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이 목적이 아닌 자만이 오르면서 변할 수 있다.

느림 미학과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2


느림의 미학과 단테

서두르지 않는 자만이
산을 오를 수 있다


연옥은 빠르게 오를 수 없다.

단테는 연옥의 산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멈추고, 묻고, 듣고, 바라본다. 만나는 영혼마다 이야기를 나눈다. 조각을 들여다보고, 노래를 듣고, 때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연옥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상에 빨리 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층을 통과하면서 무엇을 내려놓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연옥은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림이 미학이 된다.

우리 시대는 빠름을 미덕으로 안다. 빠른 답장, 빠른 결과, 빠른 성장. 느린 것은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테의 연옥을 읽다 보면 조용히 반론이 온다.

어쩌면 진짜 변화는 빠르게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깊이 변하는 것은 천천히 변하는 것이 아닐까.

· · ·


연옥편 제4곡.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가파른 바위틈을 기어오른다. 숨이 찬다. 단테는 지쳐 멈춘다. 베르길리우스가 말한다.

산레오에 가고, 놀리로 내려가고,
비스만토바와 카쿠메는 두 발로 오르지만,
여기서는 날아야 한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4곡


베르길리우스가 말하는 날개는 욕망이다. 타오르는 욕망, 그것을 따라가는 의지. 그러나 그 날개는 조급함이 아니다. 단테는 지쳐 멈추었을 때 스승의 말을 듣고 다시 오른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다. 연옥의 오름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다.

· · ·


연옥의 각 테라스에는 교만한 자, 질투하는 자, 분노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고통받는다. 그러나 그 고통의 방식이 지옥과 다르다. 지옥에서 고통은 형벌이다. 연옥에서 고통은 교육이다. 그리고 그 교육은 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Purgatorio — 각 테라스의 느림과 정화 방식

Ⅰ. 교만(Superbia) — 바닥을 보는 자들


연옥 첫 번째 테라스에 도착하면, 누군가 당신 등에 돌을 올려놓는다.


크다. 무겁다. 허리가 꺾인다. 고개를 들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 시선이 땅으로 향한다. 발밑의 흙, 자신의 발, 자신의 그림자. 그것만 보인다.

처음에는 굴욕스럽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바닥에 새겨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밟히는 것들의 얼굴이 보인다. 평생 올려다보느라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았던 것들이.

돌은 당신을 망가뜨리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향을 보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무게로 배운다. 말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을.

걸음이 느렸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수업의 방식이었다. 느리게, 무겁게, 바닥을 보면서.


Ⅱ. 질투(Invidia) — 눈이 꿰매진 자들


두 번째 테라스는 조용했다. 이상할 정도로.


그들은 앉아 있었다. 벽에 기대어. 눈이 없었다. 아니, 눈꺼풀이 철사로 꿰매져 있었다. 가느다란 철사가 눈 위아래를 꿰뚫어, 빛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봉해놓았다.

단테는 본능적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럽지 않아 보였다. 아니, 고통스러운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경청(傾聽). 그들은 듣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바람 소리를, 옆 사람의 숨소리를. 평생 남을 보기에 바빴던 눈이 닫히자, 귀가 열렸다.

질투하는 자는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보아야 한다. 남의 얼굴을, 남의 집을, 남의 성공을. 그러므로 눈을 닫는다. 보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멈추고 듣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침묵 속에서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중 하나였다.


Ⅲ. 분노(Ira) — 연기 속을 걷는 자들


세 번째 테라스는 보이지 않았다.


연기 때문이었다. 검고 짙은 연기가 가득 차 있어,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옷자락을 손으로 더듬어 잡았다. 방향을 잃었다. 앞인지 뒤인지도 몰랐다. 그냥 발을 내디뎠다. 또 내디뎠다.

연기 속에서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단테는 깨달았다. 분노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화가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얼굴도, 상황의 맥락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분노는 그 자체로 연기다. 마음속에 피어올라 시야를 막는, 자기가 만든 연기.

