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이름 외우기가 힘들다. 먼 나라, 먼 시대의 사람 같은데, 읽다 보면 조금씩 빠져들게된다.
[아무것도 아닌것]
꽁트같다. 반어가 많다. 뭔가 반대되고, 말도 안되는것 같은데도, 읽힌다. 덜렁대는 아내가 먹을 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둘은 평화롭게 굶었다. 이야기 끝.
[블라디미르]
우화같은 이야기. 짧다. 그럼에도 이 짧은 분량 속에서 블라디미르 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짧게 짧게 내뱉는 성찰이 담긴 말들이 좋다. “여담이지만 모방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모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대한 가치는 오직 본연의 특색에서만 유래할 따름이다” (149/552 리디북스 전자책 쪽수)
[콘라드 페르디난트 마이어1 기념일에 바치는 헌사]
교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난다. 뭐 그냥 그렇다. 대신 독일어 표현 ‘수염 속으로 말한다’는 표현이 재밌다.
“도시의 유명인사가 뭔가를 수염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흔히 수염속으로 중얼거린다고 말한다. 어떤 관용구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저절로 생겨나기도 한다”(155/552)
한국어 관용구를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할때. ‘똥줄이 탄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
[비행사]
아주 짧은데, 뭔가 생각하게 만든다. ‘바보, 천치, 등신’이라는 표현에 대한 작가의 생각. 이제 등신 이라는말, 병신이라는 말은 좀 장애인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안 쓰지 않나 싶기도 하고. 다음과 같은 독일어 표현도 재밌다.
“예를 들어 자지가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가리켜서 통속적인 표현으로 머리통에 “새가 들어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 (162/552)
노골성의 문제.
[그라이펜 호수]
작가가 실제로 독일의 이 그라이펜 호수에서 느끼는 고요함, 자연의 위대함을 짧게 그려냈다. 나쁘지 않다. 아름답다. 소묘. 풍경화 같다.
[한 남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엉뚱한 대답, 말도 안되는 결론, 정반대 같은 결론, 뭐 이런걸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다.
좋은 표현도 많다.
“당신이 궁핍을 겪어야 한다면 궁핍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세요.
증오는 인간의 정신력을 파괴적인 방식으로 망가뜨립니다.
학식 높은 사람들의 지적인 말보다는 당신 자신의 마음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가능하면 학자들은 피하도록 하세요.
(중략)
지몬은 스무 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가난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170-173
[젬파하 전투]
전투 상황 묘사가 좋다. 마지막 문장도 좋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나무와 덤불은 희미한 저녁빛 속에 은은하게 빛났고, 태양은 검은 산기슭 언덕 사이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죽은 남자처럼 가라앉았다. 잔혹한 전투는 끝이 났다. 세계의 배경에는 눈처럼 새하얗고 창백한 알프스가 아름답고 차가운 이마를 드리우고 있었다. 191/552
절대권자인 삶은 역사마저도 재촉하여 서둘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194/552
[프리츠]
방식이 재밌다. 뭔가 꼬이고 꼬이고, 꼬고 꼬고, 스프링 같은, 용수철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신기함. 질문을 하고, 또 하고, 상황이 바뀌는데, ‘그래야만 했을까?’ 라는 식으로 비슷한 질문을 계속 한다. 그것도 재밌고, 단어를 먼저 내세우고 (주로 공간이었다가, 나중에는 신체 부위로 바뀜) 장면 전환으로 삼는것도 재밌다.
‘위에서 말한 그런 연구를 하려면 반드시 꼭 라벤나로 가야만 했을까? 라벤나와 같은 도시를 영원히 보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198/552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의 반복임.
[그거면 됐다!]
풍자적임. 모범적인 시민이 되려면 생각을 많이 하면 안되고, 관념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면 안된다.
[설강화]와 [겨울]
두 작품 다 겨울, 자연, 꽃, 을 칭송하는 내용임. 확실히 이 작가는 겨울과 어울린다. 차가움.
[부엉이]
이 문장이 마음에 쏙 든다.
“크게 성장하려고 노력했던 부엉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차분하게 견뎌내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으로 현존하는 법을 안다.”232/552
[내가 까다롭나요?]
거의 일기에 가까운 글 같다. 생각이 많고, 잡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생각들이 정리가 안되어 있는 상태, 그대로를 노출하고 있고, 뭔가 (정확한 이 글을 썼을 당시 작가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계속 여기 저기 방을 찾아, 방황하는 것 같고, 심지어 이 사람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게 확연히 느껴진다. 안타깝고, 뭔가 불쌍하다.
[파리의 신문]
푸념 같은 글.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작가인데, 왜 프랑스어는 존귀하게 여기면서, 독일어를 하찮게 여기는걸까?
[툰의 클라이스트4]
그냥 작가가 너무도 지독하게 외로웠구나 싶다.
[신경과민]
이 한 단어로 글 하나를 만들어 냈네.
다음과 같은 줏대가 맘에 든다.
누군가가 내게 “우와, 너 진짜 최고로 신경과민이야”하고 말한다면, 나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꾸할 것이다. “그래, 나는 진짜 최고로 신경과민이야. 나도 알고 있어.” 그것으로 이 화제는 종결될 것이다. 괴팍함, 사람은 괴팍해야 하고 스스로의 괴팍함과 더불어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스스로의 약간 기괴한 면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두려움은 그 자체로 우둔하다. “당신은 못 말리게 신경과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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