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마음에 써 본다, 이 네 글자. 이민 생활의 자세

by 달순
외로운 이민생활, 한국어 수다 친구가 필요해

해외 이민 생활에서 힘든 점 중 하나는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이다. 이십대 시절엔 그토록 많았던 친구들이 지금은 너무도 닿기 힘든 곳에 있다. 아니, 닿기 힘든 곳으로 내가 와 버렸다.

"그런데 말이야,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이런 말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최근에 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 친구가 한 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마음만 통하면 깨톡으로 무료 전화 연결이 된다.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시공간 감각이 없어지고, 십년도 더 전으로 돌아간다. 같이 저녁을 사먹고 수다를 떨었던 풍경. 때로는 과거의 인연이었던 사람과의 통화가 일상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짧은 위로 뒤로 오는 것은 긴 씁쓸함. 뭔가가 씁쓸하다.

'아, 그때 그 사람들은 뭔가 다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모양 이꼴인가'

하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그러면 그 자책감은 또 나의 이민을 돌아보게 한다. 나, 정말 잘 살고 있는거야?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자. 소문과 풍문으로만 '~카더라' 소식으로 내가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다시, 이 곳에서의 나. 그렇기 때문에 해외 살이에 '독고다이'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혼자 있음에도 적정량이 있다. 나에게 적정량은 8시간 정도 혼자 있는 하루 혹은 이틀. 이 독고다이가 지나치게 많으면 좀 맛이 가는 것 같다. 내게 지금까지 미국 살이의 절반이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갓 결혼을 하고 신혼의 단꿈이 끝나고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눈을 씻어봐도, 집 밖으로 내가 운전해서 어딘가를 가지 않으면 도저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럴 때는 하루 종인 에너지가 고일 데로 고여 퇴근한 남편에게 속풀이와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지겨운 소리. "내가 여기에 왜 왔는데! 다 버리고 너한테 왔건만!" 사실 '내'가 다 버렸고, '내'가 온 것이건만 사람이 맛이 가면 그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다.


일이 중요한 이유

이민 육년 차. 지금은 내게 소중한 일이 있다. 일도 있고, 매일 아침 응가와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30분씩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반려견도 있고, 남편도 있다. 내 일은 한국에서의 전공과 무관하다. 그래도 적성에 맞는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나의 사회성이 이 일터에서 발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동료들을 만나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물어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내게는 딱이다. 이 일을 한 지 약 반년이 되어가는데, 쉽게 놓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한 후로는 '사람 고픔'현상이 줄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일아, 고맙다. 나의 '에너지 고임' 현상을 막아주고, 향수병을 줄게 해 주고, 한국 친구들과의 수다가 너무도 고프지만 그 고픔을 (일의 고단함으로) 잊게 해 주니 말이다.


그래도 제목이 독고다이인 이유

그럼에도 이 글 제목이 '독고다이'인 이유는 어쩔 수 없는 대나무 벽은 가끔씩 불쑥부쑥 이민 생활에서 튀어나온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 영어 스피치 모임에 갔다. 모임에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야호...... 그런데 나의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은 가득한데 반대로 상대방의 나에 대한 호기심은 '영'인것 처럼 보일 때. 에잇, 그럴때는 그냥 흥! 해 주면 된다. '뭐 어쩌면 당신의 눈에는 악센트가 있는 내 영어 때문에 내가 그냥저냥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 봐, 사람 인생 모르는거야!'라고 속으로 흥!해 주면 그만이다. 그럴때 마음에 새겨지는 네 글자. 독고다이. 일본어가 섞인 구시대적인 말이지만 그 어감에서 주는 씁쓸함과 독한 술 냄새같은 느낌 때문에 쓴다.

앞의 이 작은 이야기를 대나무 벽이라고 한 이유는 뭔가 내가 아시안이기에 상대방이 나를 다르게 대할때 생겨나는 감정에 대해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고다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더욱 깊이 새겨질 때도 있다. 이 때는 미국에서 같은 한국어를 쓰는 한인을 만났을 때이다. '모든' 한인에 대하여 함부로 나쁘게 평가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이민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참고로 내게도 짧게 만났지만 다정한 느낌, 감사함 마음이 드는 한인들도 가뭄에 콩나물같이 존재한다.


'어떻게해서든 이용하고 싶은 마음'

한인은 다른 한인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드나보다. 이 낯선 미국 땅에서 한국어라는 말이 쉽게 통하니,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정보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어디에 살아요?', '무슨 일해요?' 그런데 이 질문을들 왜 하는걸까? 어디에 사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신의 경제력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이 지역에 대한 정보 파악이기도 한것 같다. 정말로 궁금했다. 안 지 몇분도 안 되었는데, 다짜고짜 어느 지역에 사는지를 상당히 궁금해 하는 것이 말이다. 당신이 이 도시에서 핫 한 지역에 사는지, 전통적으로 부촌에 사는지, 아니면 그냥 그저그런 지역에 사는지에 대한 호구조사인 것일까? 이제 나도 이민 6년차로 접어들었으니 내 대답에도 조금은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시옷!'과 같은 단단함을 넣어본다. "어디 살긴요. 이 도시에 살지요. 이 근처 살아요." 푸하하하하하하! 내 주소를 알려줄 줄 알았지? 아니 내가 왜? 처음보는 아줌마도 나한테 무례하게 내 호구조사 했으면서 내가 왜 곧이 곧대로 알려줘야되요? 나는 이 속말 대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 다음질문은 "학생이야? 무슨 일해?" 이것은 좀 더 노골적인 상대방을 파악하고 싶은 심리다. 너가 이 미국 땅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 너라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라고 생각이 드나보다. 하긴 세상에서 일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나 의사야! 하면 오, 정말? 하면서 말도 안되게 기가 죽을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은 다시 독고다이다. 미국 이민생활에서 한국인을 만나 그들과 깊은 우정을 쌓고 살아가기엔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한것 같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은 이제 봄이 되었다는 것. 조금만 더 따듯해져서 자전거를 타리라. 자전거를 타고 봄바람을 맡으면 이 모오든 잡동사니같은 마음의 찌꺼기들이 훌훌훌 날아가 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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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국 워싱턴 주, 2019년 2월


*이 글의 내용과 사진은 본인 (필명 달순)에게 귀속되어 있으니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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