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없이 일주일,
벨라와 일주일

by 달순

제목 그대로다. 남편은 현재 출타중이시다. 이 주 동안 타주에 출장을 갔다. 남편이 없는동안 나는 무한한 자유를 느낄 것으로 예상했고, 그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아, 이제는 서방님 눈치 보지 않으면서 마구마구 내맘대로 해도 되겠구나! 야호! 내게 잔소리 할 사람이 이 주나 사라져 버렸으니 참으로 기쁘도다, 해방이도다!'

이런 쾌재를 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며, 그래도 겉으로는 못하는 연기를 했다.

"아, 당신이 없으면 엄청 외롭고 슬플꼬야..." (듣기 민망한 아양이다.)

정말로 남편은 일요일에 비행기를 타러 후루룩 집밖으로 나갔다. 내가 굳이 공항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몇번이나 제안을 했건만, 그는 이를 쉽게 거절했다. 주차비가 나오니 굳이 너가 나를 데려다 줄 이유가 무엇있겠느냐. 지엄하신 서방님의 말씀이라 거절하지 못하옵고 (참고로 남편은 나의 이 표현의 뉘앙스를 알지 못할듯 하다. 이민 1.5세의 한국어 교육이 여기까지 커버하지 못함이 통탄스러울따름이다.) 아파트 문에서 안녕 안녕을 했다. 자,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저 큰 두 글자, 아니 세글자 자-아-유.

그런데 현관문이 닫히고 돌아서니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저것은 무엇인고... 생명이 가득한 꼬물꼬물한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말 못하는 짐승, 하얀털과 회색털이 섞인 시추 개 '벨라'였다. 그녀는 약 일 년전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거금을 주고 그녀를 사들였으며, 현재 두 살이다. 인간의 나이로는 16세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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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말그대로 나의 일주일을 온통 집어삼켜 버렸다. 나는 내 허벅지보다 작은 이 작고도 여린 짐승을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중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개에게 인간이 먹는 음식중 최고로 비싼 음식을 먹이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내가 의미하는 '의전'의 팔 할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애완견이 이토록 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줄이야......

남편이 없이 혼자 눈을 뜬 월요일. 알람을 맞추고 눈을 번쩍 뜨니 바로 내 옆에는 남편의 배게 바로 밑에 벨라가 온 몸을 축 늘어뜨리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일 년 전, 처음으로 애완견을 집에 들였을 때 내가 기필코 주지시키고 싶었던 것은 '개는 개집에서, 인간은 침대에서' 였지만, 남편은 오홍홍홍, 우쯍쯍쯍 하면서 벨라를 안고 침대로 와 버렸다. 그 후로 벨라는 쭈욱, 침대에서 주무신다. 어쨌건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떠서 후다닥 잠옷을 가리는 겨울 잠바와 긴 바지를 입고 벨라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갔다. 사람에게도 '몇시에 뭘 하고 몇 시에 뭘하고' 하는 일상이 중요하듯 이는 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벨라가 침대 시트나 카펫과 같은 '빨래하기 힘든' 보들보들한 천으로 된 무엇에다 쉬와 응가를 하는 일이다. 사실 이 일은 지금까지 벨라가 우리와 함께 사는 동안 이십번은 족히 일어났다. 맨바닥에 쉬와 응가를 하면 박박 닦으면 될일이나 면에 하면 그 날로 두 세시간은 빨래방에 가야한다. 따라서 아침산책은 이 일들을 미리미리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소변과 대변과 같은 자연현상을 동물이 집안이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 응응 하고 참고 있으면 그 또한 얼마나 불쌍한가...... 우리는 벨라를 집 안에서 소/대변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무조건 밖이다. 과연 이게 잘한 것인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청결을 이마에 써붙이고다니는 남편님의 상식으로는 집안에서 대소변 훈련은 아니올시다이기에......

