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미주
점심시간이 한창일 무렵, 보건실 문이 살짝 열렸다.
그 틈으로 미주가 얼굴을 내밀었다.
“선생님, 얼음팩 있어요?”
미주는 평소엔 웬만한 일쯤은 혼자서 툭툭 털고 일어서는 아이였다.
넘어져도 “담임 선생님이 보건실 가보래서 왔는데, 괜찮아요. 안 아파요.” 하며 금세 나가곤 했다.
그런 미주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제 발로 먼저 보건실을 찾아왔다.
“응, 왜? 어디 다쳤어?”
“아니요… 아까 넘어졌는데 손가락이 좀 아파서요. 그냥 좀 대고 있을게요.”
얼음팩을 건네주자, 평소 같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나갔을 텐데
오늘은 보건실 한쪽 구석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드레싱 카 위에 놓인 체온계, 반창고, 연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써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면서도 속으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말수가 적던 미주가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걸었다.
잠시 후, 내가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적고 있자
미주는 힐끗 나를 바라보며 또 물었다.
“선생님, 지금 뭐 해요?”
그제야 알았다.
오늘 미주는 아픈 손가락 때문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해서 보건실에 온 거라는 걸.
나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미주를 바라봤다.
“미주야, 요즘 학교 생활은 어때?”
“음… 좋아요.”
“그럼… 특별한 일 있어?”
미주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 동생이 생겼어요.”
“오, 그래?”
“지난주에 100일이었어요.”
100일.
나는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그 시기는 아마 온 가족의 시선이 아기에게 머무는 때일 것이다.
보건실에도 종종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첫째들이 찾아온다.
괜히 배가 아프다거나 손가락이 아프다며.
“동생 생기니까 어때?”
내 물음에 미주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슬며시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부모님이 바빠요.”
그 말을 하는 미주의 얼굴에는, 묘한 쓸쓸함이 비쳤다.
나는 막내라서 첫째의 마음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부모님이 아무리 미주에게 신경을 쓴다 해도,
백일 된 아기 앞에서는 자연스레 손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미주는 조금은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미주는 종종 보건실에 들렀다.
찜질팩을 부탁하고, 체온을 재고, 그냥 둘러보다 가곤 했다.
하지만 그건 아파서가 아니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곁에 머물고 싶어서였다는 걸 이젠 안다.
언니라는 이름 앞에서
미주는 여전히 아홉 살 어린아이였다.
보건실 한구석에 앉아 오고 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참 다양한 감정과 성장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날 미주는 얼음팩보다
조금의 따뜻함을 얻고 갔다.
얼음만큼 따뜻한 관심으로
아이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