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불이 아니다.

얼음 지옥과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0


얼음과 단테

눈물조차 얼어붙은 곳에서,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불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지옥을 불길로 상상한다. 타오르는 것, 뜨거운 것, 타들어 가는 것. 그러나 단테는 달리 보았다. 그가 상상한 지옥의 최심부는 차갑다. 얼어붙어 있다. 바람 한 점 없고, 눈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얼음의 세계. 코치토스(Cocito). 배신자들이 영원히 갇혀 있는 곳.

왜 불이 아니라 얼음인가. 단테는 알고 있었다. 인간을 가장 깊이 파괴하는 것은 타오르는 분노가 아니라, 완전히 식어버린 마음이라는 것을. 열정이 꺼진 자리. 온기가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 남는 것은 — 얼음이다.

· · ·


코치토스는 지옥의 제9원, 최하층이다. 단테는 이 얼음의 호수를 네 구역으로 나눈다.

카이나(Caìna), 안테노라(Antenòra), 톨로메아(Tolomèa), 주데카(Giudècca).

네 구역 모두 얼음이지만, 죄인들이 얼음 속에 박혀 있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고개의 각도가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다. 단테는 그 각도에 의미를 새겨 넣었다.

Cocito — 얼음 지옥의 네 구역


Ⅰ. 카이나(Caìna) — 고개를 숙인 자들의 구역

첫 번째 구역에 들어서자 인간의 형상들이 얼음 속에 박혀 있었다. 머리만 겨우 내밀고,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그들의 눈물은 턱을 타고 흘러 발밑의 얼음판 위에 뚝뚝 떨어졌다. 눈물은 쌓이지 않았다. 그냥 얼었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그리고 또 얼었다.


카이나(Caìna). 성경 속 최초의 살인자 가인(Cain)의 이름을 딴 이 구역에는 가족을 배신한 자들이 갇혀 있었다. 아버지를 팔아넘긴 아들,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형, 어머니의 손을 끊어낸 딸.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수치스러워서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그냥 자세였다. 의미가 소멸된 자세.


고개를 숙인 채로 있으면 눈물이 곧장 떨어진다. 뺨 위에 얼어붙지 않는다. 그것이 이 구역의 유일한 '자비'였다. 얼음이 얼굴 위에 겹겹이 쌓이지 않는다. 고통이 외부로 흘러나간다는 것. 자비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가장 정교한 형벌이라는 것을. 눈물이 흘러나가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울 수 있었다.


피 한 방울보다 더 깊은 배신이 있다. 사랑받은 자를 배신하는 것이 그것이다.

혈육의 이름으로 맺어진 것을 끊는 행위.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죄였다.


Ⅱ. 안테노라(Antenòra) — 고개를 세운 자들의 구역

한 걸음 더 내려갔다.


두 번째 구역의 자들은 고개를 세우고 있었다. 똑바로. 심지어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렀다. 흘러서 턱에 고이고,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얼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얼음이 천천히, 조용히, 그들의 얼굴 위에 덧씌워졌다.


안테노라(Antenòra). 트로이를 헬레네에게 팔아넘긴 자 안테노르(Antenor)의 이름을 딴 이 구역에는 조국과 당파를 배신한 자들이 있었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권력을 쥔 뒤, 그 공동체를 팔아버린 자들. 국가를 배신한 장군, 동지를 고발한 혁명가, 신념을 팔아 살아남은 지식인.


그들은 고개를 세우고 있었다. 그것이 형벌의 핵심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얼음이 되어 쌓였다. 한 겹, 두 겹, 세 겹. 얼굴이 서서히 봉인되었다. 자신의 눈물로 자신을 가두는 것. 가장 냉혹한 역설.


조국을 배신한 자는 자신의 슬픔으로 자신을 묻는다. 눈물조차 형벌이 된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무거워졌다. 얼굴 위에 쌓이는 얼음을 보면서, 그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된 형벌을 받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Ⅲ. 톨로메아(Tolomèa) — 눈물이 봉인된 자들의 구역

세 번째 구역에 다다르자 단테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들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아니, 얼음 천장을 향해.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흐를 곳이 없었다. 눈꺼풀 위로 흘러든 첫 번째 눈물이 즉시 얼어붙었다. 뚜껑이 되었다. 이후의 눈물은 나오지 못했다. 나오려 하면 얼음 뚜껑이 눈알을 짓눌렀다. 고통만이 더해졌다.


톨로메아(Tolomèa). 이 이름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유다를 팔아넘긴 프톨레마이오스, 하나는 마카베오 시대의 배신자. 어느 쪽이든, 이 구역의 죄목은 하나였다. 손님을 배신한 것. 자신의 지붕 아래 들어온 자를, 자신의 식탁에 앉힌 자를, 자신의 온기를 믿고 들어온 자를 죽인 것.


환대(歡待)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계약이다. 문을 열어 들인다는 것은 '나는 그대를 해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반한 자들이 이곳에 있었다.


눈물이 봉인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슬픔이 막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에게 눈물은 방출이다. 고통이 몸 밖으로 나가는 통로다. 그 통로가 막히면, 고통은 안에서 순환한다. 썩는다. 커진다. 해소되지 않는 슬픔의 가장 잔인한 형태.


이 구역에서 단테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그 목소리는 간청하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눈을 열어다오. 잠깐이라도." 단테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베르길리우스가 막은 듯 보이지만, 단테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자비는 없다. 자비를 베풀면, 그것이 다시 배신의 재료가 된다.


Ⅳ. 주데카(Giudècca) — 완전한 침묵의 구역

마지막 구역에는 소리가 없었다.


