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살이, 한식의 의미

교포 남편의 입맛, 아구찜과 40대 엄마, 식구의 의미

by 달순

#미국살이 육년차, 느는 것은 영어가 아닌 요리실력?


"미국에 오래 살수록 느는 건 영어가 아니라 요리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보니 맞는 말이다. 결혼 이민으로 미국에 온 나의 6년차 삶에 한식 요리는 생존을 위한 키워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결혼을 했으니 부엌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남편과 그의 입맛을 소개하겠다. 그는 서울 태생으로 생후 일년이 되어 미국 땅을 밟은 뒤로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다. 시부모님은 한국인분들이셔서 그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살지만 입맛은 한식이다. 그런데 교포의 입맛은 미국에 온지 육년차인 나의 입맛과 차이가 있다. 남편은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선호한다. 특히 엘에이 갈비를 좋아한다. 반면 나는 삼겹살이 좋다. 지글지글 판에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가 정겹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접한 미국화된 한식은 엘에이 갈비와 엘에이 떡이었다. 찹쌀을 넣어 케잌을 굽듯이 떡을 만드는 것인데, 쫀득하면서도 견과류가 들어있고 그 맛이 떡과 케잌의 중간쯤이었다. 미국 이민사 100년의 시간 동안 한인들이 만들어낸 한식이었다. 그 시간의 한귀퉁이에 나도 있었다. 우리는 군가족인데 그래서 주로 미국의 시골 혹은 중간 사이즈 도시에 살았다. 처음 살았던 곳은 오클라호마 주였고, 두 번째로는 그나마 한아름 마트가 있는 콜로라도이며 지금은 다시 한아름 마트가 없는 워싱턴 주의 한 도시에 살고있다.

X097YzKoShSP2V3PM8zkWg.jpg 올 여름 캠핑가서 먹은 엘에이 갈비입니다. 입안에서 살살 녹습니다.

#한아름 마트는 우리의 젓줄

오클라호마에 살때는 주말에 다섯 시간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클라호마 시티를 지나 텍사스 주로 진입하면 달라스 근처 캐롤톤이라는 시에 도착한다. 이 도시에 바로 우리에겐 꿈같은 에이치 마트H mart가 있다. 한아름 마트라고도 불린다. 이 대형 한식 마트에 가면 없는게 없었다. 특히나 60대 70대 한인 할머니들로 구성된 반찬 코너에 가면 말그대로 우리에겐 잔칫날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대도 투명 비닐팩 아래에서 빛나고 있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빨간 양념 통닭도 붉은 미소를 남편에게 날리고 있다. 나는 전생에 오징어였음을 고백한다. 오징어와 한치만 보면 평소에도 많은 먹보 욕심이 두배로 증가한다. 또한 반찬 코너에 놓여있는 다양한 종류의 반찬과 국류는 나의 애장 코너다. 한인 할머니들의 실력이 담긴 이 음식들이 나의 부엌에서의 노동력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워싱턴 주에 살면서 또 서쪽으로 열심히 네 시간 운전하면 시애틀 근처 타코마와 페더럴웨이가 나온다. 이 곳이 바로 한인 밀집지역. 에이치 마트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이상하게도 아구찜이 먹고 싶었다.


#워싱턴 주 공터에서 먹은 아구찜

"아구찜? 그게 뭐야? 확실히 너는 좀 할머니 입맛이라니깐!" 남편의 타박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미국에 와서 아구찜을 먹어본 적이 없다. 사실 한국에서도 아구찜을 먹은 기억이 얼마나 될까 싶다. 다만 한 개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내가 십대시절이었다. 중학교때였을 것 같다. 말그대로 그때 나는 어린이 입맛이어서 소세지나 떡볶이같은 음식을 좋아했다. 당시 내 기억속의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늘 일에 치여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가던 나에게는 엄마의 피곤함 대신 엄마의 부재만 크게 느껴졌다. 도시락은 주로 비슷한 반찬이었으며,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엔 동네 반찬가게에서 김밥을 사주셨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내게 엄마는 부엌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시기에 엄마는 쉰 목소리로 한 번은 내게 물었다. "뭐사먹을까? 뭐 먹고 싶어?"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졌던 엄마는 아구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십대인 나는 그 단어 자체도 싫었다. "아구찜? 콩나물 많고, 생선만 들어있는거? 싫어."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미국 워싱턴 주 한식 마트에서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이 식당으로 가서, 투고ToGo로 미리 주문해서 아구찜 사가자!내가 낼게!" 남편은 말없이 식당으로 운전을 했다.