연기는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그들의 내부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정될 때까지 걸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그냥 걸어야 했다.


Ⅳ. 나태(Accidia) — 달리는 자들


네 번째 테라스에서 단테는 멈춰 섰다.


그들이 달리고 있었다. 숨이 차도록. 쉬지 않고. 연옥에서 달리는 자들이라니. 나태한 자들의 테라스인데.

베르길리우스가 설명했다. 게으름의 반대는 조급함이 아니라고. 나태한 자들은 멈췄기 때문에 이제 달리는 것이 아니라고. 꾸준함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느림과 나태는 다르다고. 느리게 걷는 것은 방향이 있는 것이다. 나태는 방향 자체를 잃은 것이다.

단테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천천히 가도 좋다. 그러나 멈추지는 말라. 느린 걸음도 걸음이다. 나태는 걸음이 없는 것이다.


Ⅶ. 음욕(Lussuria) — 불을 통과하는 자들


마지막 테라스 앞에 불이 있었다.


단테는 걸음을 멈췄다. 불길이 길을 막고 있었다. 지상 낙원으로 가려면 저 불을 통과해야 했다. 우회로는 없었다. 단테 자신도 예외가 없었다.

그는 두려웠다. 고백하건대, 지옥보다 더 두려웠다. 지옥의 불은 남의 것이었다. 이 불은 자신이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말했다. 서두른다고 빨리 꺼지지 않는다고.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불 너머에 베아트리체가 있다고.

단테는 눈을 감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뜨거웠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그러나 타지 않았다. 타지 않으면서 정화되었다. 불은 파괴하지 않았다. 불은 씻었다.


각 층의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 몸으로 배우는 수업이다

특히 네 번째 테라스가 흥미롭다. 나태(Accidia). 게으름의 죄. 여기서 죄인들은 쉬지 않고 달린다. 얼핏 보면 역설이다. 느림을 미학으로 이야기하면서 왜 나태한 자들은 달리는가. 단테는 여기서 느림과 나태는 다르다는 것을.

느림은 의식적인 것이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 것이다.

나태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무감각하게 멈춰버리는 것이다. 진짜 느림은 부지런한 느림이다.


느림은 멈춤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가는 것이다.

· · ·



빠름과 느림 — 단테가 연옥에서 배운 것


목적은 정상에 닿는 것이다.

빠름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올라가느냐고.


지름길을 찾는다. 불필요한 층은 건너뛴다. 고통스러운 테라스는 우회한다. 정상만 보고 달린다. 효율적이다. 합리적이다. 그런데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장소만 바뀌었다. 자신은 그대로다.


느림은 다르게 묻는다. 이 층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연옥의 각 테라스는 건너뛸 수 없다. 돌을 짊어져야 하는 층에서는 반드시 돌을 짊어진다. 연기 속을 걸어야 하는 층에서는 반드시 연기 속을 걷는다. 느리다. 힘들다. 그런데 정상에 도착할 때쯤이면, 발바닥이 기억하고 있다. 등이 기억하고 있다. 눈꺼풀이 기억하고 있다.


목적지는 같다. 그러나 도착하는 사람이 다르다.


변화는 달라지는 것이다.

빠른 변화는 겉에서 시작한다.

껍데기만 바꾸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원래 모양으로 돌아간다.

느린 변화는 안에서 시작한다. 천천히, 조용히, 녹듯이.

단테가 돌을 짊어지고 걷는 자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초라해 보였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 보며, 느리게 기어가듯 걸었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가 단테는 알았다. 저들의 등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무게를 버티는 동안, 안에서 무언가가 녹고 있다는 것을.

겉을 바꾸는 것은 하루면 된다. 안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연옥이 느린 이유가 거기 있다.


고통은 힘든 것이다.

빠름은 고통 앞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한다. 빨리 끝내거나, 피하거나.

빨리 끝낸다는 것은 고통의 표면만 처리한다는 뜻이다. 진통제를 먹는다. 일단 넘어간다. 나중에 생각한다. 피한다는 것은 아예 그 앞에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돌아간다. 없는 척한다. 그런데 고통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미뤄둔 것은 반드시 더 크게 돌아온다.

