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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Jul 04. 2024

하숙집 아줌마의 부캐는 엄마?

 목 아파요.

평일 저녁 하숙생이 목구멍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은 내 컨디션도 별로라 소리에 양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목이 아프다고 하면 대개 열의 아홉은 그냥 사그라들지 않고 병원을 가야 한다. 이제는 초등생도 아니고 환절기도 아닌 6월인데 잘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는 혼자만의 주문고 하숙생에게 따뜻한 물을 주고는 어서 자라고 했다. 하긴 그동안 학교에 학원에 거기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스포츠대회로 친구들과 연습해야 한다며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하더니 꽤나 피곤했나 보다. 하숙생은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지라 몸이 안 좋으면 목, 코에서부터 증세가 나타난다. 걱정은 되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천근만근인 내 몸뚱이가 힘에 부쳐 하숙생 잠자리를 봐주고는 나도 이불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무거운 몸만큼이나 두 눈꺼풀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하숙생이 화장실을 가는 것 같았다.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먹었나. 목이 더 많이 아픈 건가. 머릿속으로는 하숙생의 상태가 궁금했다. 그러나 내 몸은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오직 머릿속만 분주히 움직일 뿐.


엄마!


잉? 나? 뭔 일이래.

하숙생이 방문을 열고 요즘 잠시 쉬고 있는 나의 부캐인 '엄마'를 부른다. 그러고는 바닥에 곧 널브러지는 것 같은 기척이 들린다.

"엄마, 살려줘. 너무 아파."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다 말고 일어나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대사다. 그건 핑계고 사실은 내 몸이 영 말을 안 들었다. 전 같으면 바로 일어나 사태파악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하숙생의 말이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하숙집 바깥양반이라도 이 이상한 소리에 벌떡 일어났으면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젯밤 먹고 온 그놈의 술이 웬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술보다 내 몸이 더 웬수다. 마치 빨래통에 담긴 물을 잔뜩 먹은 두꺼운 청바지처럼 들어 올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나마 입술이라도 달싹거릴 수 있어 다행이다.


"00 아빠, 얼른 나가봐. 00이가 이상해."

간신히 손을 뻗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바깥양반 몸은 술을 잔뜩 먹어 나보다 더 인사불성인 듯싶다. 부른 내가 바보다. '웬수.'


할 수 없이 몸을 질질 끌고 나갔더니  하숙생이 방 앞에 엎드려 있다. 곁에 온 나를 보더니 울먹거린다. 하숙생이 심상치 않다. 이마를 만져보니 뜨겁다. 얼굴, 목 등 온몸이 용광로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잠이 덜 깬 상황에서 내 몸은 놀란 마음과는 다르게 천천히 움직여져 자못 이성적이고 침착한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서랍을 열어 체온계를 찾아 재 보니 39.7도다.


손으로 느껴진 하숙생의 체온으로 짐작은 했지만 막상 체온계에 나타난 숫자를 보니 몸에 찬바람이 느껴지며 잠이 확 달아난다. 이제 진짜 이성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숙생을 일으켜 침대에 도로 눕히고 빠르게 해열제부터 찾아 하숙생에게 건넨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하숙생은 목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했다. 무엇보다 고열로 몸이 축축 처지고 무거워 손가락 하나 놀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열이 높으니 코막힘은 더 심해졌을 테고 숨쉬기 위해 입을 벌리니 입 안이 마르면서 안 그래도 아픈 목은 더 많이 아팠을 것이다. 침대 위에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전에 화장실 가러 나오기도 버거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웠다. '엄마'라고 몇 번을 불렀는데도 빨리 일어나 하숙생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으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일단 해열제는 먹었으나 시간이 좀 지나야 열은 떨어질 것이고 그동안은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일밖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작은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얼굴, 목, 팔, 몸통, 다리를 차례로 닦였다. 물수건은 금세 따뜻해졌다. 다시 빨아다가 닦이고를 연거푸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잠시 하숙생의 '엄마'였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구나. 겉으로만 센척하고 형인척 하는 청소년이었던 건데 그런 모습이 맘에 안 든다고 내가 먼저 하숙생으로 치부해 버렸구나. 밀려오는 미안함은 다시 몰려오는 피곤함과 잠을 물리치기에 충분했고 그 덕에 열로 달아오른 몸을 열심히 물수건으로 닦아 줄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서서히 땀이 나면서 하숙생의 열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였다. 다른 때보다 열이 늦게 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하숙생의 얼굴은 아까보다 조금 편안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미안한 마음은 벌써 어디론가 가버리고 비몽사몽의 어디쯤을 걷고 있던 내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이러고 있었단 말인가. 이 정신력으로 다른 걸 했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아니다. 엄마니까 했을 뿐,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다였다. 그리고 엄마도 사람이니, 고로 이제 뒷일은 모르겠다. 나도 내 살길 찾아 자러 가련다.



