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의 아우라

by 달쓰다

하숙생은 더 철저히 하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숙방에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지 밥을 먹고 나면 바로 들어가 버렸다. 허리가 아픈 건지, 졸린 건지 달팽이집처럼 침대를 이고 산 지 오래다. 친구들과 말한 것은 잘만 기억하던데, 내 목소리는 선택적 음소거를 해 놓았는지 잘 못 듣는다. 추위에도 절대 굽히지 않는 아침 샤워, 보온과는 거리가 먼 얼죽폼(얼어 죽어도 폼생폼사)을 추구하는 외출 시 옷차림,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지 자기 마음대로 다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생활습관은 '이따가요'로 일관하고 공부는 '알았어요'나 '알아서 한다니까요'로 나를 입막음했다.


하숙집을 운영한 지 2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숙집이 잘 굴러갈 지에 대한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모른 채 끝이 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숙생이 나가는 날이 문 닫는 날이겠지만 이대로 방법을 모르고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최근 들어 하숙생에게 뭔지 모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생겼다. 좋은 의미의 아우라면 좋겠지만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작년과는 다른 하숙생의 모습과 분위기, 말투에서 뭔지 모를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는 걸 요즘 들어 체감하고 있다. 처음엔 순전히 어른인 내가 한 발 물러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숙생을 툭 치면 그의 안팎에서 금방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묘한 아우라는 나의 기세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전까지는 하숙생 한 명쯤이야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약해진 건지 체력이 떨어진 건지 이상하게 하숙생 앞에서 두세 번은 생각하고 입을 뗐다. 하숙생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눈치 없는 하숙집 바깥양반은 하숙생이 마음에 안 든다며 더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훈육을 하길래 처음에는 그냥 두고 보다 이제는 눈을 찔끔거리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도대체 하숙생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갱년기 호르몬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호르몬의 변화라고 이해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했다. 결국 이해를 하려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원래 그런 거야로 결론을 내렸다. 내 호르몬이 더 세다고 네가 갱년기를 아냐고 우기고 호소하고 싶었지만, 사춘기 성장호르몬 앞에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세웠던 꼬리를 슬며시 내려야 했다.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얇고 예쁜 유리잔을 소중히 다루며 설거지할 때처럼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중2 때문에 북한이 내려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웃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lazy-1458443_1280.png 이미지 출처: pixabay



그러나 하숙생의 아우라에 눈치 좀 본다고 항상 꼬리(비록 털이 듬성듬성 빠져 볼품없어지긴 했어도)를 내리지는 않았다. 참다 참다 화가 나면 아침부터 소위 한판 뜨는 일은 여전했다. 다만 한판 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하고 나면 마음을 다잡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길게 해봐야 서로 힘들고 관계만 안 좋아지는 데다 안 좋아진 관계는 전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수많은 '한판'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하숙생과 함께 나도 자라고 있었다.


한판하고 난 후면 '진짜 사춘기는 이제부터 시작인가.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었나. 그동안 내가 물정 모르고 하숙생한테 너무 대들었던 거네. 하숙생이 방에서 진짜 안 나오거나 방 빼고 나가버리면 어쩌지. 나는 이제 기약 없는 진정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 건가.' 하는 이런 하릴없고 소심한 생각들을 하곤 했다.


갈수록 하숙생이 우리 집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곁으로 보기에 큰 변화는 없어 보였지만 하숙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아우라는 그와 우리(하숙집 내외)의 관계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물리적으로도 가까이하면 안 될, 심리적으로도 친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거리"가 생겼다고나 할까.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단순히 말 적게 하고 대답 안 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일이 잦았다. 말을 시시때때로 잘하고 논리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자신의 말만 했다. 그런데 그 말의 표현이란 것이 자신만의 시공간이 있어서 대부분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고, 상황이 불리할 때면 자신이 제일 힘들고 고통받는 부류인 것처럼 '나한테만 왜 그러냐, 내 요구는 정당하니 당신들은 기꺼이 들어줘야 한다'의 억양으로 삐딱한 고개와 뚫어질 것 같은 눈빛을 하고 말을 했다. 처음엔 거부감이 생겼으나 계속 들으니 또 적응이 되는 희한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어디서 버릇없게 그러냐고 폭탄 잔소리를 할 텐데 요새는 한마디로 짧게 주의를 준 후 그의 동태를 살폈다. 어차피 더 해봤자 싸움만 나니 일보 후퇴를 한 후 진정이 되면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자신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 잔소리(나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를 너무 싫어해서 덜 하려고 나도 안간힘을 썼다. 자신이 못하거나 뒤처졌을 경우에는 수치심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아 되도록이면 그런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대화를 해도 잘 안 통했다. 아니 원하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들어주기 싫고 상대를 인정해 주기 싫은 느낌이랄까. 서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마는 특히 내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은 벽돌책 분량일지라도 한 줄짜리 그림책으로 대체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벽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마치 그가 철옹성을 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나에게는 두꺼운 벽, 철옹성이겠지만 그에게는 안전한 자기만의 세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누가 그랬는지 어느 책에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숙생들의 뇌는 지금 '공사 중'이란다. 정말로 그렇다면 하숙생은 지금 자신의 세상에서 어떤 집을 짓기 시작한 걸까? 사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당시에 어떤 집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령 기억이 난다 하더라도 나와 하숙생은 다른 존재이니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 공사가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앞으로 우리 사이의 벽은 얼마나 더 두꺼워져야 할까? 벽 두께가 그대로 유지될지 아니면 더 두꺼워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 그가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는 두께였으면 좋겠다.


이봐, 하숙생.

까짓것 '거리두기' 하자고.

나이 더 먹은 내가 좀 참고 기다려 줄게.

이왕 그 세계에 들어갔으니 리모델링을 하든 재건축을 하든 멋지고 괜찮은 건물로 짓고 와.

그런데 솔직히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어.

대신 간헐적으로 짧고 굵게 할게.

그리고 공사하느라 힘들 테니 밥은 열심히 챙겨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도록!



하숙집 아줌마가 건설현장식당 아줌마가 됐다. 얼마나 요란하고 대단한 것을 짓는지 먹을 것을 수시로 찾는 통에 이래저래 나만 힘들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도 나도 지치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내일 반찬 걱정을 하며 온라인 장보기 결제를 클릭하는 중에 맘 속으로 빌어본다.

moon-4450739_1280 (1).jpg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