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있는 일과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3
살아 있는 자만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림자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살아 있다. 육체가 있다. 그리고 그 육체가 햇빛을 가로막는다. 그림자가 생긴다. 죽은 영혼들 사이에서 단테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은 눈에 띄는 일이다.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영혼들이 웅성거린다. 달려온다. 가리킨다. 저 사람은 살아 있는 자다. 저 사람만 그림자가 있다.
연옥편 제5곡. 단테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주변의 영혼들이 그의 그림자를 보고 놀란다. 그림자는 빛과 몸 사이에 생기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 하고, 몸이 있어야 한다.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 그림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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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림자를 흔히 어두운 것으로 생각한다. 두려운 것, 피하고 싶은 것.
그러나 단테의 연옥에서 그림자는 좀 다르다. 그림자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은 영혼들에게는 그림자가 없다. 빛이 그들을 통과해버린다. 그러나 단테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그의 몸이 빛을 막기 때문이다. 몸이 있다는 것이다.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Ombra — 연옥에서 그림자가 말하는 것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죽은 영혼들은 그림자가 없다. 빛이 그들을 통과한다. 단테만 그림자가 있다.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표시다.
연약함의 상징이다.
학자들은 그림자가 육체의 연약함, 깨어지기 쉬움을 상징한다고 본다. 빛 앞에 선 몸. 그 몸이 드리우는 어둠.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 앞에 서는 자리.
시선을 모으는 것이다.
영혼들이 그림자를 보고 달려온다. 그림자는 단테를 특별하게 만드는 동시에, 위험에 노출시킨다. 살아 있다는 것은 눈에 띈다는 것이다.
빛과 몸 사이 어디쯤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하고, 몸이 있어야 생긴다. 빛만 있으면 그림자가 없다. 몸만 있으면 그림자가 없다. 둘이 만나는 자리에 그림자가 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그림자 때문에 지체할 때마다 재촉한다.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전진하라고. 어쩌면 시인 단테는 자신에게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성향이 있음을 스스로 의식하고, 조심하자는 뜻에서 이런 장면을 넣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승은 말한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자는 목표에서 멀어진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 베르길리우스
연옥의 논리 전체가 들어 있다. 제4곡에서 베르길리우스가 명상을 강조한 것과는 조금 다른 태도다. 제5곡에서는 활동을 강조한다. 생각만으로는 산을 오를 수 없다. 어느 순간 발을 내딛어야 한다. 그림자를 두고 생각에 잠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 그 사이 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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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리가 온다. 달려온다. 제4곡에서 만났던 양 떼 같던 무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기민하다. 빠르다. 단테가 그림자를 지닌 것을 멀리서 알아채고 전령 둘을 먼저 파견한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는 육체를 지닌 채 여행 중이라고 확인해주자, 둘은 순식간에 자기 무리에게 달려가고, 곧 전체가 고삐 묶이지 않은 말 무리처럼 쏟아져 온다.
이들은 폭력으로 죽은 자들이다. 갑작스레 죽임을 당한 자들.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 선 자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과 화해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그들을 지옥이 아닌 연옥으로 이끌었다.
연옥편 제5곡 —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자들
Ⅰ야코포 델 카세로
정치적 원한으로 추격당해 도망치다 늪에 빠져 익사했다. 죽음의 순간 고해성사를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 숨에 하느님을 향했다. 단테에게 자기 이야기를 이승에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 순간의 화해이다.
Ⅱ부온콘테 다 몬테펠트로
캄팔디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마지막 숨에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악마가 그의 몸을 가져가려 했으나, 눈물 한 방울이 그를 구했다. 단테의 아버지가 그 전투에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의 기적이다.
Ⅲ 피아 데 톨로메이
남편에 의해 창문 밖으로 던져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 그녀는 단테에게 단 두 문장만 한다.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쉬고 나면 나를 기억해주세요." 신곡에서 가장 짧고 가장 애잔한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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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 죽음이 갑작스러웠다는 것.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 고해성사도, 작별 인사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을 향했다. 야코포는 마지막 숨에, 부온콘테는 마리아의 이름으로, 피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마지막 한 순간이 그들을 구했다.
부온콘테는 전장에서 홀로 쓰러졌다. 목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아르비아 강가에 쓰러질 때, 그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악마는 그의 몸을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천사가 말했다.
왜 나에게서 빼앗으려 하느냐?
너는 그의 영원한 부분을 가져가지만,
나는 그의 작은 눈물 한 방울을 데려간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 천사가 악마에게
눈물 한 방울. 라그리메타(lagrimetta) — 이탈리아어 축소형 접미사가 붙은 아주 작은 눈물.
단테의 이 설정은 신학적으로 대담하다. 생전에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마지막 한 순간의 회심이 구원의 가능성을 연다. 그것이 연옥이 존재하는 이유다. 인간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열려 있다. 닫힌 것은 없다. 아직 살아 있는 한.
저를 기억해주세요, 저는 피아입니다.
시에나가 저를 만들었고, 마렘마가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 피아 데 톨로메이
피아의 자기 이름을 밝히고, 태어난 곳과 죽은 곳을 말하고, 기억해달라고 청한다. 그것뿐이다. 긴 설명이 없다. 원망도 없다. 남편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냥 — 기억해달라고.
할 말이 많을수록 짧게 말한다는 것이 있다. 가장 깊은 슬픔은 말이 없거나, 아주 적거나. 피아는 아주 적게 말했다. 그리고 그 두 줄이 700년을 넘어 지금 우리 귀에 닿는다.
준비된 죽음은 없다.
준비된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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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그들의 부탁을 받는다. 이승에 소식을 전해달라고. 자기들이 마지막 순간 하느님과 화해했다고. 가족들이 기도해준다면 연옥에서의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단테는 살아 있는 자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만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연결할 수 있다.
그림자는 그래서 중요하다. 단테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은, 그가 아직 이쪽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단테에게 달려온 이유가 거기 있다. 그림자 하나가 연결고리였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베르길리우스는 말했다. 그런 일에 마음 쓰지 말고 전진하라고. 그러나 단테는 멈추었다. 듣고, 기억했다. 그리고 썼다. 피아 데 톨로메이의 두 줄이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은, 단테가 그 짧은 말을 기억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전진만이 답이 아니었다. 가끔은 멈추고 듣는 것이 더 큰 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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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내 그림자를 보았다.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내 몸을 지나 바닥에 어두운 자국을 만들었다. 그냥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있다. 몸이 있다는 뜻이다. 빛이 있다는 뜻이다. 아직 여기 있다는 뜻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단테의 그림자를 보고 놀랐다. 살아 있는 자가 여기 있다는 것에. 어쩌면 우리도 가끔 잊는다. 우리가 살아 있는 자라는 것을.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아직 말을 전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피아는 단테에게 기억해달라고 했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기억해야 할 누군가는 없는가. 그림자가 생기는 한 — 아직 기회가 있다.
아, 당신이 세상으로 돌아가
긴 여정에서 쉬고 나거든,
저를 기억해주세요.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 피아 데 톨로메이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오늘 하루, 내 그림자를 기억하겠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아직 전할 말이 있다는 신호이며, 멈추고 들을 이유가 있다는 뜻이니까.
글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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