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내 전하지 못할 편지
일단 네 이름이 왜 유심인지 알려줄게. 작년 초등학교 6학년 봄 하숙생(이때만 해도 하숙생의 신분은 아니었다)에게 스마트폰은 중학생이 되면 사주겠다고 하고는 공신폰(인터넷이 불가능한 폰, 공부폰이라고도 한다)을 사주었단다. 초등 5학년 때 스마트폰으로 아줌마랑 몇 번 실랑이를 벌였는데 6학년이 되면 그렇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거든. 평소 친구들의 스마트폰을 너무나도 부러워했던 하숙생이었기에 비록 인터넷은 안 될지라도 정해진 기한이 되면 핸드폰이 생긴다는 것은 숨통이 트이게 하는 일이었을 거야. 학교에서 핸드폰 없는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던 그때까지 잘 참고 기다려 준 하숙생이 참 대견하기도 했다. 뭐, 하숙생 입장에서야 울며 겨자 먹기,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느낌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규율을 잘 따라줘서 고맙기도 했지. 그리고 1년 후 중학생이 된 올봄, 드디어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을 갖게 된 거야. 그리고 공신폰에 있던 유심(USIM)이 너를 고이 빼서 스마트폰으로 옮겨 담았다. 그때부터였다. 너를 유심이로 부른 게.
2024년 11월 몹시 추운 날, 속은 타들어가는 하숙집 아줌마가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말을 참고 참다가 내 딴에는 비속어 안 쓰기 위해 노력하며 고상한 말들로만 엄선해서 유심이에게 전했다. 하지만 결국 이 편지는 그녀에게 닿지 못할 것임을 안다. 이런 편지 따위 다 부질없는 짓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짓임을 안다. 나와 바깥양반이 하숙생의 자제력을 믿고 그녀의 새 집(스마트폰)을 사 준 것이 가장 큰 잘못임을 안다. 그러므로 유심이는 잘못이 없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안다.
중학생이 되면 스마트폰에 대한 자기 조절력과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길 줄 알았다. 우리 집 하숙생은 좀 다를 줄 알았다. 웬걸,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가족끼리 시간을 정하고 대화하며 잘 사용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주면 된다는 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얻은 것은 난 끈기도 인성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뼈 저린 경험들이었다. 그나마 하숙생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심이를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것과 하숙생이 유심이와 만나는 시간을 지키려고 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이 시간과 상황을 버티게 해 주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바라는 건 하숙생이 만날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를 신뢰할 수 있는 날이 빠른 시일 내에 오는 것이다. 유심이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 유심이만 바라보지 않으며, 자신만의 주관으로 목표를 세우고 걸어 나가는 때 말이다. 이 바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소위 세계 평화보다 더 절실하다. 누가 나에게 인류애가 없다느니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라 해도 좋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하숙생이 잘 커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하숙집 아줌마만의 철학을 고집하고 싶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하숙생, 짝사랑 오래 하면 너만 아프다. 이제 그만 적당히 좀 해라."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