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생각을 집중하기 어렵고 잡스러운 걱정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불안에 떠는 일상이 답답해서 자세를 잡고 제대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뭐랄까,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덩어리가 통로를 꽉 막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어쩌다 생겨났고 정확히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털뭉치 같은 잡스러운 것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일단은 옆에 트인 샛길로 왕래를 하는 식으로 무시하며 지내기로 했다. 원인 불명의 일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났기에. 그러나 마음속 응어리 탓인지 지끈거리는 편두통과 저조한 기분으로 보내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햇살을 받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볕 좋은 날 잠시 산책을 나왔다. 터덜터덜 걷다 집에 돌아오는 길, 왜 이 모양인 건지 이유를 알 것만도 같았다.
거대한 털뭉치는 '자기혐오'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두려운 만큼 나 자신이 싫었다. 매달 프리랜서로의 수입내역을 정리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성적을 매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인과 비교하며 말이다. 내 나이 또래면 회사에서 과장 정도는 달았겠지. 지금 이렇게 벌어가지고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래, 계산을 해보자. 만일 이 정도로 쭉 벌면 올해는 수입이 어느 정도 쌓일 거고 (근데 갑자기 수입이 갑자기 끊기면 어떡하지?) 10년 정도 지나면 이만큼은 모여 있어야 하고 (내가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한 푼이라도 더 모으고 아껴야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머리는 덧셈뺄셈을 무한 반복하는 거대한 계산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전원을 꺼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잡스러운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미래만을 바라보는 인간은 현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불안의 바다를 둥둥 떠다닌다.
설상가상으로 머릿속은 물론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로 가득했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생각의 통로를 막고 있는 털뭉치는 스노우볼처럼 커져만 갔다.
생각은 모든 가능성의 씨앗이다
실현될 가능성이 있기에 자신의 생각을 잘 지켜보아야 한다. 특히나 두려움이 가미된 생각은 더더욱 높은 확률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잦은 휴강과 종료되는 수업 소식이 하루 걸러 나를 찾아왔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자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결국에는 우울했다.
우울은 며칠 동안 지속되었고그 농도가 옅어진 후에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당장 일을 하지 않는다고 굶어 죽지는 않을 텐데 뭐가 이리도 두려운 걸까. 오늘 하루도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왜 10년 후의 일을, 그것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걸까.
그것은, 내 안에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중심이 잡힌 오뚝이처럼 얼마 안 가 다시 벌떡 일어서는 반면, 스스로를 혐오하는 인간은 무너지기도 전에 미리 고꾸라질 생각을 하며 벌벌 떤다. 상상 속에서 이미 천만번 흔들린 터다. 회복탄력성은 티끌처럼 작아졌다. 당연히 작은 자극이 와도 쉽게 흔들리고 나자빠진다. 운이 좋아 어찌어찌 다시 일어나도 결국엔 다시 파리하게 흔들린다.
파르르 떠는 일상이 괴로워 명상을 시작했지만 수년간의 수련 끝에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중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깨달았으니 이제는 나 자신을 그만 괴롭히고 중심을 세워야겠지. 그 길이 어색하고 쉽지 않더라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무용한 인간은 없다
다양한 감투로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며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허영과 집착을 버리고 비교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매 순간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삶. 애매하게 어딘가에 얼렁뚱땅 걸쳐있는 인간이지만 비워내고 또 비워내면 진정으로 존재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불안할 수 있다. 불안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늘 문제를 가져온다.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존재는 부정당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앞으로의 내딛는 걸음에
오늘의 마음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의 저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Explaining Humans》에 영감을 얻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