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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Nov 28. 2024

청개구리가 변하면?

옛날에 어느 마을에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만 하고 속을 썩이는 불효자 청개구리가 있었다. 엄마 청개구리가 바다 가서 놀아라 하면 산으로 가고, 풀숲에 들어가지 말아라 하면 풀숲으로 들어갔다. 엄마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하면서 울면 아들 청개구리는 "굴개굴개" 하며 반대로 울어댔다. 뭐든 반대로만 하고 말을 안 듣는 아들이 매일매일 속을 썩이자 어머니는 결국 화병에 걸려 누웠고 "내가 죽거든 산에다 묻지 말고 냇가 근처에 묻어다오."라고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엄마 청개구리가 세상을 떠난 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아들 청개구리는 그제야 엄마 청개구리의 말을 듣기로 결심하고 엄마 청개구리의 유언대로 냇가에 무덤을 묻어주었고, 비가 내릴 때마다 혹시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걱정스러워서 엄마 청개구리의 무덤에서 오열하였다. 또 엄마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어떻게 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가겠어... 개굴개굴개굴..." 그래서 비 오는 날씨에만 엄마 무덤이 떠내려가겠다며 밤새도록 오열하고 다른 청개구리들도 개굴개굴 운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청개구리가 비 오는 날 우는 게 이 일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 이석의 <속박물지> 9권에서 처음 등장하는 설화이고, 한중일에도 유사한 민담이 전해진다. 이 민담 때문에 불효자식 혹은 시키는 것과 늘 반대로만 하거나 말을 우라지게 안 듣는 사람을 상징하는 생물이 되었다.              - <나무위키>

예전부터 내려오던, 그리고 누구나 대부분은 알고 있는 청개구리 이야기다. 이걸로 봐서 아무래도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의 왕눈이는 청개구리가 아니었나 보다. 내 기억에 그래도 왕눈이는 위 이야기에 나오는 청개구리처럼 우라지게 말을 안 듣지는 않았던 걸로 봐서.



하숙생은 토끼띠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토끼가 아니다. 아주 딱 청개구리다. 아마도 추측건대 십이간지의 기원과 유래를 말할 때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틀림없이 청개구리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청개구리는 그때도 엄청시리 말을 듣지 않았을 테니 동물들의 달리기 시합에 참여하지 못했겠지. 분명히 그러고도 남았을 청개구리니까.


그런데 이 청개구리 하숙생이 요새 안 하던 을 하기 시작했다. 이쪽 길이 나으니 이쪽으로 가라 하면 저쪽으로 가고, 요것 좀 해 보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던 하숙생이 얼마 전부터 자기가 알아서 이쪽으로 가고, 요것도 해 보겠단다. 필시 청개구리가 맞았는데... 가만, 청개구리가 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변하니 반갑기보다는 왜 이러는지 의아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무슨 속셈이지?

<이미지 출처: pixabay>


청개구리 하숙생은 아침 운동을 한다고 알람 4개를 맞춰 놓고 그것도 못 미더워 평소에 아침잠 없는 하숙집 바깥양반한테 꼭 6시 50분에 깨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과 피부를 위해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야채, 과일 주스를 달라했다. 게다가 단백질 보충을 위해 구운 계란을 열심히 먹어야겠단다. 또 중학생 들어 처음으로 보는 시험을 위해 플래너를 쓰면서 진즉부터 공부를 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공부는 아니지만 제 나름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 더불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되는 수행평가를 잘 보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라, 원래 이런 하숙생이 아니었는데. 내가 알던 하숙생은 '괜찮아'를 연신 외치며 준비 없이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평가에 임하고 숙제를 하는 학생이었다. 운동은 무슨. 줄넘기 좀 해서 키도 키우고 체력도 길러야 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해도 그 밥엔 입도 안 대는 학생이었다. 좋은 음식 앞에 놔두면 하숙집 아줌마의 성의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로 겨우 먹고(내 반찬 솜씨가 아주 별로는 아닌데도 그렇다.) 몸에 안 좋다는 것만 찾아서 먹는 학생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본디 청개구리여서 괜찮으려나.


