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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아직 회사에 다니지 않습니다

by 달숲
2018년 8월에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퇴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법도 하지만 아직 회사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런 단호박 다짐도
흔들릴 때가 있다.

언제? 돈이 궁해질 때.


백수 기간이 길어지며 모아둔 돈을 조금씩 게워냈다. 반 몇 달 퇴직금도 들어왔겠다 근심 없이 룰루랄라 생활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이 이리도 멋지다니!

퇴사 최고!


회사 다니며 쌓아 올린 승모근이 쏴-악 풀리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1년이 기 시작하 슬슬 정이 되기 시작했다.


니, 식은땀이 흘렀다.


돈 돈 돈
그래 어딜 가든 돈이 발목을 잡는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보험료, 통신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꽤 많았다. 들어올 구녕은 없는데 나갈 구멍은 이렇게나 많으니 큰일이네. (질러놓고 뒤늦게 고민하는 st.)



파티는 끝났다



갈대 같은 백수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자꾸만 강박적으로 잔고를 확인한다.


이 돈으로 몇 달이나 더 생존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궁리하지만 생각할수록 노답이다. 마음속에서 '삐용삐용'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현금 흐름을 창출해야 합니다!'

마음의 경고가 차압 딱지처럼 모든 생각에 들러붙었다. 맙소사.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걱정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행복하자고 회사를 뛰쳐나왔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이성을 찾고 흙탕물이 올라와 뿌예진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았다.


요란한 내 마음아. 진정하거라.
알겠다. 이제부터 궁리를 하기 시작하겠노라.


그래, 이렇게 계속 지출만 하는 삶을 살 수는 없지. 그런데 그렇다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건지 입사는 여전히 못 본척하고 싶은 옵션이다. 이대로 얼렁뚱땅 입사했다가는 얼마 안 가 다시 퇴사할 각이다. 일단 '회사 옵션'은 저 멀리 처박아 두기로 한다.


가만 보자.

내가 뭘 잘하더라?
그리고 뭘 좋아하더라?


그래, 나는 말하는 걸 좋아지. 그리고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그래서 종종 지인, 동료들에게 선생님 하면 참 잘할 거 같단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러나 딱히 누군가를 가르칠 깜냥도 아니고 교대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티칭을 커리어로 삼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사실 안된다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되기 마련이다)


BUT 쪼그라든 잔고를 보는 순간 용기가 생겼다. 막연하게 안될 거라 생각했던 그 일을 도전해야 할 타이밍, 바로 지금이구나 싶었다.


그래, 나 또한 원하던 바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으나 '내가 무슨..' 하며 대충 넘겨왔었다.


그러나 지금, 찬물 더운물
될 일 안 될 일 가릴 때인가?

잔고가 '0'에 수렴하고 있는 지금,
바로 화끈하게 지를 때이다!
(돈이 궁할수록 치솟는 파워 추진력)



그리하여 자아실현과 생활비 충당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영어 과외를 작했다.


초반에는 노하우가 없어서 엉망진창 와장창이었으나 좋은 학생들을 만나 지금은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엇보다 적성에 맞는 일이라 좋다. 수업을 할 때는 시간이 2, 3배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이 일을 즐기고 있다. 가르치는 학생의 실력이 쑥쑥 상승할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보람찬 일이다.


그나저나 용돈벌이를 하기 시작했으니 하이브리드 백수라 해야 하나. 자발적 백수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애매하게 되었다. 히 누가 뭐라 한 건 아니지만 자발적 백수 매거진 이름을 살짝 조정해보았다. '자발적 백수의 야무진 하루'에서 '프로퇴사러의 야무진 하루'로. 언젠가 순도 100% 백수가 되면 다시 백수 매거진으로 돌아올게요.


무한 삽질하는 기간을 어찌어찌 넘기다 보니 티칭 하는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갑자기 수업을 그만두거나 간혹 노쇼를 하는 학습자도 있어 버는 돈이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영어를 공부하며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까지 퇴사를 할 때마다 기업의 분류나 회사문화가 나와 맞지 않나 싶어 다양한 조직에 취업을 해보았다.


첫 번째 회사: 외국계 회사
두 번째 회사: 정부기관
세 번째 회사: 중소기업


그런데 이직해보아도 회사 분위기만 조금씩 바뀔 뿐이지 근본적인 조직 생활이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더라.


세 개의 조직을 전전하며 회사생활은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나와 딱 맞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참으면서 융통성 있게 다니는 거지. 천만번은 더 들은 그 말 저도 이해는 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자꾸만 왜 이러는 걸까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는 저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결국 마지막 회사도 퇴사로 마무리. 그리고 어찌저찌 흘러오다 시작하게 된 영어 티칭. 생각보다 적성에 더 잘 맞아서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다.


다른 좋은 기회가 생겨 일상의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오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샛길로 새어버린 포스팅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 글은 퇴사를 망설이거나, 퇴사 후 길을 잃은듯한 기분이 드는 전국 퇴사러들을 위해 퇴사를 먼저 내지른 사람으로 도움이 될법하지 않을까 싶어 주절주절 써 내려간 글이다.


저마다 회사를 나올 때
주먹을 불끈 쥐며
가슴에 새겼던 다짐이 있을 것이다.

현재 그것을 위한
액션을 취한 상태인가?


아니라면 바로 지금이 시작할 때이다.

하고 싶었던 일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도전할 타이밍,

바로 지금이다.

잘되면 축복할 일이고,
망해도 상심하지 말자.


분명 도전을 통해 배운 것이 최소한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을 물감 삼아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면 된다.



** 여기까지 읽어주신 감사한 독자님을 위한 깜짝 편지랄까요.ㅎㅎ


퇴사한 여러분 힘내세요!


퇴사도 용기이고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그 선택이 후회 없도록

하고 싶은 거 지금 다 하세요.
더 나은 때는 오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구질구질 우울한 날을 보낼 때도 있지만, 퇴사한 이후의 삶에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저도 했으니

여러분도 반드시 할 수 있어요.

본인의 행복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 )


(*사진출처: Unsplash(@chutter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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