완전히 없었다. 단테의 발소리조차 얼음 속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그곳의 자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완전히 매몰되어 있었다. 얼음 속에 통째로. 형체만 희미하게. 마치 호박(琥珀) 속 벌레처럼.


주데카(Giudècca). 유다(Giuda)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 구역은 모든 배신의 원형을 품고 있었다. 은인을 배신한 자들의 구역. 그들에게 목숨을 빚진 자, 사랑을 빚진 자, 존재를 빚진 자를 배신한 이들.


그리고 그 중심에, 루치페로(Lucifero)가 있었다.

단테가 묘사한 루치페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가 아니었다. 불꽃도, 포효도, 왕관도 없었다. 그는 그냥 얼음 속에 박혀 있었다. 허리까지.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채로. 각각의 입에는 한 명씩 물려 있었다.


루치페로의 여섯 날개가 펄럭였다. 바로 코치토의 얼음을 만드는 원천이었다. 루치페로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는 추위를 만들고 있었다. 탈출하려 발버둥칠수록, 날개가 더 많은 바람을 만들고, 바람이 더 깊은 얼음을 만들었다.

형벌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 안에 있었다.


깊어질수록 얼음은 두꺼워지고, 눈물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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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단테가 가장 세밀하게 들여다본 곳은 세 번째 구역 톨로메아다. 손님을 배신한 자들의 자리. 고개를 젖혀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죄인들.

앞의 두 구역 죄인들은 그래도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눈물은 흘렀다. 눈물은 출구였다.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통로였다. 그러나 톨로메아에서는 그조차 막혔다. 맨 처음 쏟아낸 눈물이 눈꺼풀을 덮는 얼음 뚜껑이 되어버렸다.


나는 한 구멍 속에 두 사람이 함께 얼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머리가 다른 사람의 모자가 될 만큼 가까이.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2곡


사람과 사람이 얼음 속에 함께 박혀 있는데, 서로를 품은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짓누른다. 온기가 없는 곳에서 가까움은 위안이 아니라 무게다. 배신의 세계에서 가까운 자는 가장 무거운 짐이다.

톨로메아의 눈물 — 고통이 된 눈물의 구조



1 첫 번째 눈물 죄인이 처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고개가 젖혀 있어 눈물이 흘러내리지 못하고 눈꺼풀 위에 고인다. → 눈물이 얼어 뚜껑이 된다

2 봉인된 눈 얼음 뚜껑이 눈을 완전히 덮는다. 새로운 눈물은 그 뚜껑을 뚫고 나올 수 없다. 감정의 출구가 영구히 막힌다. →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

3 눈물이 고통이 된다 혹여 눈물샘이 다시 작동하면, 눈물은 얼음 뚜껑 내부에서 눈알을 더욱 짓누른다. 위안이어야 할 것이 형벌이 된다. → 눈물 자체가 고통의 도구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자 — 그것이 가장 깊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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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란 무엇인가.

단테의 지옥에서 눈물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직 감정이 있다는 뜻이다. 아직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 아직 인간이라는 것이다.


앞 구역의 죄인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비참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이다.

그들은 아직 무언가를 느낀다.

그러나 톨로메아의 죄인들은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마지막 인간적인 것이 빼앗겼다. 얼음은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얼음은 인간성의 소멸이다.

눈물이 난다는 것은 갈 곳이 있다는 것이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테의 톨로메아에서 죄인들은 움직이지 못한다. 갈 곳도 없다. 눈물도 없다. 얼음 속에 박혀 영원히,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 · ·


톨로메아에서 한 죄인이 단테에게 말을 건다. 눈의 얼음을 조금 떼어주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단테는 요청한다. 먼저 신분을 밝히라고.

그 죄인은 말한다. 그리고 단테는 약속을 어긴다. 얼음을 떼어주지 않는다. 단테는 냉정하다 — 무례함도 그에게는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이 장면은 단테 연구자들이 오래 논쟁해온 부분이다. 왜 단테는 약속을 어겼는가.

어쩌면 배신자에게 약속을 지킬 의무는 없다. 배신을 배신으로 갚는 것 — 그것도 지옥의 논리다. 단테는 지옥을 기록하는 자이지, 지옥을 구원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본다. 그리고 신곡으로 쓴다.

내가 너의 얼음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너는 얼음 바닥으로 더 가라앉아야 할 것이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3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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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얼음은 신학적 상상력이지만, 동시에 심리학적 통찰이다. 배신은 사람을 얼린다. 배신당한 자도, 배신한 자도. 신뢰가 깨지는 순간 무언가가 차가워진다. 그 차가움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녹지 않는다. 깊이 얼수록 더. 그리고 그 얼음은 눈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슬픔도, 후회도, 용서를 구하는 것도 — 모두 봉인된다.

배신이 빼앗는 마지막 것은
눈물이다.

· · ·


나는 오늘 아침 커피잔을 들고 생각했다.

따뜻한 것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커피가 식기 전에, 마음이 얼기 전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 따뜻함을 선택하거나, 차가움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쌓여서 어느 날의 나를 만든다.

단테의 지옥에서 얼음은 형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얼음은 형벌 이전에 — 선택이다. 누군가를 배신할 때, 신뢰를 깰 때, 따뜻해야 할 자리에서 차갑게 돌아설 때 — 우리는 조금씩 스스로를 얼리는 꼴이다.

단테가 그 얼음 지옥을 통과한 것은 직시하기 위해서였다. 얼음의 끝까지 내려가서, 그것을 통과해서, 별을 향해 오르기 위해서였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오늘 하루, 조금 더 따뜻한 쪽을 선택하고 싶다. 말도, 눈빛도, 침묵도 — 얼음이 아닌 쪽으로.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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