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만남의 순간들

미국 공립 초등학교 대체교사 3주차 금요일

by 달순

#갑작스런 변화 - 유연성이 필요한 대체 교사

미국 공립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일한지도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간다. 콜로라도 주에서 6개월을 일했고, 이 주로 이사오고 나서 일을 시작한 지는 삼주차이다. 3주차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도 전날처럼 '유치반 보조교사같은 역할을 하려니' 라고 생각하고 학교 사무실로 갔다.

사인 인sign in. 하루 살이 같은 대체 교사에게 이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내가 여기 왔습니다! 라고 사인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의 하루치 일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 다음 역시 중요한 것은 오피스에서 일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일. 특히나 나는 이 학교에서 비서로 일 하시는 T가 참 좋다. 커다란 웃음 자체에서 뭔가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녀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하더니, 내게 "오늘 갑자기 5학년 담임 교사가 수술을 하게 되어서 그 교실 대체 교사를 해 줘야 할것 같아요."

분명 나는 일 년 전 초등교육 전공 학부 졸업장을 따기 위한 교생 실습을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했었다. 그럼에도 그 일을 다 까먹을 사람처럼 굴었다. 요 며칠 계속 유치반에 있다가 10세 아동들이 있는 5학년 교실에 가라니,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다. 유치반에 있다가 오 학년에도 갈 수 있어야 한다. 대체 교사는 정말로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학교/학군이 요구하는 곳은 다양하기에 거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 이민 살이, 아니 삶 자체가 다양한 형태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갑작스런 변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통해 배운 것 같다.


#24명의 새 얼굴들 - 뭔가 특별한 만남

초등학교 오학년들은 그래도 확실히 뭔가 편한 것이 있었다. 한국 나이로는 12살이고 미국나이로는 10세인 이 아이들은 유치원 아이들에 비해 훨씬 일이 적었다. 유치반 아이들은 정말로 일일이 모든 것을 하나 하나 다 설명해 줘야 하고, 몇 번씩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5학년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말길을 다 알아 들었다.

또한 이번에는 아이들과 내가 뭔가 궁합이 잘 맞았는지, 무척이나 상대적으로 시간이 잘 가는 그런 좋은 하루 였다. 대체 교사라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담임 교사가 남겨놓은 수업 계획표를 다 따라줘야 하고, 노트도 남겨야 한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누가 선생 말을 잘 따라줬고, 누가 말을 잘 안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적어줄수록 담임 교사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날의 수업 계획표에는 '내가 사랑하는 나라/주'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 혹은 자신의 부모의 나라 혹은 주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왜 이 주/나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문장으로 써 보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왔고, 러시아어를 할 줄아는 나는 내 최대한의 역량을 교실에서 써 먹었다. 놀랍게도 이 교실 아이들은 상당히 국제적이었다. 이라크에서 온 친구, 수단에서 온 학생, 마샬 아일랜드에서 온 아이들, 몰도바/우크라이나 부모를 둔 아이, 독일계 아이, 겉에서 보면 푸른 눈에 금발인데 할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아이, 베트남계 미국인 아이 등 무척이나 국제적이라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한 약속으로 '너희들이 말 잘듣고 조용히 하면 내가 하교 종 치기 전에 노래를 불러주마' 라고 약속을 했다. 일부 아이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리랑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대체 교사 경험자로서 이 날처럼 아이들과 8시간도 안되었지만 어떤 교감을 나눴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던것 같다. 열 살이 된 아이들과 삼십대 중반인 나. 우리가 이토록 다르지만 그래도 어떤 교감을 할 수 있는것 자체가 신기한 일 같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내게 참 많은 관심을 보이고, 내가 한게 거의 없는것 같은데도 나한테 '정말 좋은 선생님이에요' 라고 칭찬을 해 준다. 이유를 알수 없고, 그래서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고맙다. 그래서 나는 아리랑도 불러주고, 그래도 또 시간이 삼 분이 남았다. 생각난 김에, 아이들의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한글로 적어줬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내가 다 신이 났다.


#눈물

내가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주고, 화이트보드에 아이들의 이름을 써 주기 전, shout out/apology 타임을 가졌다. 너희들 중에 만약 '나는 오늘 누구에게 고마움 혹은 사과를 표하고 싶다'를 하고 싶으면 공유해 봐라. 몇 몇의 아이들이 '친구 누구누구가 내게 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등을 이야기 하고, 또 조금 말썽을 일으킨다 싶은 아이가 자진해서 '오늘 내가 좀 나쁘게 군 것을 미안합니다.' 라고 말을 하니 내 마음도 녹았다. 또 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해줬다. 어흑흑. 괜히 나도 눈물이 날뻔했다. 그런데 수단에서 왔다는 아이가 '오늘 내가 좀 나쁘게 굴어서 미안' 이라고 말하며 흐앙 하는 눈물을 뿜었다. 큰 소리를 내며 울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눈물을 순식간에 흘려서 깜짝 놀랐다. 이 아이는 수단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5학년이지만 영어 읽고 쓰기가 익숙치 않다. 이 아이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 열 살 아동이 유치반 아이처럼 엉엉 울며 굵은 눈물을 흘리자 옆에 있던 마샬 섬에서 온 아이들이 안아 주었다. 내가 또 다시 이 교실에 와서 대체 교사를 할 지는 장담을 못하지만, 꼭 아이들이 잘 커서 미국 곳곳에서 의미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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