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초 전투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8
패배한 자의 시, 살아남은 자의 지옥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두 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목숨이다.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로 목숨보다 무겁다. 죽은 자들의 얼굴, 피 냄새, 무너지는 소리 — 그것들은 살아남은 자의 몸속에 새겨진다.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단테 알리기에리는 1289년 캄팔디노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다. 스물네 살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았다. 그것이 『신곡』의 뿌리 중 하나다.
· · ·
1289년 6월 11일. 아르노 강 상류, 캄팔디노 평원.
여름 아침의 햇빛이 갑옷 위에서 부서졌다. 단테는 피렌체 구엘프 당의 기병으로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아레초의 기벨린 군이 정렬해 있었다. 주교 굴리엘미노 우발디니가 지휘했다. 주교가 갑옷을 입고 칼을 들었다. 신의 이름으로 싸우는 자들이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러 왔다.
단테의 손이 떨렸다.
그는 나중에 고백한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영웅은 두려움이 없는 자가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 서 있는 자다. 단테는 그날 그것을 배웠다. 말 위에서, 손을 떨면서.
피렌체 군은 후퇴하는 척했다. 미끼였다. 아레초 군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포위가 시작되었다. 전술은 완벽했다. 아레초 군은 궤멸되었다. 주교 굴리엘미노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수천 명이 죽었다.
단테는 살았다.
그리고 다시 고백한다.
"전투가 끝날 무렵에는 큰 기쁨을 느꼈다."
— 단테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두려움이 기쁨이 되었다. 그 사이에 수천 명의 죽음이 있었다. 단테는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기뻤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 기쁨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고백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그렇게 시작된다.
· · ·
훗날 단테는 지옥을 설계했다.
폭력의 죄인들을 피의 강에 잠기게 했다. 살인자와 폭군들이 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썼다. 그 문장들은 상상이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나는 일찍이 기사들이 전장을 누비고,
돌격을 시작하고, 열병식을 벌이며,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퇴각하는 것을 보았다.
— 단테, 『신곡』 지옥편 22곡
스물네 살의 단테가 말 위에서 보았던 것들. 흙먼지 속에서 달려오는 적군, 무너지는 아군, 살기 위해 돌아서는 등들. 그것이 지옥의 초고였다.
전쟁을 겪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단테의 지옥이 그토록 생생한 이유다. 피의 강은 그가 본 것이었다. 무너지는 소리는 그가 들은 것이었다. 두려움은 그가 느낀 것이었다.
캄팔디노가 없었다면 『신곡』의 지옥은 달랐을 것이다.
· · ·
단테는 아레초를 단순히 적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지옥편 6곡에서 단테는 피렌체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구엘프와 기벨린의 끝없는 싸움. 그는 구엘프 편에서 싸웠지만, 구엘프도 기벨린도 모두 지옥에 집어넣었다. 자신이 싸웠던 편의 사람들도, 자신이 싸웠던 적의 사람들도.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안다.
적도 아군도 모두 인간이라는 것을. 죽은 자들은 깃발의 색깔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피는 구엘프도 기벨린도 같은 색이라는 것을.
그것을 캄팔디노에서 배웠다. 수천 명의 죽음 앞에서.
· · ·
그런데 단테에게 진짜 상처는 전쟁이 아니었다.
칼보다 깊이 찌른 것은 고향이었다.
캄팔디노에서 피렌체를 위해 싸웠던 자가, 피렌체에 의해 쫓겨났다.
1302년. 흑당이 집권했다. 백당이었던 단테에게 추방령이 내려졌다. 돌아오면 화형. 그것이 피렌체의 판결이었다. 자신의 피로 지킨 도시가 자신을 불태우겠다고 했다.
그 아이러니가 단테를 만들었다.
이후 단테는 베로나, 라벤나를 떠돌았다. 고향 없이. 돌아갈 수 없이. 그 유랑의 긴 밤 속에서 『신곡』이 쓰였다. 추방이 없었다면 『신곡』도 없었다.
상처가 문학이 되었다. 패배가 시가 되었다.
· · ·
지옥편 15곡. 단테는 스승 브루네토 라티니를 만난다.
불비가 내리는 사막에서 브루네토가 걸으며 말한다.
"너의 운명은 너를 위해 그토록 큰 영예를 간직하고 있으니
— 그러나 양쪽 모두 너의 적이 될 것이다."
— 브루네토 라티니, 『신곡』 지옥편 15곡
구엘프도, 기벨린도. 피렌체도, 아레초도. 어느 편도 단테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하지만 단테는 그 예언을 저주로 받지 않았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모든 편을 볼 수 있었다. 한 도시의 시인이 아니라 인류의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유랑이 그를 더 넓게 만들었다. 추방이 그를 더 깊게 만들었다.
· · ·
지옥편 26곡. 불꽃 속에 갇힌 오디세우스가 말한다.
"그대들의 씨앗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 오디세우스의 말, 『신곡』 지옥편 26곡
이 말은 전장의 병사들에게도 향한다.
깃발을 위해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위해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캄팔디노의 들판에서 죽어간 수천 명도, 아레초의 주교도, 스물네 살의 단테도 —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고.
전쟁은 사람을 적으로 나눈다. 그러나 문학은 그 경계를 지운다.
단테는 그것을 알았기에 신곡에 썼다.
· · ·
연옥편 1곡. 지옥을 빠져나온 단테의 첫 문장.
"더 나은 물을 향해 이제 나의 작은 배는 돛을 올린다."
— 단테, 『신곡』 연옥편 1곡
지옥을 통과한 자의 선언이다.
전쟁을 겪고, 추방을 당하고, 유랑하면서도 — 더 나은 곳을 향해 돛을 올린다. 캄팔디노의 전장에서 손을 떨던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마침내 별을 향해 돛을 올리는 시인이 되었다.
전쟁은 그를 부수지 못했다. 추방은 그를 침묵시키지 못했다. 그는 쓰는 것으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는 증언해야 한다.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무너진 것들을 대신하여. 단테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옥을 걸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했다.
· · ·
캄팔디노의 전장에서도, 피렌체의 추방령 앞에서도, 유랑의 긴 밤에서도 — 단테는 별을 잃지 않았다.
두려웠다고 고백한 자가 지옥을 설계했다. 기뻤다고 고백한 자가 천국을 그렸다. 그 정직함이 『신곡』을 칠백 년 동안 살아있게 했다.
나는 오늘도 그 별을 따라 한 문장을 옮겨 놓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와서 다시 별들을 보았다."
— 단테, 『신곡』 지옥편 34곡
글
달 숲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