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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Feb 25. 2021

황정연, 연년세세

파묘, 하고 싶은 말 

    한국 문학을 한창 열심히 읽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적이 까마득했다. 글쓰기는 나의 영원한 꿈이면서 또 영원한 숙제다. 일에 지나치게 파뭍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내가 내 문장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한국 문학 읽기. 이번에는 황정연의 연년세세의 첫 두 편을 읽게 되었다. 

뭔가 마음을 깊숙이 후려 파는 그런 문장들이 있어서, 두 편을 읽고 나니 서글픈 감정들이 훅훅 올라왔다. 작가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마음들을 세세하고 꼼꼼하고 서정적으로 문장으로 그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참 두 편을 읽었음에도 슬픈 마음이 차 올랐는데, 그것이야말로 문학을 읽음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간접 경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는 일.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럴 수 있음직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그래서 뭔가 좀 아름답고 처연한 독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매우 빨리 읽혔다. 

    이 연작 소설에는 가족 구성원이 나온다. 아버지, 어머니, 큰 딸, 작은 딸, 막내 아들. 그런데 작가의 의도가 있어서, 이를 구성원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에 읽을 때 좀 헛갈리기도 했다. 한만수 라는 이름이 조금 옛날 느낌이 나서 아버지 이름 같은데, 읽다보면 만수는 뉴질랜드로 가서 자꾸 누나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하는 철이 있어 보였는데, 아직은 철들이 않은 막내 아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같으면서도, 실제 주인공의 마음은 묘사로 많이 드러난다. 직접 발화하지 않고 말이다. 그녀가 바로 어머니인 이순일이다. 그녀는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이 이야기가 바로 첫번째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나는 그 돌아가신 할아버지 인물이 몇 문장으로밖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읽으면서 마음이 저렸다. 

    두번째 소설 '하고 싶은 말'에서는 이 소설의 첫째 딸이자 '기둥'같은 역할을 하는 한영진의 이야기다. 한영진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집안의 '기둥이 되기 위해' (참, 이런 문장을 써 놓고 보니 얼마나 한 가족의 기둥이 된다는 것이 무겁고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직업 전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잘 나가는 백화점 영업 판매원으로 그 기둥 역할을 해 내고 있다. 


    다 읽었다. 이 한 권의 연작 소설집에 나오는 첫 두 편을 읽고, 세 번째 소설에서부터 약간 흐름을 잃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첫 두 편을 읽었을 때는 마치 첫사랑을 하듯이, 이 작가에 홀딱 반한 사람처럼 이야기들을 읽으며 울고 또 울었다. 뭔가 문장들이 사람 마음의 어딘가를 저미게, 저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러한 저림들이 뭔가 과잉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그래서 마치 아주 진한 초코렛을 막 먹다가, 그 맛에 살짝 질린 사람처럼 세 번째 소설 중간에서부터 툭, 그 흐름이 끊겨 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확실히 이 직가는 저돌적인 데가 있는것 같다. 뭔가를 미리 아주 잘 짜서 구상한대로 건축물을 그리듯이 크게 설계도를 짜 놓고 쓰는것 같지는 않다. 대신 이 작가에게는 그 문장력이 있다. 무엇을 써도 그럴싸해지는 힘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무엇'을 잡아내는, 매력적인 소재들을 탁 잡아내는 능력이 있는것 같다. 한세진이 납작 복숭아를 먹는 장면, 이 소소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납작복숭아는 즙이 많고 적당히 말랑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것 같았다. 한세진은 배가 부를 때까지 복숭아를 먹고 씨를 모아 욕실 세면대 아래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 뒤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265) - 사실 이 문장은 소설의 전체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으로 인물의 아주 작은 동작들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세세함. 

    납작복숭아는 아주 미미한 소재이고, 비슷한 예가 바로 '양갈보, 양색시'라는 단어이며, 이를 둘러싼 노먼이라는 인물의 심리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하나의 큰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만큼 무거운 주제다. 작가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소재를 놓치지 않는것도 힘이다. 


궁금한 점, 내가 놓친 부분:

하미영(한세진의 애인)과 도시의 관계성은 무엇일까?



인상에 남는 문장들 [리디북스 페이지수로 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나탈리를 향해 다가오니까. (267) - 아주 적절한 소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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