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에는 어찌 되었건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브런치에 올릴 글의 초안을 작성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삶이 극도로 단순해져 글 쓸 소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한 주가 갑갑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우리는 초현실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까. 너무나 바뀌어버린 일상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반복되는 권태로운 하루에 메마른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은 여전히 아름답다. 햇빛이 내려 앉은 초록잎은 반짝거리고 바람이 스쳐지나간 부분에서는 쏴--아 쏴---아 시원한 소리가 난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이는 나무를 바라보며, 어쩌면 내일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란 기대를 한다.
#2.
희망을 품은 것이 무색하게 하루 확진자 수가 300명을 돌파하고 있다. 뉴스를 틀면 쏟아지는 무거운 이야기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자신의 눈을 가린 어리석은 사람들이 타인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소식이 이어진다. 이기심과 어리석음은 포화상태라는 게 없는 걸까. 부정성이 한계를 모르고 확장한다. 두렵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돌아간다.
선함과 악함의 공존으로.
뉴스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 그들은 든든하게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상냥하다. 최근 우연찮게 지갑을 전철 칸에 놓고 내리는 승객을 3번이나 보았다. 그리고 그 지갑을 찾아주는 사람 역시 세 번 보았다. 옆에 앉아 있던 승객이 알려준 덕에 지갑은 제 주인을 잘 찾아갔다. 우리가 모르는 훈훈한 소식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미디어를 통해 본 것과 내가 직접 세상에서 본 것의 온도차가 크다. 마음에 균형을 갖고 정보를 받아들여야겠다. 어찌 되었건 나쁜 사람만큼 좋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을 테니. 백혈구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내듯이. 그리고 서로 싸워가며 면역력을 키우듯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갈등과 불화를 반복하며 조금씩 튼튼해지는 걸 지도 모르겠다.
#4.
마음속에 불던 따뜻한 바람이 요 며칠 잦아들었다. 바람을 타고 신나게 나아가던 나의 배도 멈췄다. 이럴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 그런 것들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해야 함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싶고,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며 삶에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은 욕망은 잦아들지 않는다. 일상의 단조로운 리듬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는지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바람이 다시 불어올 때까지 당분간 배는 멈추어 있을 예정.
#5.
타인의 행복을 진정으로 축하해준다는 것이 곧 내 인생을 축복하는 길임을 배웠다. 질투가 많은 나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축하하지 못했다. 축하한다는 메시지 깊은 곳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뒤처지지 않으려는 열등감이 깔려있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축하는 좋지 않은 에너지를 껴안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것을 깨달은 이후로 조금씩 타인의 행복을 나의 것처럼 축복해주려 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나를 돕는 것임을 알기에.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 여정에 작게나마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나의 미소로 당신이 웃고,
당신의 웃음으로 내가 미소 지을 수 있기를.
#6.
하루가 길다.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길다. 근래들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된다. 이 고민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이유 없이 힘이 불끈 솟지만 또 어느 날은 우울감이 덮쳐온다. 주로 우울할때 이런 고민에 빠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