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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Jul 29. 2024

몬스테라와 나의 흰머리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화학 약품이 몸에 좋을 리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염색을 왜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콤플렉스를 감추고 싶어서가 주된 이유였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중심으로 두고 한 행동이었다.


문득 '언제까지 흰머리를 감추며 살아야할까?'란 생각이 들었고 잠시 '일시중지 버튼을 눌러보자'라는 작은 결심이 섰다.


머리가 하얘서 별명이 '몽블랑'인 울 아부지. 그런 아빠의 피를 물려받 교복을 입을때부터 새치가 새싹처럼 돋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반 친구들이 '어! 흰머리다!'라고 하며 머리를 뽑아주기도 했다. 고맙게도 그 시절엔 뽑을 만큼만 생겨서 20대까지 따로 염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30대가 되니 뽑는걸로는 안될만큼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노화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나이가 찼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그때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거진 한 달에 한 번씩. 돈도 돈이지만 미용실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지독한 염색약 냄새와 두피의 따끔거림은 불쾌함을 더했다. 그렇게 몇 년을 툴툴거리며 미용실을 들락거렸다.



무엇을 위해 매달 염색을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아니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염색을 한 것이다. 그러다 돌연 이제는 흰머리를 한 번 길러볼까?란 결심이 섰다. 일단 길러보고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보자. 생각보다 잘 어울릴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남자친구였다. 나야 괜찮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의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는 게 그로서는 좀 거시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데이트할 때 슬쩍 물어봤다.


"뚜띠씨!(뚜띠는 그의 별명) 저 염색 안 하고 흰머리 기르면 어떨 것 같아요? 염색은 몸에도 안 좋고 그냥 이런저런 이유로 이참에 길러볼까 생각 중인데... 뭐 이러다가 다시 염색할 수도 있구요. 근데 일단은 길러보려고요."


"달숲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하얀 머리가 뭐 어때서요."


남자친구는 참 무던한 성격이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잔걱정도 많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포용해 주는 사람. 물론 안 맞는 부분도 있고 여느 커플처럼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 사람과 만나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나 보다.



식물 중에
몬스테라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공기정화 식물로 사랑을 받는 종인데 잎이 하얀색을 띠는 '몬스테라 알보'가 특히나 인기라고 한다. 흰색 잎은 변이로 나타난 현인데 흥미롭게도 하얄수록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앞으로 나의 하이얀 머리칼을 몬스테라의 흰 잎처럼 사랑하려 한다. 누군가는 '염색도 좀 하고 그래라'라고 말할 테지만 흘러가는 순리에 따라 한 번 살아보려 한다. 머리가 하얗든 거무스름하든 무슨 상관이랴.


말은 이렇게 해도 아직은 흰머리가 뒤섞인 머리 어색하고 단정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익숙해질 것이다.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나름의 좋은점이 있듯 머리색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염색을 멈춘 지 두 달 반이 지났다.



있는 그대로 살아보자. 여전히 거울 속 흰머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이지만, 더 이상 감추며 살고 싶지 않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편안해질 것이다.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비교하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Unsplash, Nhan Nguyen | Huy P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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