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탈탈 - 허탈감

미국 공립 초등학교 유치반 보조교사 한달 마감하는 날

by 달순

#탈탈탈탈

허탈감이 푹 들었다. 오늘은 조기 하교하는 날 Early Release. 아이들은 보통 오후 세 시면 줄 서서 밖으로 나간다. 밖에는 이미 부모들이 와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시월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워싱턴 주라 추울 줄 알았는데 오늘도 햇살이 따듯하다. 오늘은 오후 세 시 대신 두시 가까이 되어 아이들이 하교를 한다. 담임 선생님인 P는 아이들이 나가기 전 "오늘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나를 도와주는 마지막 날입니다. 월요일부터는 시월이 시작되고, 이 반에서 성인은 나 혼자이니 여러분이 내 말을 잘 따라줘야 해요. 그리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말하세요." 그러자마자 병아리같은 다섯살 아이들이 입을 모아 쌩큐 미시즈 *한다. 그 말이 참 고맙다. 그래도 직장이니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보여주면 안될것 같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언제나 P선생님 말을 잘 듣기를 바랍니다." 라고 간단히 인삿말을 했다. 아이들이 문을 열기 전 내게 포옹을 해 줬다. 아이들의 키는 내 다리에 닿는 정도다. 담임 교사에게도 미리 준비해서 가져간 작은 핸드로션을 줬다. 그것을 받자, 그녀의 첫 마디는 "아니 이걸 내게 왜?" 였다. 아, 그 말을 하는데 불현듯 이전 직장 상사의 얼굴이 떠 올랐다. @님.


#사회 초년생 시절 만났던 @님

@님은 키가 크고, 살집은 없었다. 그래서 늘 뭔가 그 분의 양복이 크게 느껴졌다. '빡센' 한국 사회에 늦은 나이로 입사해, 마치 늦게 군대에 들어온 훈련병처럼 그냥 모든 것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당시의 나에게 꼬리표는 사회 초년생이다. 그렇게 어리버리하고, 눈치도 잘 못보고, 그러했음에도 나를 챙겨주셨던 @님. 그 분의 생일이 며칠 후라는 것을 알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아무날도 아닌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을것 같은데!!!! 직장 상사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뭔가 챙겨드려야 할것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를 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당시 한국인 중년 남성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와인? 커피? 암튼 그것을 아침일찍 가서 내밀었더니 글쎄 부장님 얼굴이 아주 하얗게 되면서 고개도 절레절레 흔들 뿐 아니라, 너무도 '안돼!'라는 표정을 엄하게 짓고 있으셔서, 정말로 나를 뇌물이라도 주는 사람처럼 대했다. 민망했다. 내 손을 민망하고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순간이고, @님의 인간성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런데 수 년이 흐른 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님의 그 절레절레하는 손이 느껴진 이유는, 그 표정과 말투 뒤에 있는 어떤 솔직함, 맑은 인간성이 이 유치원 선생님P에게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은 로션을 주는 마음

사실 나는 아침에 여행용 미니 로션을 가져가긴 했지만 왜 내가 주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은 확실히 서지 않았다. 어찌보면 P선생님이 내게는 일시적인 갑이었고, 나는 그녀를 도와주는 협조 교사로서 그녀 밑에서 일을 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내게 부탁하는 일은 모두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가 넘게 매일 여덟 시간씩 한 공간에서 그녀의 일을 관찰하는 것은 의외로 많은 배움의 자리였다. 선생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얼마나 섬세한 눈을 그녀가 갖고 있는지를 배웠다. 또한 그녀는 내게 큰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부리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은가. 그녀 역시 내게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대신 일을 시킬때 나를 배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녀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늘 내게 크건 작건 일을 주었다. 이것들좀 다 가위로 잘라주세요. 이것들은 여기에다 풀질을 해서 이 옆 종이에 부쳐 주시면 됩니다. (풀질을 하는 종이까지 마련해 주신다.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의 대가라도 부를 수도 있으리) 스물 네 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종이 위에 형광펜으로 쓰고, 그 위에 검은색 얇은 펜으로 점을 찍고 작은 선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그걸 보고 아이들이 연필을 점 위에 대고, 선을 따라서 알파벳을 배워나간다. 이 형광펜과 검은 펜의 작업을 처음에는 보고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두 세번 하다 보니 아이들 이름까지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그러나 P선생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줬다. 예컨대 내가 '보조 교사'라서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마지막에도 아이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나의 떠남을 언급해 주는 것을 보고, 참 '된사람'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몇불도 하지 않지만 마음을 담은 로션을 주었다.


#되돌아보면 많은 것이 해피엔딩

되돌아보면 과거가 미화되는 일이 있다.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지나가면, 지나가서 뒤돌아보면 '아 그땐 그랬지' 하면서 미화된다. 사실 이 일터도 쉬운 곳은 아니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아이들 신발끈을 하루에도 수번씩 매 줘야 했다. 무릅 꿇기는 기본 (아이들 앉은 키가 작아서)이다. 그래도 물리적으로는 고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힘이 들지 않았던 좋은 일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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