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백수라이프
백수가 되어 좋은점 중 하나는 나의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사실은 하지않았던) 소일거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이메일 체크. 하루도 거르지않고 이메일에 들어가 간밤에 스팸난장판이된 메일함을 정리한다. 조금만 소홀해도 엄청나게 쌓이는 이 악성메일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걸까? 잡초같은 놈들이다. 개중에는 받자니 번거롭고 안받자니 정보로부터 소외될것 같고, 애매모호해서 스팸등록은 못하고 삭제만 하는 것들이 있다. 또는, 토씨하나 바꾸지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소름끼치리만큼 또옥같은 제목으로 오는 홍보성 메일도 있다. 나같으면 저렇게 성의없는 꾸준함을 실행하지 못할것 같은데, 역시 자동메일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무심하게 삭제해나간다.
오늘도 역시나 메일함의 파수꾼답게 수두룩빽빽한 스팸 메일을 죄다 삭제하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쌓여가는 메일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은행의 이자율처럼 치솟는 '우리의 걱정'과 같다고. 그래서 시간을 들여 삭제하지 않으면 이놈들에게 우리가 잡혀먹을지도 모른다고. 메일함을 매일 관리하면서도 내 머릿속의 걱정함에는 지나치게 소홀했다.
그래서 아팠다.
몸도 마음도.
야근이라는 허들을 힘겹게 넘으며, 불합리함을 겪어내며 면역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걸릴수있는 온갖 병들에 걸렸으며 월급의 절반은 병원비로 사용했다해도 과언이아닌 날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를 악 물고 아프고싶지 않았다. 아프면 약한놈이라 생각했기때문. 그래서 아파도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답지않은 부자연스러움을 떨며 살아왔다. 방안에 혼자 있을때면 공허했지만 공유할 수 없었다. 아프면 약자고, 골골대는 사람은 매력없을테니. 그래서 힘들어도 아닌척 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러면 되는줄 알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타인을 위해 웃을수록 나를위해 웃을수 있는 날들이 줄어들었다. 누군가의 '광대'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광대로 몰아세우지 않았지만, 나는 한 표정밖에 짓지 못하는 어릿광대가 되어버렸다. 이건 나로인해 행복해하는 타인을 위한 기형적인 삶이다. 내 인생의 부자연스러움과 공허함의 팔할은 나의 책임이다. 그래서 외면하고싶었는지도 모른다. 퇴근길 불만 가득한 글을 써내려가며 괜찮다고 토닥거렸지만 실은 뒤돌아서서 무표정을 짓는 날들만이 더 많아졌을뿐이다. 그때, 나의 '걱정함'에는 얼마나 많은 '스팸 관계, 스팸 생각'들이 쌓여있었을까? 악성바이러스는 컴퓨터가 아닌 내 인생에 깊은 뿌리를 내렸고, 악성바이러스가 턱끝까지 차올랐을때 이렇게 살다 죽으면 수박의 껍질만 열나게 핥다가 죽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싶었다.
항상 쨉쨉이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오며 여기까지 왔다면, 이번에는 브레이크를 꾸우우우욱 눌렀다. 온 힘을 다해.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사람에 의해, 다른 일로 인해 강제정지를 할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인생이 멈췄다. 고속도로의 졸음쉼터에 터를잡은 쪼꼬미 차량은 쌩쌩 달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시간을 갖기로했다. 태생이 호기심천국이며, 새로운 재미를 찾아떠나는 1인으로 느긋한 백수생활은 쉽지는 않았다. 집에서 궁둥짝 붙일 시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결국 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 집에서 요양하기도 했다. 바쁜와중에도 꾸준히 하는 것은 '나 돌보기'. 아직까지는 주기적으로 나를 마주하고, 쌓여가는 걱정함을 비우며 살아가는 인생이 매우 달갑게 느껴집니다.
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된다. 걱정이란건 정말 끝도 없다는 것. 그리고 부질없는 걱정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지, 나라는 사람은 차로치면 연비가 별로인 것 같기도. 걱정은 자가번식이 끝내주므로 일어나지 않은일을 끝내주는 시나리오로 만들어 늘 나를 두렵게한다. 그러나 사실 그 걱정은 실체없는 허상일뿐이다. 그래서 걱정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있다. 그런 방법을 터득하며,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괜찮은(?) 능력을 많이 갖고 있구나-라며 평생 스스로에게 채찍만 휘둘렀던 시절을 반성하는 좋은 시간도 갖게되었다. 오그라들지만 일기장에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쓰며 쑥쓰러워하기도, 비장해하기도하며 나의 조그마한 방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있다.
혹시 인생이 엉망진창으로 느껴진다면, 길을 잃은 것 같다면, 다 짜증나고 부질없게 느껴진다면 본인의 걱정폴더가 꽉 차지는 않았는지 의심해볼 필요가있다. 본인을 놓은지 오래라면 아마 로그인에서부터 애를 먹을것이다. 나를 바라보고 나의 걱정을 대면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유를 갖고, 애정과 끈기를 갖고 마주한다면 나의 상처와 분노와 고통 그 모든것을 잠재울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다. 이마저도 싫다면 그럴땐 두-잉 낫띵(Doing nothing)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 인간은 가장 창조적이다.
2018년 12월, 잔고는 줄어들지만 나에대한 파악도는 높아지는 자발적백수의 삶을 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의 하루는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