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기

미국 공립 초등학교 협조교사 6일째 기록

by 달순

#폭력을 감지하는 순간

특수 교사 '엠'은 만난지 며칠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만에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다. '엠'은 늘 웃는 얼굴에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특히나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는것 같아 보인다. 아이가 분노를 터트리는 순간에도 친절한 말투로 대응을 한다. 그녀가 주로 '관리감독'하는 아이 '에이'가 있다. '에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안되면 난리가 난다. 주먹을 쥐고 펄펄 뛰고 학교 복도를 수십번 왔다갔다한다. 오늘은 School is stupid! 라는 말을 참으로 여러번 말했다. '엠' 교사는 아이 '에이'를 데리러 과학실에 와 있었다. 그녀가 '에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말썽꾸러기 '씨C'군이 따라 나선다. '씨'군! 너는 가면 안된다. 지금은 과학 시간이고, 너 마음대로 교실을 나가면 안된다. 라고 말했더니 '씨'의 분노가 다시 터져 나왔다. '씨'는 상당히 다혈질같이 보인다. 짧고 꼬불꼬불한 갈색 머리카락에 약간 들창코를 가진 씨. 씨는 형도 같은 학교에 다닌다.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씨를 제지하자, 이 아이는 내게 주먹을 날리고, 발로 찬다. 5세 아동임에도 화가 나서 하는 발길질과 주먹질은 안아픈게 아니다. 그런데 일 초 뒤, 먼저 나갔던 교사 '엠'이 다시 들어왔다. I just saw it. Hitting teacher is not allowed in this school. 그녀가 언어화한 것은 별 것이 아니다. '교사인 당신을 5세 아동이라 할지라도 때리는 것은 용납이 안됩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데 알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뭐랄까. 내 자신이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인지해 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화가 난다고 내게 아무렇게나 발길질과 주먹질을 한 씨는 그래서 몇 시간동안 교실 밖에 있어야 했다. 나 역시 교장에게 알려주었다.


#'티T'의 웃음과 독서

오전에는 티가 담임 교사의 꼭지를 돌게 했다. 티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왜소하다. 키도 작고 마른 몸에 거의 매일 똑같은 빨간색 면자켓을 입고 온다. 제2외국어로 영어를 쓰는 티는 영어 습득이 느려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데 서툴다. 티가 잘하는게 있다면 두 가지인데 첫번째는 늘 배실배실 웃고 있다. 검은 눈동자가 참으로 반짝거린다. 티가 잘하는 두 번째는 담임 교사의 말을 참으로 안듣는 다는 것. 그런데 이 두가지가 조합이 되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담임 교사는 티의 이름을 수차례 부르며 '카펫으로 돌아와서 앉아라.' 하는데도 그는 배실배실 웃으면서 교실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고, 이것 저것을 만져대고, 어쩔 땐 아예 카펫에 드러누워 버린다. 그래서 담임 교사의 한계에 도달하여 내게 '*선생, 티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집으로 전화하세요!' 한다. 그녀의 손에 있던 노란 티켓을 내게 주었다. 나는 티를 데리고 사무실로 나갔다. 흠.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사무실에 가서 이 노란 티켓을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건가? 일단 가 보자. 사무실 직원 역시 어리둥절, 나 몰라요. 표정이다. 그녀가 묻는다. '그래서, 누가 전화를 해야 하는겁니까?'

나의 해결책은 지나가던 '부교장' 선생님께 노란티켓을 보여주며 상황설명을 해 놓았다. 나 혼자 단독으로 결정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다. 부교장에게서 컨펌을 받은 후, 티의 집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었다. 티 어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저 티가 있는 교실에서 일하는 협조 교사 ***입니다. 오늘 티가 정말 여러번 담임 교사의 말을 안듣네요. 티에게 뭐라고 좀 어머님께서 해 주십시오.' 티는 자신의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도 표정이 진지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배실배실 웃고있다. 그래도 대답은 오케이 오케이 한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담임 교사의 반 아이들은 놀이터로 향했다. 티가 행동의 변화가 없기에, 그에게 바깥 놀이를 하게 하면 현재로서는 교육 효과가 없을것 같다. 나는 티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서 앞에 놓인 책을 읽기로 한다. 한 권은 그랜드 캐년으로 놀러간 가족의 이야기다. scat이 동물의 대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하! 일하면서 배우니 일석 이조구나!


#옆반에서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점심 휴식 삼십분을 하고 나서 담임 교사반으로 갔더니,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오후에는 옆 반에서 일하시라고 하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따른다. 옆 반에는 '에이'라는 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말을 어제도 듣긴 했다. 옆 반의 '에이'를 전담하는 교사가 있는데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에이' 역시 학교에 나오지 않아 나는 다시 담임 교사의 반에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옆반으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선생님의 교육 스타일을 보는 것도 배움이다. 옆반 선생님의 교실은 좀 더 공간이 넓어 보인다. 5살 '에이'는 우물우물 말을 해서 말을 잘 알아듣기가 힘들다. 며칠 전부터 다른 교사들이 내게 공포를 심어주듯 말했다. '에이는 정말 많이 뛰어 다녀요. 그 애 잡으려면 당신도 늘 쫒아 다녀야 할거에요.' 그런 말을 주사 맞듯 들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가 내게 때리기도 하고 이미 학교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가는 아이를 봐서인지, 아니면 '에이'의 오후 행동이 유난히 차분한 탓인지 나는 지나치게 힘들지 않은 오후를 보냈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초록색과 갈색이 섞인듯한 눈빛의 '에이'. 그런데 그 눈빛에 초점이 없어 보인다. 저 눈빛 뒤로 무슨 공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에이'가 적어도 오늘은 교실 안에서만 이리 저리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책상 안으로 기어 다녔다는 것. '에이'의 담임 교사가 마지막에 내게 '오늘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이제 가 봐도 됩니다.' 라고 해 주니 나도 기분이 좋다.


#제목 '넘어가기'에 대하여.

왠지 모르지만 쉽지는 않은 하루였다. 어떨 때는 지금의 상황을 전부 소화시키고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학교에서 일하면서도, 대체/협조 교사이기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혹은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협조교사가 내게 명령조로 말을 하고, 나를 하대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들, 굳이 내가 그녀와 대면하면서 '왜 나한테 그러는거죠?'라고 하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내 모습을 스스로 볼 때 드는 괴로움 따위는 그냥 넘어가야 한다. 그런 감정들은 집중하는게 아니라 넘어가는게 답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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