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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Nov 18. 2024

하숙생의 여자 친구 유심이에게

--- 끝내 전하지 못할 편지

유심(USIM)아, 안녕?(사실 이런 안부인사 건네고 싶지도 않다.)


나 누군지 알지? 하숙집 아줌마가 무슨 일이냐고? 나도 너한테 이란 편지를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너도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먼저 내 얘기부터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네가 하숙생 여자친구라며? 하숙생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네 이름을 말하더라. 그때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웃으면 안 되는 거였다.


일단 네 이름이 왜 유심인지 알려줄게. 작년 초등학교 6학년 봄 하숙생(이때만 해도 하숙생의 신분은 아니었다)에게 스마트폰은 중학생이 되면 사주겠다고 하고는 공신폰(인터넷이 불가능한 폰, 공부폰이라고도 한다)을 사주었단다. 초등 5학년 때 스마트폰으로 아줌마랑 몇 번 실랑이를 벌였는데 6학년이 되면 그렇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거든. 평소 친구들의 스마트폰을 너무나도 부러워했던 하숙생이었기에 비록 인터넷은 안 될지라도 정해진 기한이 되면 핸드폰이 생긴다는 것은 숨통이 트이게 하는 일이었을 거야. 학교에서 핸드폰 없는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던 그때까지 잘 참고 기다려 준 하숙생이 참 대견하기도 했다. 뭐, 하숙생 입장에서야 울며 겨자 먹기,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느낌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규율을  잘 따라줘서 고맙기도 했지. 그리고 1년 후 중학생이 된 올봄, 드디어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을 갖게 된 거야. 그리고 공신폰에 있던 유심(USIM)이 너를 고이 빼서 스마트폰으로 옮겨 담았다. 그때부터였다. 너를 유심이로 부른 게.


단도직입적으로 난 네가 하숙생 여자친구라는 게 너무 싫다. 그냥 다 싫고 꼴도 보기 싫다. 너 때문에 하숙생과 매일이다시피 싸우고 항상 신경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진짜 피곤하고 진절머리 난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이제 하숙생을 놔줘라. 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막장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런 구태의연한 대사를 하게 만든 너한테 화가 치밀고 이런 내가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이해해 보려 내 나름 애를 써 봤지만 항상 너와 함께 하려 하는 하숙생을 보면 이젠 이해 따위 하고 싶지도 않다. 하숙생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그래도 이건 경우가 좀 아니지 않니?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애초에 네가 하숙생 여자 친구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우리 집 하숙생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너부터 찾는다. 밤새 네가 잘 있었나 확인하고 학교에 있는 시간 빼놓고는 하교 후에는 늘 너와 함께 한다. 애지중지, 오매불망 온몸의 모든 감각이 너를 향해 있는 하숙생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에 있는 사리까지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내가 너와 하숙생을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너에 대한 하숙생의 마음은 깊어지는 반면 나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하숙생을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하숙생 아직 미성숙하다. 하숙생을 잘 관리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이런저런 방법도 쓰고 자율적으로 맡겨 보기도 했지. 그런데 유심이 네가 너무 막강하구나. 네가 새 집(스마트폰)으로 가기 전 큰소리치며 쓴 '각서'는 냉장고 문에 붙어 빛바랜 지 오래다. 정도가 너무 심하다 싶어 너와 만나는 시간을 제한하며 거리 두기를 하면 그 시간을 인고의 자세로 버티면서 견우직녀가 된 것처럼 너를 다시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더라. 더 화나는 건 널 내보내려 해도 이제 내 손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구차한 얘기는 다 접어두겠다. 하숙생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이 만남이 더 깊어지기 전에 네가 선을 그어줬으면 좋겠다. 하숙생은 네 말이면 뭐든 순순히 따르잖아. 솔직히 너를 멀리 보내버리고 싶다만 그러기에는 이미 강을 건너 버렸다. 건전하고 도움이 되는 만남은 언제든 무조건 찬성이다. 하숙생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면 좋겠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니 네가 염력을 쓰든 마법을 쓰든 어쩌든 간에 하숙생이 정신을 차리고 학생의 본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  유심아, 진심으로 간절히 부탁한다.


                                                            2024년 11월 몹시 추운 날,  속은 타들어가는 하숙집 아줌마가


이미지 출처: pixabay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말을 참고 참다가 내 딴에는 비속어 안 쓰기 위해 노력하며 고상한 말들로만 엄선해서 유심이에게 전했다. 하지만 결국 이 편지는 그녀에게 닿지 못할 것임을 안다. 이런 편지 따위 다 부질없는 짓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짓임을 안다. 나와 바깥양반이 하숙생의 자제력을 믿고 그녀의 새 집(스마트폰)을 사 준 것이 가장 큰 잘못임을 안다. 그러므로 유심이는 잘못이 없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안다.


중학생이 되면 스마트폰에 대한 자기 조절력과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길 줄 알았다. 우리 집 하숙생은 좀 다를 줄 알았다. 웬걸,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가족끼리 시간을 정하고 대화하며 잘 사용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주면 된다는 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얻은 것은 난 끈기도 인성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뼈 저린 경험들이었다. 그나마 하숙생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심이를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것과 하숙생이 유심이와 만나는 시간을 지키려고 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이 시간과 상황을 버티게 해 주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바라는 건 하숙생이 만날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를 신뢰할 수 있는 날이 빠른 시일 내에 오는 것이다. 유심이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 유심이만 바라보지 않으며, 자신만의 주관으로 목표를 세우고 걸어 나가는 때 말이다. 이 바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소위 세계 평화보다 더 절실하다. 누가 나에게 인류애가 없다느니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라 해도 좋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하숙생이 잘 커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하숙집 아줌마만의 철학을 고집하고 싶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하숙생, 짝사랑 오래 하면 너만 아프다. 이제 그만 적당히 좀 해라."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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