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병원이어도 문을 두드리는 이유
보건실에 자주 오는 아이가 있다.
바로 4학년 하연이다.
“3일 전부터 배가 아파요.”
“음…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하셨니?”
“장염이래요.”
“그럼 잠깐 쉬고 갈래?”
하연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잠깐 쉬다 가더니,
다음날 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엔 손가락을 꼭 쥔 채 들어온다.
표정이 어찌나 진지한지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히게 된다.
“어제부터 손가락이 아파요.”
“그랬구나. 어머니께서는 뭐라고 하셨어?”
하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는… 지켜보자고 하셨어요. 엑스레이는 아무 문제없대요.”
나는 웃으며 하연이의 손가락을 살핀다.
“그럼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네. 그래도 아프니?”
“처음보다 나아지긴 했어요.”
“음… 그래도 많이 아프면 다시 말해줘.”
하연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이네 집은 대대로 의사 집안이다.
할아버지는 병원장, 할머니도 의사.
아버지는 내과, 어머니는 외과.
그 집 자체가 작은 병원이다.
그런데…
집이 곧 병원인 아이가
굳이 보건실에 찾아온다?
이게 참.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조금 부담스럽다.
의학적으로 내가 해줄 처치는 사실 거의 없다.
이미 집에서 전문가들이 판단을 끝냈을 테니까.
그렇다고 아프다며 찾아온 아이에게
“이만 돌아가렴” 하고 돌려보낼 순 없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내가 하연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집에서도 충분한 돌봄을 받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하연이는 종종 보건실 문을 연다.
무엇이 필요해서일까.
딱히 치료할 곳은 없었지만,
그 대신 나는 하연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보컬 학원 다녀요~”
하연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진다.
아프다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마치 숨겨둔 보물 상자를 열어 보이는 아이처럼,
하연이는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요~”
말끝이 반짝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집에서도 따뜻한 손길을 받는 아이지만,
학교에서의 또 다른 쉼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언젠가 꼭 들려주렴.”
나는 슬쩍 웃으며 한마디를 건넸다.
“그리고… 언제든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하연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감사합니다!”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용히 중얼거린다.
‘집에 병원이 있어도
보건 선생님이 필요한 순간이 있구나.’
문이 닫히고 나서야
보건실에 작은 온기가 천천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