하숙생의 운동은 일주일이 지난 현재 잠시 중단되었다. 이번주 월요일에는 자신의 컨디션 조절(그간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단다)을 위해 아침 운동을 거르더니, 그 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와 폭설로 인해 아침 운동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시험준비는 원체 엉덩이가 가벼운 하숙생이라 옆에서 볼 떼 전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아주 한결같았으므로 간간이 칭찬도 곁들이면서 먹을 것을 열심히 챙겨주었다. 때때로 여자친구 유심이와 같이 하는 모습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청개구리의 마음을, 행동을 변하게 했을까? 변한 마음과 행동이 얼마나 갈까? 이제 진짜 추워졌으니 아침운동은 안 나갈지도 모른다. 공부는 시험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청개구리의 마음에 동요가 생겨서 이제는 정말 했으면 하는 행동들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계기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청개구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에게서 나왔다다. 그리고 결국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제대로 하기까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효자로 변한 청개구리는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 갈까 봐 비만 오면 운다고 다. 엄마의 유언을 실행하기 전에 진심으로 뉘우쳤다면,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말의 의미와 의도를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청개구리도 사춘기였을 테지. 엄청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사춘기. 그때 청개구리도 청개구리 엄마도 조금만 더 버티며 슬기롭게 대처했더라면, 그랬다면, 지금도 비 오는 날 그렇게 울어대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청개구리가 변하면 어떻게 되는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그러다 어느 날 하숙생이 다시 전 청개구리로 되돌아간다 해도 지금은 일단 믿어보련다. 당분간은 집 밖 음식이 맛있다는 하숙생의 힘 빠지는 소리를 듣더라도 하숙집 밥을 만들면서 기다려 봐야겠다. 사실 내가 믿는 구석이 좀 있기는 하다.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함정이자 결점이지만.


"하숙생, 그거 알아? 청개구리가 변하면 '왕자'가 된대. 혹시 알아? 유심이 보다 예쁘고 멋진 공주님을 만나게 될지."

<이미지 출처: pixabay>



오늘 아침, 어제부터 내린 11월 기준 117년 만의 폭설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등교시간이 10시로 미뤄졌다는 학교 문자를 받았다. 내린 눈 볼 때만 잠깐 좋은 어른들과는 달리 동네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 듯하다. 좀 컸다고 어른인 척하는 중학생 하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제도 하교 후 학교 운동장에서 다수의 친구들과 자신들이 눈덩이라도 된 것처럼 뒹굴다 들어왔더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샤워를 하고는 동상 걸리기 직전의 상태로 추위에 떨며 들어와서는 한참 동안이나 몸을 녹여야 했다. 하긴 토핑 하나 없는 하얀 생크림이 탐스럽고 푹신하게 그것도 아주 듬뿍 올라간, 생크림 운동장 케이크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걸 그냥 지나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도 어제와 똑같은 걸 되풀이하려고 늦게 오라는 학교를 일찍 등교하겠다는 하숙생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불가다. 하숙생 어린이 아니라며? 아침부터 옷이 다 젖어서 학교에 있으면 감기몸살은 직방이다, 놀 거면 차라리 하교 후 놀라고 잔소리를 해댔으나 막무가내다. 말하고 있는 나만 지친다. 그래, 청개구리였지. 내가 잠깐 착각을 했다.


하숙생은 기어코 행복에 겨워 의기양양하게 한 시간 일찍 등교를 했다. 이른 아침 다른 청개구리들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마음을 비우자. 쌓인 눈처럼 하얗게 비우자. 청개구리가 '왕자'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야수'로 변할지도 모르니. Inner peace!


청개구리가 변하면 '왕자'가 된다는 믿음은 취소다. 아니지. 버리기는 아까우니 일단 보류해야겠다. 천일기도라도 해야 할까?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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