막상 식당에 도착하니 얄밉게 생긴 한국인 아주머니가 나를 맞아주었다.

"저,ABC 도시라고 좀 먼 곳에서 왔어요."

"어머, ABC? 와, 진짜 먼 데서 오셨네. 아니 그런데 이 아구찜을 네 시간 후에 드시게? 에이. 그러면 정말 맛없어질껄요? 콩나물에서 물이 많이 나와서 맛이 없어질거에요. 에이. 난 그렇게 멀리 가는 줄 몰랐는데......"

이상하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했다. 분명히 아주머니 말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기도 한데, 또 동시에 '너 좀 시골에서 왔구나' 하는 말투가 있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도 쓸데없이 예민한걸까? 그래. 나도 좀 에이치 마트 있는 그런 큰 동네서 살고싶다. 그런데 또 살다보니 그게 안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 아주머니 당신은 한인 많은 이동네 사시니 좋으시겠네요! 라고 톡 쏴주고 싶은데, 그럴 용기도 없다. 그냥 돈 사십불을 지불하고 괜히 기분만 상해져서 차로 왔다. 두 손 가득 아구찜을 든채로 말이다. 그런데 나의 한식을 둘러싼 전쟁 2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내 손에 가득든 무거운 음식들을 보더니 나를 먹보취급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먹을거야? 이것봐봐. 에이치마트에서 이렇게도 음식을 잔뜩 샀는데, 뭘 또 샀냐고!" 식당 아주머니에게 촌년 취급 받은것도 서러운데 남편까지 한 마디 더 얹으니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그래서 꾹꾹 참았던 나의 바가지가 시작되었다."아니,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런 촌년 취급 받으면서 사는데! 엉? 그리고 내가 언제 너한테 돈달랬어? 이 아구찜 사는데 너한테 돈달랬냐고오!"

이 정도면 아침 드라마급이다. 그래도 아직 손에 남은 아구찜의 온기를 생각하며 일절만 하기로 했다. 약 한시간을 달려 알지도 못하는 동네로 들어갔다. 십분을 돌다보니 사람들이 없는 공터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공터 가운데 의자와 테이블이있었다. 거기서 반찬과 아구찜을 먹었다. 한 입에 들어오는 시원한 느낌. 강하게 맵지 않으면서도 생선살이 부드러웠다. 콩나물아. 너를 몇년만에 먹어보는 거니. 콩나물 요리를 하면 비릿내를 잡지 못해 그게 겁이나 콩나물과 헤어져 살았다 다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나는 한국돈 약 사만원 넘게 주고 산 그 아구찜을 집에 가져와 삼일 동안 먹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남편과의 투쟁, 식당 아주머니의 부정적 말투를 넘기고 공원에서 먹은 그 아구찜입니다!

#한식은 그리움이며 향수병

최근 뉴욕타임즈에 한 한인 2세 작가가 한아름 마트를 돌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다 눈물을 흘렸다는 글이 회자되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이지만 입맛은 할머니가 해 준 한식 입맛인 그녀가 한아름 마트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알고 있다. 문밖을 나가면 미국이고 영어의 세계다. 그래서 미국내 한인 가정들은 좀 더 자신의 전통과 정체성을 한식에서 찾는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휴일에는 냉장고를 뒤지며 오늘은 무엇을 해놓을까 걱정한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산다는 것은 음식을 해 먹는 일. 오늘도 나는 트레이더 조에서 산 불고기용 고깃감과 채소를 썰고 양념을 재워 남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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