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Feb 27. 2022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딱히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또 싫어하지도 않는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

순간 음소거된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기.

김이 폴폴 나는 포장마차에서 어묵 먹기.

춥다고 호들갑 떨며 집으로 돌아와

뜨끈한 물에 샤워 하기.


이 모든 것들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하루 종일 오들오들 떨며 밖을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오니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휴, 오늘 더럽게 추웠네.'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욕실로 직행한다.


쏴아아-

따뜻한 물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뜨신 물로 몸을 지지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휴우-'하고 나온다.


어찌 되었건 오늘 하루가 끝났구나.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했구나.


하루를 살아낸 건지 그만큼의 시간을 죽은 것인지 모호한 경계이지만 그게 뭐 중요한 일인가. 하루의 찌든 순간을 씻겨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오늘의 힘겨움은 충분히 보상받았다. 그러니 머릿속에 잔뜩 엉켜있는 생각 뭉치는 잠시 접어두자.

 


-



요즘은 뭘 해도 불안하다. 불안은 공기와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실체 없던 녀석도 손에 꽉 잡히는 무언가로 몸에 표출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근육이 잘 뭉치는 이유는 불안에 취약한 성격 탓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움찔거리니 온 몸이 잘 뭉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안은 수용성인 걸까. 따신 물에 불안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 그나저나 이런 만족스러운 수압 같으니라고. 속이 다 후련하다. 물이 이렇게 잘 나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말이야. 졸졸졸 흐르는 빈약한 물줄기로 샤워를 했던 때를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출세한 삶인데.



삶은 죽음을 향해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왜 하루는 아직도 미련한 도톨이 표의 얼굴인 걸까.

아니지. 욕망과 불안이 점점 커지는

크레센도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마다 불안을 잠재우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메멘토 모리.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니 아모르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뜨끈한 김으로 가득한 욕실에서 중얼중얼 주문을 읊조린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사결정이 편해진다. 망각의 동물인 나는 오늘도 이렇게 죽음을 상기시키며 삶의 소중한 낱알을 세어나간다.



-



평일을 정신없이 보내니 어느덧 일요일 저녁이다. 어제 잠을 잘못 잔 건지 목을 옆으로 돌릴 수 없는 가련한 신세인 탓에 목과 어깨에는 동전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뭔가를 써내려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정작 쓰려는 글은 잘 풀리지 않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홧김에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깜박이는 커서만 노려보고 있는 중. 영양가 없는 잡생각이 팝업창처럼 심란하게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왜 아직도 나는 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것인가. 불쾌감이 확 올라온다.


어렸을 적 TV에서 흘러나오는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누가 이리도 재미없는 가사를 다 썼나. 작사가 양반, 세상은 지금 이런 트렌드가 아니라고요. 어린 나이에 건방진 생각을 했었는데. 30대가 되어 다시 들은 '가시나무'는 다른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이 나조차도 감당이 되질 않는다. 하드웨어는 올드 버전인데 최신의 소프트웨어를 억지로 구동하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뭐, 싫다고 이 한 몸 버리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겨울을 대하는 태도로 스스로를 대하는 수밖에 없다. 싫은 부분이 있어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그 안에 좋은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염없이 흔들리고. 흔들려서 아름다운 갈대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흔들리고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오늘의 하루.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글은 이 즈음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매번 이렇게 얼렁뚱땅 마무리하는 글이어서 면목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화면 너머의 당신.





대문사진 * Unsplash (@Mira Kemppainen)

매거진의 이전글 노션(Notion)으로 포트폴리오 제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