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더 치유받은 하루
“선생님~ 가야금 하다가 물집 잡혔어요. 터뜨려 주세요!”
하교 시간 무렵,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찬형이는 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손끝에는 맑고 동그란 물집이 맺혀 있었다.
크기가 작아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 같아 나는 갸웃하며 말했다.
“물집은 터뜨리면 감염 위험이 있어.
이 정도 크기면 그냥 두고 천천히 흡수되도록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근데 너무 불편해요.
어차피 집에 가도 엄마한테 터뜨려 달라고 할 거예요.”
찬형이는 확고했다.
“흠… 그렇게 많이 불편해?”
“네. 지난번에도 물집이 잡혔는데, 터뜨리니까 오히려 나았어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터뜨려줄게.”
소독솜으로 물집 주변을 닦고, 멸균된 바늘로 살짝 찔렀다.
톡- 작은 소리와 함께 맑은 액체가 번졌다.
그 순간, 찬형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물집이 터진 손가락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찬형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어 물었다.
“보건쌤은 몇 년씩 있어요?”
뜻밖의 질문에 나는 손을 멈추고 찬형이를 바라봤다.
“몇 년씩 있느냐…는 게 무슨 뜻이야?”
“한 학교에 몇 년 있어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이 학교에 내가 몇 년 동안 있을 수 있냐는 말이었다.
“여긴 4년쯤 있을 수 있어.”
“오! 진짜요?”
“응. 찬형이가 지금 4학년이니까, 졸업할 때까지는 같이 있겠네.”
물론 그전에 이동할 수도 있지만,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진실은 나만 알기로 했다.
찬형이는 해맑게 웃었다.
아싸~!!
순수하고 놀라운 반응이었다.
물집 하나 터뜨려 준 것뿐인데 이렇게 좋아하다니.
이 학교에 있는 동안 함께할 수 있다는 걸 기뻐해 주는 아이.
찬형이의 “아싸~!” 한마디에,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응급 상황이 터지지 않는 한,
보건실에서 하는 일들은 어쩌면 작고 사소하다.
이렇게 물집을 터뜨려 주고,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일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순간들을 깊이 기억하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약을 건넸을 뿐인데,
“선생님, 손이 왜 이렇게 차요? 잡아줄게요.”
또 어느 날은 반창고를 붙여줬더니,
“선생님, 웃을 때 예뻐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음을 건네올 때마다,
그 따뜻함에 내가 먼저 감동하곤 한다.
물집 하나가 만들어낸 작은 선물.
오늘은, 내가 더 많이 치유받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