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를 읽다 보면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연옥의 언어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4

연옥의 언어와 단테

알고 읽으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
연옥을 이해하는 열 개의 언어


단테를 읽다 보면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저 이름이 누구인지, 왜 이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는지. 처음 읽을 때는 그냥 넘어가지만, 두 번째 읽을 때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테의 텍스트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신학과 철학과 역사와 시가 한 층씩 쌓인 건물이다. 각 층을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을 읽는다.


연옥편을 제대로 읽기 위해 알아야 할 키워드가 있다. 지도 없이 낯선 도시를 걷는 것과, 지도를 손에 쥐고 걷는 것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오늘은 그 지도를 펼쳐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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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Purgatory — 연옥산의 구조


Paradiso Terrestre 지상 낙원

연옥산 정상.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 베르길리우스가 떠나고 베아트리체가 나타나는 자리. 레테와 에우노에 두 강이 흐른다. 여기서 천국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다.


Sette Cornici 7층 테라스

교만 · 질투 · 분노 · 나태 · 탐욕 · 탐식 · 색욕. 위로 올라갈수록 죄질이 가볍다. 각 층을 통과할 때마다 이마의 P 하나가 지워진다. 고통이 아니라 정화다.


Antipurgatorio 연옥 전정

아직 본격적인 연옥에 들어가지 못한 영혼들이 머문다. 파문당한 자들, 게으른 자들, 폭력으로 갑자기 죽은 자들. 기다림도 정화의 일부다.


La Spiaggia 해변

지옥에서 빠져나온 단테가 처음 발을 딛는 곳. 카토가 지키고 있다. 단테의 얼굴을 씻고, 갈대를 두른다. 새벽빛과 샛별이 있다. 모든 오름의 출발점.


남반구 바다 한가운데 솟은 산 — 지옥과 정반대 방향으로 오른다 · 내려가는 것은 무거워진다. 올라가는 것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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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te Peccata — 이마의 일곱 'P' · 연옥 입구에서 새겨진 일곱 글자

- 교만 Superbia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걷는다. 고개를 들 수 없다.

- 질투 Invidia 눈꺼풀이 철사로 꿰매진다. 보는 것을 멈추고 듣는다.

- 분노 Ira 검고 짙은 연기 속을 걷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나태 Accidia 쉬지 않고 달린다. 꾸준함을 몸으로 배운다.

- 탐욕 Avarizia 땅에 엎드려 얼굴을 바닥에 댄다. 집착을 내려놓는다.

- 탐식 Gola 먹을 수 없는 과일 나무 앞에 선다. 욕망을 바라본다.

- 색욕 Lussuria 불길을 통과한다. 타지 않으면서 정화된다. 마지막 P.


한 층씩 통과할 때마다 천사가 하나씩 지워준다. 단테는 처음에 이것을 알지 못한다. 베르길리우스가 거울을 보라고 말해준다.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기 전에 — 먼저 보아야 한다. 우리도 각자의 이마에 P를 품고 있다. 세어본 적 없지만,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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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을 읽는 열 개의 언어 — 단테의 여정으로

Dieci Parole — 연옥을 이해하는 열 개의 언어

Ⅰ 연옥산과 희망 Mount Purgatory · Speranza

지옥의 불길을 뒤로하고 단테가 다다른 곳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연옥산이다. 이곳은 절망만 가득했던 지옥과 다르다. 영혼들은 고통스러운 벌을 받으면서도 언젠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노래를 부른다. 끝이 있는 고통은 견딜 수 있다. 그것이 지옥과 연옥의 결정적인 차이다.

절망과 희망 — 단 하나의 차이가 전부를 바꾼다


Ⅱ카토와 이마의 일곱 P, Catone · Sette Peccata

연옥의 입구에 도착하자 파수꾼 카토가 나타나 단테의 앞날을 살핀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이교도였으나 자유를 위해 죽음을 택한 점을 인정받아 이 역할을 맡았다. 기독교 사상가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단테의 담대한 설정이다. 곧이어 나타난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칼끝으로 일곱 개의 P를 새겨준다.

교만 · 질투 · 분노 · 나태 · 탐욕 · 탐식 · 색욕 — 위로 오를수록 가벼워진다


Ⅲ 베르길리우스와 정화 Virgilio · Purificazione

충직한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단테는 산을 오른다. 한 층을 통과할 때마다 단테의 이마에 새겨진 P가 하나씩 씻겨 나간다. 지옥의 고통은 외부에서 가해진다. 연옥의 고통은 내부에서 선택된다. 그 차이가 전부다.

이성이 안내하는 정화 — 스스로 갈고닦는 능동적 과정


Ⅳ 지상 낙원과 베아트리체 Paradiso Terrestre · Beatrice

산꼭대기에 다다르자 인류의 고향인 지상 낙원이 펼쳐진다. 이성의 상징인 베르길리우스는 발걸음을 멈춘다. 이교도인 그는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단테 앞에 눈부신 수레를 탄 베아트리체가 등장한다. 단테가 평생 연모한 여인이자 신앙의 상징. 그녀는 단테의 죄를 엄중히 꾸짖으며 진정한 참회를 요구한다.

이성의 끝 · 사랑의 시작 — 베르길리우스가 멈춘 자리에 베아트리체가 온다


Ⅴ레테와 에우노에 Lethe · Eunoe

마지막으로 단테는 레테와 에우노에 두 강물에 몸을 적신다. 레테 강물은 지은 죄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주고, 에우노에 강물은 인생에서 행했던 선한 기억만을 되살려준다. 나쁜 것을 비워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것으로 채워야 온전해진다.

잊는 것과 기억하는 것 — 둘 다 정화의 방식이다


열 개의 키워드가 하나의 이야기로 —

연옥은 변화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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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 이 두 인물의 관계가 연옥 전체의 구조를 말해준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이다. 그는 지옥의 어둠을 통과하게 하고, 연옥의 각 테라스를 설명한다. 이성은 우리를 어둠에서 꺼내고, 고통의 의미를 알게 하고, 방향을 잡아준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천국에 닿을 수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의 끝에서 멈춘다.


더 이상 내 말도, 내 신호도 기다리지 마라.
너의 의지는 이제 자유롭고, 올바르며, 온전하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7곡 ·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말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말이다. 나는 여기까지다. 이제 너는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 이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 더 이상 이성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스승의 마지막 임무는 제자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베아트리체가 온다. 사랑이 온다.

이성이 데려다줄 수 있는 곳까지.
그 너머는 사랑이 이끈다.


나는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이 키워드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연옥산, 7대 죄악, 이마의 P, 카토,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희망, 지상 낙원, 레테와 에우노에, 정화. 열 개의 단어. 그런데 이 열 개가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변할 수 있다. 고통이 있지만, 끝이 있다. 잃어버린 것이 있지만, 되찾을 수 있다. 지워야 할 기억이 있지만, 채워야 할 기억도 있다.


단테는 700년 전 이 이야기를 썼다.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그에게 연옥은 단순한 신학적 개념이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조금씩 정화되면서, 매일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언젠가 닿을 곳을 향해 걷는 것 — 그것이 유배자 단테의 삶이었을 것이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오늘 내 이마의 P는 몇 개인가.
그리고 오늘 하나라도 지울 수 있는가.


연옥은 저 세상에만 있지 않다. 지금 여기, 이 아침에도 있다.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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