그날 아침은 마침 현충일 다음날로 학교장 재량 휴업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자러 간 사이 열은 더 이상 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힘들어하는 하숙생을 데리고 아침 일찍 서둘러 병원부터 다녀왔다. 원래 보던 의사 선생님이 휴진이라 다른 선생님한테 진료를 보고 집에 돌아와 바로 흰 죽을 쑤었다. 아무것도 먹기 싫겠지만 약을 먹기 위해서는 흰 죽이라도 쑤어야 했다. 하숙생은 몇 술 뜨고 약을 먹고는 다시 누웠다. 밤새 잃느라 잠을 못 자서 그런지 한참을 잤다. 저녁때쯤 되니 열은 완전히 떨어졌으나 목은 다 낫지 않았고 코는 콧물로 더 많이 막혀 있었다. 그래도 열이 떨어지고 몸이 괜찮아지니 살만해 보였다. 내일 다시 원래 보던 의사 선생님한테 가자고 했다.


겨우 한숨 돌리고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난 나에게 하숙생이 말했다.

"엄마, 나 엄마한테 실망했어."

"응? 뭘?"

"내가 어젯밤에 아파서 엄마한테 가서 나 좀 살려달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나와 보지도 않더라. 진짜 실망했어. 아들이 죽어가는데 어쩌면 그렇게 잠만 잘 수가 있어?"

"......"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고열이어서 많이 힘들었다는 것과 빨리 보러 나오지 않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모두 인정하지만 뭘 또 자신이 죽어간다고까지 말하는지. 어쨌든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오늘만큼은 다른 말들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미안해, 엄마도 어제 너무 피곤해서 네가 부르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었어. 그건 정말 미안해."

"그래도 그건 너무 하잖아. 진짜 실망이야."


난 졸지에 죽어가는 아들을 방치한 피도 눈물도 없는, 인정 따위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에미가 되어 있었다. 호르몬 변화로 요새 영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 평소에는 하숙생처럼 굴더니 어제오늘은 내 아들이고 싶은 거냐? 아쉬울 때만 찾는 엄마! 실망했다면 그럼 이제 엄마 아들 하지 말까. 우리 톡 까놓고 얘기해 보자. 지금까지 내가 너한테 실망한 점들을 한번 얘기해 볼까. 머릿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난무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비록 아플 때 찾는 엄마지만 아주 엄마라는 존재를 잊은 건 아니라 생각하니 한동안 하숙집 아줌마로 지내도 덜 힘들 것 같은 하숙생에 대한 작은 믿음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안 되니 이건 묻어두자. 그저 하숙생으로 잘 지내다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제발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맨입으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내가 지금 하숙집 아줌마 하고 있잖아. 당분간은 군소리 없이 계속할 테니 이걸로 퉁치자.

이미지 출처: pixabay


현충일 연휴 기간 동안, 하숙생은 몸조리를 이유로 집에서 쉬면서 초등생 아들로 돌아간 듯한 삶을 잠시 보냈다. 아들로 지낸다고 말을 딱히 잘 듣는 건 아니었지만 몸이 안 좋으니 특별히 모나게 굴지 않아서 서로 감정 상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하숙집 아줌마에 적응이 되었는지 하숙생이 아들 대접을 받는 사이 난 '너는 너, 나는 나'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엄마까지는 아니어도(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기도 하다) 쉬는 동안 빠른 회복을 계속 들여다보고 신경 써줘야 하는 게 약간 귀찮아졌다고나 할까? 어른도 아닌 아이이니 아플 때 보살펴 주는 건 당연하지만 늘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다분히 허세기 있는 자신감 덕분에 고개 내저으며 뒷전으로 물러나 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면 나도 은근히 하숙집 아줌마를 원했던 건 아닌가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나도 아이에게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는 각자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는 사실에 사춘기 하숙생만 욕한 나 자신이 어이없어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웃음 뒤에는 그래도 하숙집 아줌마가 더 힘들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었다.



몸이 회복되자 아이는 다시 하숙생으로 돌아갔다.

본캐가 엄마인지 부캐가 엄마인지 헷갈리는 요즘이지만 엄마를 원하면 엄마로, 하숙집 아줌마를 원하면 하숙집 아줌마로 사는 1인 2역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결국 나와 아이는 이렇게 서로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6월이 지난 7월, 장마가 시작되고서야 알았다.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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