자, 이십분 산책을 하면 소대변을 다 밖에서 해결한다. 소변 보고 대변 보면 그때마다 늘 간식을 주어서 '우구구, 잘했네, 우리 강아지' 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벨라도 집 안에서는 노 오줌, 밖에서는 예스 오줌을 인식하는 것이니 말이다. 집에 왔으니 오전 8시 가깝다. 여전히 나는 씻지 않았고, 커피를 마시고 아침을 해결한다. 벨라도 밥을 먹는다. 그녀는 밥은 하루 한 번, 간식은 수 번을 드신다. 내가 일을 가기 전까지 몇시간이 남았다. 오전 9시부터 정오가 넘도록 벨라는 집에서 그냥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녀의 사회활동을 위해 우리는 거금을 들여 어린이 집에 보낸다. '개 어린이집pet daycare'이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를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나 친정 엄마는 노발대발을 한다. 아니, 인간도 아닌 개한테 그게 뭐하는 짓이냐 어린이 집이라니!!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어린이집이라는 이 단어는 좀 이상하게 들린다. 우습기도 하다. 포인트는 개의 사회 생활이다. 맨날 집에 혼자 있는것보다 다른 개들과 어울리면서 짓고 장난치고 놀 필요가 있다. 개 어린이 집에 대해서는 또 한 편의 글을 쓸만큼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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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운전을 해서 어린이 집에 가면 나는 말그대로 진짜 나만의 해방된 시간을 맞는다. 아, 이제는 고상하게 커피숍에 가서 이 우중충한 날씨에 어울리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아니 그보다 내게 중요한 영어책 읽기 혹은 내 영혼의 숨통인 글쓰기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내 꼴이 말이 아니다. 아직 이 눈꼽도 안떼고 꽤재재한 모습으로 아무리 여기가 미국이고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라 할지라도, 내게 그 정도의 용기와 뻔뻔함은 없다. 이 도시의 다운타운 홈리스들이 내게 말을 걸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시 또 집으로 들어간다. 집안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나의 한국 친구들은 안 볼 것 같은 막장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도피'를 즐긴다. 드라마를 보면 거기에만 빠져들기에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래서 일종의 도피이자 스트레스 풀이가 된다. 아아아아. 그런데 그러다 보니 또다시 내 시간을 내가 잡아먹은 꼴이 되었다. 위대한 작가는 못되더라도 그래도 글쓰기를 자꾸자꾸 하고, 영어를 더 해야 하는데, 이런이런 이제 출근준비를 할 시간이다.

사람이 일이 있어야 한다는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온 몸을 씻고, 머리에 고대기까지 해 주고, 화장을 하니, 그나마 거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작한 일에 한 달동안 정해진 옷을 입었고, 이제는 유니폼을 입을 차례다. 검은 바지에 벨트까지 매고...... 워후, 일에 맞는 옷을 입으니 벌써 출근지에 도착한 기분이다. 그런데 출근전 할 일이 또 생겼다.

다시 벨라를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데려온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잠깐이나마 쉬야를 하는지 오분이라도 산책을한다. 집에 와 십 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방문을 다 닫는다. 이제 너의 공간은 이 마루, 거실이다. -얘야, 나 없는 동안 똥오줌 싸지 말고, 간식 먹고, 혼자 잘~있어야해~. 휴우. 문을 잠그고 나는 출근을 한다.

일을 하고, 십 오분 휴식이 있다. 그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다리를 좀 쉬게 하고, 핸드폰으로 집안에 설치한 홈카메라로 벨라를 본다. 소파에 올라가서 쭈욱, 고개를 넣고 쭈그려있다. 남편이 있다면 퇴근후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 벨라는 무슨 생각을 할까? ......

남편이 없는 두 번째 주가 시작되었다. 이제 삼일 밤이 지나면 나의 자유시간도 없어진다. 그동안 적응한 것은 벨라와의 일상이다. 가장 겁이 나고 무서웠던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벨라가 이불위에 쉬야를 하지 않을까 였는데, 그래도 녀석이 실수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은 무조건 밖에서 산책을 시켜야 한다는 규칙을 지켰더니 이 일상에 적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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