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쓰다 Oct 25. 2024

가을부터 다시 영업합니다!

하숙생이 우리 집에 온 지 10개월이 돼 간다. 처음엔 정말 하숙생처럼 대하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손 많이 가는 하숙생, 제멋대로라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하숙생, 저혈압인 나를 고혈압으로 만드는 하숙생, 닫힌 방문도 다시 보게 하는 하숙생, 수식어를 붙이자면 끝이 없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말이 숨 쉬듯 매 순간 튀어나온다.


하지만 올여름 나는, 하숙생보다 더 맹렬한 기세를 떨친 '더위'란 놈 덕분에 잠자코 여름방학 동안 에어컨을 부여잡고 착실하게 돌밥하는 하숙집 아줌마 본연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집 하숙생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그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상태로 얌전히 지내주었다. 가끔씩 서로 감정이 격해지기는 했으나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감히 올여름을 이길 자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여름을 어찌 보냈는지 모르겠다. 에어컨 없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이것도 벌써 그새 먼 옛이야기가 되었다. 징글징글하게도 더웠던 올여름은 8월 말 물러갈 듯 물러갈 듯하다가 다시 주저앉더니 추석이 지난 9월 말이 되어도 미적거리며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갈 생각이 없는 더위에 지쳐 가을이 오는 것을 포기할 때쯤, 여름은 돌연 여태껏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기 성깔대로 작별인사도 없이 인정사정없이 가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뒤늦게 자기 자리를 찾은 가을이 반갑기보다는 야속했다. 갑자기 바뀐 날씨에 예년과 다른 추위마저 느끼며 준비도 없이 곧 10월을 맞이했다. 그렇게 7, 8, 9월 여름이 하도 유난을 덕에 우리 집 하숙생과 난 여름을 이기기 위해 동상이몽 같은 동맹을 맺고 잠시 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위가 가니 하숙생의 똥고집과 자신한테만 적용되는 궤변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눈과 귀에 거슬리는 태도와 말이 점점 기세등등해졌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오다 보니 급기야 나의 고음불가 오페라가 시전 되는 때가 잦았다. 단풍들 새도 없이 급속동결하고 있는 가을처럼 하숙생과 나의 관계는 어느새 휴전을 끝내고 급속동결 상태로 가고 있었다.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급속동결이 아닌 조직의 모양도 맛도 변하는 급속동결로.


결국 여름 동안 잠시 쉬었던 영업을 재개했다.




오늘은 하숙생과 어떤 요리를 해야 하나...

지지고 볶다 보면 서로 마음에 맞는 요리를 완성하는 그날이 오긴 올까?

그날이 꼭 올 것이라 믿고 싶지만 하숙집 안주인은 처음이라 그런 날이 올지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진짜 그날이 온다면, 하숙집 바깥양반한테 폐업 기념 파티든 여행이든 뭐라도 하자고 해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하숙생, 너는 아느냐? 영업 재개하자마자 얼른 문 닫고 싶은 이 심정을.

그래도 한편으로는 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하숙생, 3개월 동안 쉬게 해 줘서 고마웠어.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