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소설집 감상 노트
*이 글은 독자로서 저의 순수한 감상이니 매우 주관적인 글이며 강화길 작가의 소설집 '화이트 호스'에 나온 소설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작가의 단편 제목들을 타이핑해 보니, 얼마나 공들여 만든 제목이고 이야기인지가 다시 느껴진다. 제목만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서우'가 사람 이름인지도 몰랐다. '출현'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멋이 있다. '화이트 호스'는 영어를 한국어로 썼기에 뭔가 새로운 느낌이 나고, 세련된 느낌도 있다. "백마"나 "흰 말"이라고 했다면 어떨까? '백마'는 뭔가 '도라지'처럼 어르신 분들이 예전에 피우던 담배나 성냥갑에 나올 것 같은 단어 느낌이다. 흰 말은 좋은 것 같다. '카밀라'는 왜 카밀라로 지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의 숨겨진 주인공은 카밀라가 아닌 다른 인물 같은데 말이다.
*잠깐 딴 이야기: 그런데 한국어를 미국인에게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의 시각을 이야기하자면, 미국인들은 한글자 한글자씩 한국어 음절을 또박 또박 배우려고 한다. 화.이.트. 호.스. 그리고 물을 것이다. 화이트 호스? 그러면 한국어 모국어 사용자인 내가 말해준다. 혀를 동그랗게 굴리면서 '화이트 호올스~' 돈츄노우? 그제서야 미국인 학생들은 벙찐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약간의 뭔가 알수 없는 굴욕감을 느낀다. 학생들이 내게 '이건 진짜 한국어가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것만 같아서...... 하지만 또 작가가 왜 굳이 백마, 흰말이 아닌 '화이트 호스'라고 썼는지, 그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오직 한국어만 쓰자!" 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백마와 흰말과 화이트 호스 모두 한국어다. 이 세 단어의 뉘앙스의 차이를 문화와 더불어 설명하는 것이 내 일일텐데, 이를 어쩐담? 하하하!
# 무엇보다도 여기에 있는 소설들을 다 읽고, 평론가 김샛별님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조금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론가가 자신의 일에 대한 조금 지쳐 있고, 회의감이 들 때, 강화길 작가의 글들을 만난 것 같고, 거기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얻었다고 한다. 감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 기쁨에 동조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 새로움이라는 것이 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강화길 작가가 스스로를 '박완서 키드'였다고 고백하는 부분. 이런 부분에서 뭔가 마음이 찡했다.
#서우
왜 제목이 서우일까? 제목을 지을 때도 뭔가를 살짝 숨겨놓듯이 일부러 이러한 단어들로 제목을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서우는 선생님의 자녀.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선생님, 서우는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물을 때 비로소 이 고유 명사가 등장한다. 매우 고딕스럽고, 괴기스럽다. 이런 장면들을 아주 잘 연출해 낸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러한 색깔이 가장 진하고 그래서 독특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주인공이 어렸을 때에도 그러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걸 감지한 담임 교사가 성인임에도 이 주인공을 안았을 때 두려워서 떠는 장면은 참 압권이다.
평론가의 문장
강화길은 긴박감과 두려움을 감염시키는 데 특화돼 있는 장르적 관습을 적절히 차용함으로써 여성 인물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독자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도록' 유도한다.
521/590, 리디북스 <화이트 호스>
배반과 배반, 뒤집고 다시 뒤집을 줄 알는 능수능란함.
스릴러, 고딕, 이런 이야기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 한 정수를 보여준 느낌이다. 그러니까 내가 읽은 이 단편의 이야기 내용은 주인공 '나'가 범인이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도 자신이 한 악행 (고양이 살해)을 남자 애의 짓이라고 뒤집어 씌운 이력이 있다. 그리고 택시에 탄 손님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가해자는 택시 운전사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한다. (너무 흔한 추측인가......) 택시 운전사에 대한 불안함이 있기에 화자인 '나'가 핸드폰을 손에 꼭 쥐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님인 '나'는 여성 택시 운전사를 보고 안심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소설에서 무시무시한 인물은 바로 '나'였다. 사실 나는 이렇게 읽었는데, 독서 클럽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답은 없는것 같다.
뭔가 무서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노련하게 잘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피부에 칼 들어가는 게 어떤 건지 진짜 알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중략) 입술을 핥는 혀끝을. 미세하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그러니까 내 표정을. 그는 흥분해 있었다. (중략) 그의 이야기에 나오는 대로, 그의 충고를 따라 차가운 물을 뿌려 야들야들해진 그의 불룩한 배 한가운데를 날카로운 칼로 깊숙이 가르는 바로 그 장면을. 그는 말했다. 내장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도 인간은 꽤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고.' 287/590
#오물자의 출현
오물자 라는 단어는 어떻게 작가가 발견했으려나? 그런 궁금증이 들 정도로 독특하고 이색적이고, 그래서 흥미를 끄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 단편과 '화이트 호스'는 뭔가 작가가 할 말이 있어서 쓴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소문과 미디어가 한 인생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썼다고 해야 하나.
#화이트 호스
이 단편은 뭔가 다짐이 담겨 있는 소설같다. 화이트 호스가 백마 아닌가? 백마탄 왕자님의 그 백마인가?
'나는 동화 속의 공주가 아니고,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어.' 화이트 호스라는 어감은 무엇일까? 이것 대신 백마 라고 하면 구식처럼 느껴지나?
#카밀라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단락이다. 정말로 이 소설집에 있는 대부부의 소설들이 쉽게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화의 장면 묘사처럼 말이다.
'손님! 햇빛이 제 눈을 향해 내리꽂혔습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저는 다시 그녀를 불렀습니다. 손님! 그때 여자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저를 돌아봤어요.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여자의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어요. 오싹했어요. 그리고 여자는 몸을 웅크렸어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팔다리가 사라진, 한 무더기의 진흙 더미 같았습니다. 그 순간 햇빛이 더 강렬하게 쏟아졌고, 아아, 저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몸이 타들어갔어요.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녀는 하얗게 부서졌어요. 새하얀 재가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곳에는 타다 만 옷가지와 반짝이는 목걸이 하나가 허물처럼 남아 있었어요.'491/590
주인공 화자의 아련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 문장이 잘 읽히고 또 리듬감도 있다.
"내가 지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미아가 살아 있다면, 그래서 지우의 사랑이 계속된다면, 그녀가 원하는 한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499/590
고딕스러움을 잘 느끼게 하는 묘사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새카만 바닥에서 비린내가 풍겨 올라왔다. 발바닥이 진득거렸다. 피로한 기분에 나는 손으로 벽을 짚었다. 누군가 손톱 끝으로 안쪽 벽을 긁고 있는 것 같았다. 귓속을 울린 소리가 바로 이거였다.'
495/590
*한국 바깥에 살다보니, 실물 책을 접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다만 전자책이 있음에 감사하여, 조금은 구리지만 내 아이패드에 담긴 책 표지 사진을 실어 본다.
*이 글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조소현 Jo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