 결이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현대 한국의 가정의 모습,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들을 상당히 유사하게 묘사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떨 때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오는 희생과 착취 같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족쇄다. 이 단편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것들이 서로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하다. 뭔가 족쇄가 여러 명에게 걸쳐 있는 기분이다.


#가원 

참 읽고 나서 잘 쓴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그 이유는 뭘까? 문장들이 잘 읽히고, 뭔가 구어체 느낌이 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인칭 여성 화자가 조곤조곤, 꼼꼼하게 자신의 감정을 살피면서 이를 자연스럽고도 구체적으로 잘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궁금증은 주인공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는 것.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에 띄엄 띄엄 쓴 부분. 화자는 "왜 자신은 할아버지 박윤보는 미워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치과의사로 만들어 준 할머니에 대해서는 고마움보다는 미움이 더 큰 것일까?" 라고 스스로 묻는 부분이었다. 양가적인 감정. 화자의 복잡한 심경이 참 잘 드러났다.  


<인용>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글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지금까지도. 
계속. 

리디북스 129/530 


박윤보는 가부장이면서도 가부장, 집안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하나도 수행하지 못한 무책임한 할아버지로 나온다. 그렇지만 손녀인 화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푼 인물이기도 하다. 

<인용>

하지만 내게는 박윤보가 있었다. 최초의 기억. 모든 것이 시작되는 순간.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늘 박윤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나는 그것을 박윤보에게서 배웠다. 

리디북스 79/530 


단편 '가원'에서도 그렇고, '음복'에서도 발견한 부분인데 뭔가 핏빛에 가까운 빨간색을 괴기스럽게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다. 굉장히 부정적이고 그래서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붉은색이다. '음복'에서는 남편이 토마토 고기찜을 먹을 때의 모습이 그러하고, 시아버지가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러했고, 이 소설 '가원'에서는 할머니가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던 장면이 그러하다. 

<인용>

지금도 기억한다. 분주하게 나갈 채비를 마친 후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언제가 그 색깔이 싫었다. 섬뜩했다. 사실 할머니는 내게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는 짧게 자르고 진한 화장을 한, 그러나 무서운 인상을 숨길 수 없는 비쩍 마른 중년 여자.

리디북스 85/530 


소설을 잘쓴다 라는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소품이나 장치들을 잘 배치해 두는 법을 알기 때문같다. 예컨대 할아버지 박윤보가 피우던 담배 이름들을 뭔가 낭만화해서 부르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도라지. 이들을 부르면서 할아버지와 화자의 관계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데 좋은 소품으로 활용한다. 또한 마지막에 '가원은 여자의 호로 쓰이는 이름이다' 이 문장을 넣음으로 인해, 실제로 이 공간의 진짜 주인 혹은 가(모)장은 박윤보가 아닌 할머이였음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자신이 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