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살이 딩크족의 생존. 나서고 또 나서다보면......
#어제의 일기 - 지루함, 바닥을 치다
"미국에 한 번 살아봐라. 얼마나 심심한지 모를거다."
이 말이 내겐 해당되었다. 특히나 어제는 황금같은 휴일 첫 날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넘치고 생산적으로 쓰지도 못하면서 먹는 것으로 시간을 죽였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남편은 출장중이다. 맞다. 한 달 전에도 갔던 출장을 또 일주일동안 가 버렸다. '혼자서 그 따수운 곳에서 재밌냐?' 라고 이죽거리고 싶은 마음이 충돌질을 한다. 전화를 해서 '심심해서 미쳐버리겠다규~!!!!' 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또 뜸금없이 "왜 우리같은 사람들한테는 친구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걸까?" 라고 불쑥,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맞다. 나는 미국살이 6년째, 남편은 30년 넘게 살았는데, 부부인 우리에겐 부부친구가 없다. 어떤 이들은 부부동반으로 같이 새로운 도시에 여행도 가고, 디디 DD Designated Driver 라고 하면서 (한 사람이 고정으로 운전하는 일) 뭔가 새련된 스타일로 살아가는것 같은데, 우리는 왜 그것이 안될까? 아니면 하다못해 바베큐하러 놀러와~! 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더 문제는 우리집엔 바베큐할만한 너른 뜰도 없다.
이리 저리 생각의 짱돌을 굴려본 결과, 우리에게 부부친구가 없는 이유는 첫번째, 우리가 딩크족이라 그렇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학부모' 혹은 '아기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다고 친구가 될까? 그냥 학부모 대 학부모로 만나는거겠지? 그런데 친구를 만들자고 아기를 먼저 만드는건 더 이상하다.
참고로 나는 미국 이민 1세고 남편은 한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1.5세대다. 남편은 한국말도 잘하지만 영어가 편할텐데도 굳이 집에서는 한국어를 고집한다. 1세대와 1.5세대 사이엔 태평양같은 차이가 존재하나,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어쨌거나 나는 이 곳에서 '수다떨 친구'하나 만들지 못한채 주말이면 이러코롬 심심하여 바닥을 긁는 토요일을 보내 버렸다. 분명히 내겐 휴일이었는데 휴일에는 사람을 잘 만날 기회가 없으니 더 괴롭게 느껴졌던걸까. 남편은 또 허를 찌르는 한 마디를 한다. '뭐라도 해라. 넌 사람을 만나야 기운이 나고 그런 스타일이야.' 라고 조언을 해 줬다. 맞는말이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진이 빠질 때는 아득한 한국 시절의 이야기다. 한국에는 초,중,고,대 학교별 동창들도 있고, 마음 맞게 수다 떨수 있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과 수다를 떨려면 아직 일 년은 기다려야 할것 같다. 그렇다고 이 꿀같이 귀한, 아니 꿀보다 더 귀한 시간들을 집에서 뭉개면서 고프지도 않은 배를 채우며, 우울감과 함께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 결심이 섰다. 그 느낌표 빵! 하는 결심이 서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이제 내게 남은 나머지 하루의 휴일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뭐라도 내가 나서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공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 말을 알면서도, 엉덩이는 무겁고 특히나 요즘같은 추운 겨울에는 유리창을 오래 쳐다 볼 수 없다. 저 한없이 내리는 눈발이 언제쯤 그칠까. 그 생각을 하고 1분 뒤에 다시 유리창을 쳐다보면 눈발이 여전히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차 위에 쌓인 눈이 내 손바닥 한 개 반은 되었다. 바닥에 쌓인 눈은 어찌나 깊고 푹신한지 무릎까지 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눈들이 솜털처럼 가볍고, 반짝이며, 양 손으로 힘껏 눈갈이로 걷어내면 그래도 눈이 치워진다는 것. 차 유리창 눈을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난 정말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지 못했다. 집에서는 잠을 자고, 배고픔을 해결하면 좋다. 뭐라도 한 자 끄적이거나, 하다못해 가방 정리를 하려고 해도 집 밖으로 나가야 하고,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게으름과 싸우면 늘 나는 백전백패이고, 그 결과는 지나친 음식 소비로만 이어진다. 주변 공기를 바꿔줘야 정신이 든다.
그렇게 해서 오늘 두 곳을 나섰다. 첫번째는 집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 가서 줌바Zumba 하기. 줌바는 미국에 온 후로 내 친구가 되었다. 일종의 에어로빅인데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들어대면 그래도 또 한시간이 간다. 그 한 시간동안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온 몸에 땀이 나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난 아직까진 죽어도 혼자 트레드 밀에 올라가서 악을 쓰며 달리는 건 재미를 못 붙였다. 그런데 줌바에는 춤의 정신(그게 뭔지 모르겠지만)이 살아있어서 참 좋다. 클럽에 온 것같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듯이 몸을 흔들어댄다.
운동을 하고 두 번째로 온 곳은 이 곳 시내 도서관이다. 늘 주차비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오늘처럼 눈발이 계속 날리는 날에는 그래도 차를 보호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이전에 갔었던 스피치 클럽에 다시 갔다. 오클라호마 주, 콜로라도 주, 워싱턴 주, 지금까지 세 개의 주에서 살아 보았으며 그 이동의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스피치 클럽이었다. 이 모임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으나, 일단 이 글의 중심에는 그래도 내가 무엇을 했나이기에 다음에 풀기로...
만약 당신이 이민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없는 부부라면 심심함과 무료함을 견딜 수 있는 다양한 놀이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차라리 일에 가는 게 속 편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금쪽같은 시간에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금전을 취득하는 것이 일이다. 그러나 일하려고 이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왜 태어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만족하면서, 뭔가 성장의 느낌도 받는 그런 일들로 채우면 된다. 한국에서는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다. 일단 시간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생기면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인생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이 가 버린다. 그런 바쁨과 혼잡함이 미국 중소도시에서는 없다. 그런데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겨울 이불같은 눈이 한무더기 쌓인 걸 보면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더 막힌 기분이다. 그 길을 내는 자는 나, 혹은 당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