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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Sep 14. 2022

어릴 적 소원을 이뤘는데요, 곤란하군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을까. 그 시절엔 단추 달려 있는 옷을 싫어했다. 마지막 단추를 잠그고 나면 꼭 단춧구멍이 하나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잠근 것이다. 다시 단추를 풀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아 얼렁뚱땅 모르는 척하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으면 어디선가 휴지를 몇 장 들고 나타난 엄마가 능숙한 손길로 단추를 채워주곤 했다. 그리고 가져온 휴지를 코에 대며 '흥! 해봐 흥! 흥! 더 크게!'라고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혼자서 신발 신는 건 또 어찌나 어렵던지. 자주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신었다.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때부터 대충대충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또 기똥찬 타이밍에 엄마가 번쩍하고 나타나 샤샤샥 빠른 손길로 왼쪽과 오른쪽 신발 짝을 맞춰주었다. 어쩜 엄마는 이렇게 모든 것을 잘하는 걸까? 어릴 적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발랐던 건 아마도 엄마처럼 모든 것을 착착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드문드문 기억나는 어렸을 적 소원이 몇 가지 있다. 남몰래 꽤나 열렬했던 소원인데 그중 하나는 우습게도 '녹기 전에 아이스크림 다 먹기'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앞니에 떡하니 검정 충치가 생길 만큼 달다구리를 애정 했던 꼬마 아가씨 아니던가! 앞니를 보이며 활짝 웃으면 동네 어르신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시집 다 갔다고 놀리곤 하셨다. 그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좋아했던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그러나 거대한 아이스크림을 뚝딱 해치우기에 꼬맹이의 조그마한 입과 느릿느릿한 고사리 손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내 마음을 알길 없는 아이스크림은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하고 이내 찐득찐득한 게 옷과 손에 잔뜩 묻어버려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해다. 옆에 앉아 묵묵히 나의 손과 입을 훔쳐주던 엄마는 어느 순간 결심이라도 한 듯 아이스크림을 휙 가져가 왕! 하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후 엄마가 다시 건네준 아이스크림은 너무나도 작아져있어서 그걸 몇 초간 지켜보다가 으앙! 하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나도 엄마처럼 쁘고 깔끔하게 먹고 싶었는데. 안 그래도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는데 아이스크림까지 작아지니 울컥했나 보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랬지만 아이는 위로할수록 더 우는 법이다. 도끼눈으로 엄마를 째려보며 분노의 눈물을 철철 흘렸다. 아마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한 번씩은 겪어본 에피소드가 아닐까. 지금이야 뭐 아이스크림 다섯 개 먹기도 후루룩 뚝딱 손쉽게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게 참으로 어려웠다지.


또 다른 어릴 적 소원은 국어 시간에 틀리지 않고 교과서 한 줄을 완벽하게 읽는 것이었다. 한 문단도 아닌 한 줄. 그게 왜 잘 안 됐을까.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어보라고 시키면 머리가 핑핑 돌며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읽는 것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어쩌다 운 좋게 단어를 몇 개 연달아 읽으면 금세 우쭐해져서 결국 한 문장이 넘어가기 전에 꼭 어디서 틀리곤 했다. 더듬더듬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개미의 더듬이처럼 우물쭈물 수업시간을 헤매는 소녀였다.

 

그렇게 열망했던 것들이제 너무나도 쉬워졌다. 렇다. 어른이 된 것이다. 순서대로 단추를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그러나 우습게도 어른이 되니 꼬마일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어려워졌다. 예를들면-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웅덩이를 뛰어다니며 흥얼거리기.

별 걱정 없이 개미 한 마리 두 마리를 세며 시간 보내기.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것을 겁내지 않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해맑게 웃기

그러다 슬퍼지면 엉엉 울기.


이런 것들이 되지 않아 곤란하다. 진실했던 마음이 어딘가로 숨어버려 텅 비어 버렸다. 그것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견고한 외벽을 쌓기 시작했다. 이따금 성벽을 찾아온 이가 문을 두드려도 듣지 못한 척을 다. 벽 너머로 사람들이 다가오고 떠나는 것을 느낀다. 언제 즘 이 깊고 끝없는 불안을 던져낼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이란 본디 갈팡질팡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이건 이래서 싫다, 저건 저래서 싫다 투덜거리는 사이 저도 모르게 불행과 고통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어렸을 적엔 안경이 쓰고 싶어 태양을 노려다 봤던 초등학생이 20대 아가씨가 되자마자 라식수술을 결심했던 것처럼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게 인간이다.


변화하는 성질은 거스를 수 없는 나의 본성이기에, 계절의 변화처럼 내면에 겨울이 찾아올 때면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뿐이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오한에 덜덜 떨지만 그럼에도 봄이 올 거란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난봄, 코 끝을 간질였던 따스했던 바람 온 산에 넘실거렸던 봄꽃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 창 밖의 매서운 눈보라를 바라보며, 봄이 오기 위해 겨울이 필요함을 곱씹는다. 그것은 가볍고 상쾌한 일상을 위해 지금의 불안과 번뇌가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불안이라는 파도에 나약한 모래성은 힘없이 무너지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몸을 움직여 새로운 성을 쌓을 것이다. 그렇게 무너지지도 세워지지도 않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고통도 지나가고 기쁨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보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려운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나는 지금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붙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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