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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Jul 15. 2024

불편한 자동화 세상

시절이 하 수상하다.


불편한 자동화 세상


일상 속 많은 것이 자동화로 바뀌며 삶이 제법 윤택해졌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자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한동안은. 그러다 요즘엔 되려 풍요 속 빈곤을 절감하고 있다. 소통의 빈곤, 진심의 빈곤, 마음의 빈곤. 게다가 이렇게까지 자동화를 한다고? 굳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을 여럿 접하면서 변해가는 세상에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있던 경비아저씨의 공간은 유리 자동문으로 전면 교체 되었다. 한동안은 우웅우웅 소리를 내며 잘 작동하더니 며칠 전 슬라이딩 기능에 고장이 났는지 문이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참 사람이 들고날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를 않으니 주민들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결국엔 멀리 있는 다른 출구로 드나들어야 했다. 아파트 출구가 2개였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창문을 통해 출근해야 했으려나.


센서로 작동하는 세면대 수도꼭지도 물을 절약한다는 면에서는 박수를 칠만하나 나름의 애로 사항이 있다. 하루는 센서에 무심코 손을 갖다 댔는데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에 화들짝 놀란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그날의 온도가 장기기억으로 옮겨졌는지 그 후로 자동화 세면대를 볼 때마다 의구심을 갖고 손을 가져다 대는 습관이 들었다.


애초에 설계자가 사용자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관리자가 그것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지 않는다면, 최종 생산품은 자동화라는 그럴싸한 포장지에 숨은 아주 효율적인 통제 장치가 될 뿐이다. 기계적 결함이나 작동 오류로 자동이라는 마법이 풀려버리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질주하는 특성이 있지 않은가. 세상은 이미 자동화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에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는 사람 간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통마저도 싹둑 잘라버린다. 차가운 금속의 키오스크 앞에서 허둥대는 것은 나이를 초월한다. 빠르게 떨어지는 키오스크 화면 위 카운트다운 숫자에 우왕좌왕하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가끔씩은 피치 못하게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키오스크 너머에 있는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귀찮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쩌겠는가. 원하는 것을 주문하려면 심드렁한 목소리를 견뎌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자동화라는 것이 더 나은 세상과 보다 윤택한 삶을 만드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헛웃음이 나오고야 마는 것이다. 오히려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동화라니. 인간을 삶에서 도려내는 시스템이라니!


자동화를 결사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이 미친듯한 속도로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이 굳게 믿는 자동화 서버가 갑자기 다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지난달 영화를 보러 극장가를 방문했을 때 스템 에러로 모든 키오스트가 사용 중지 상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극장을 찾은 관람객을 응대하기에 직원들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땀 흘리는 직원과 소리치는 사람들 속에서 자동화가 풍기는 비릿하고도 꺼림칙한 냄새를 맡았다.


ChatGPT와 유튜브 서버도 종종 다운될 때가 있다. 잠시간 멍한 시간을 가진 인류는 서버가 복구되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동화의 큼큼한 냄새를 맡았을까. 아니면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부디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기를. 그리하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기를. 그것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Unsplash, Ones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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