느림은 고통 안에 머문다.

단테가 음욕의 테라스에서 불길 앞에 섰을 때, 베르길리우스는 우회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고.

서두른다고 불이 빨리 꺼지지 않는다고. 단테는 눈을 감고 발을 내딛었다. 뜨거웠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언가가 벗겨졌다. 불을 피했다면 끝까지 붙어 있었을 것들이.

고통은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배울 것을 다 배우고 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는다.


만남은 사람을 보는 것이다.

빠른 만남은 스쳐 지나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을 본다. 밥을 먹으면서 다음 일정을 확인한다. 대화 중에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을 준비한다. 효율적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난 것인가, 그 사람의 윤곽을 스캔한 것인가.

느린 만남은 멈춘다.

단테는 연옥을 걸으며 수많은 영혼들을 만났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이끄는 대로 걸으면 됐다. 그러나 단테는 자꾸 멈췄다.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왜 거기 있는지, 살아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후회하는지. 그 대화들이 『신곡』의 가장 빛나는 장면들이 됐다.

사람은 스치면 배경이 된다. 멈추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쌓이면 삶이 된다.


글쓰기는 단테의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단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신곡』은 20년에 걸쳐 쓰였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채, 떠돌며 썼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진 채, 죽기 직전까지 썼다. 1321년, 『신곡』의 마지막 편 「천국편」을 완성한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 물을 수 있다. 14년이면 충분하지 않았냐고. 10년이면 됐던 것 아니냐고.

단테는 서두르지 않았다. 각 편을 쓸 때마다 다시 읽고, 다시 고쳤다. 빠르게 출판하지 않았다.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 20년이 지금 우리가 읽는 『신곡』을 만들었다.

빠르게 쓴 책은 빠르게 잊히는 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쓴 책은 700년을 넘기고 있다.

· · ·


단테가 『신곡』을 쓴 것은 빠른 일이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것이 1302년. 『신곡』이 완성된 것은 단테가 죽기 직전인 1320년경으로 추정된다. 약 20년. 유배지를 전전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후원자를 찾아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그는 썼다. 빠르게 쓸 수 없었다. 아니, 빠르게 쓰지 않았다.

지옥편을 쓰는 동안 연옥편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연옥편을 쓰는 동안 천국편이 어떻게 끝날지 몰랐을 것이다. 그는 걸어가면서 썼다. 쓰면서 걸어갔다. 연옥의 단테처럼 — 각 층을 통과하면서, 그 층에서 배울 것을 다 배우고, 다음 층으로 올랐다.

타고난 사랑은 언제나 오류가 없지만,
후천적 사랑은 잘못된 대상을 향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해서 빗나간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7곡 · 마르코 롬바르도


연옥편 17곡, 마르코 롬바르도의 말이다. 사랑의 강도 문제. 너무 강해도 빗나가고, 너무 약해도 빗나간다. 적절한 강도로 적절한 것을 향하는 것 — 그것이 덕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서두른다고 찾아지지 않는다. 천천히, 여러 번 실패하면서, 조금씩 조정하면서 찾아간다.

연옥의 느림은 결국 이것이다. 사랑의 균형을 찾는 것. 무엇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는가. 그 질문은 빠른 답이 없다. 살면서, 실패하면서, 고통을 통과하면서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다.

· · ·


나는 오늘 낮에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그것이 오늘의 연옥이었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


빠르게 오르려 한다고 산이 낮아지지 않는다. 천천히 오른다고 산이 높아지지 않는다. 산은 그대로다. 다만 천천히 오르는 자는 오르면서 변한다. 빠르게 오르는 자는 도착해도 그대로다.

도착이 목적이 아닌 자만이 오르면서 변할 수 있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오늘 하루, 한 가지만 천천히 해보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고. 연옥의 산을 오르는 단테처럼 — 한 걸음씩.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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