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구출하라

우리의 작은 모험

by 달토

북적이는 보건실.
중간놀이 시간의 이곳은 늘 아이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이라
혹시 응급 상황은 없는지 살펴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차례로 이유를 묻고 순서를 정해준다.


“자! 여기서 응급 상황인 사람, 손 들어볼래?”


그때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 틈에 얌전히 서 있던 민아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저… 자에 손가락이 꼈는데, 점점 아파져요…”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아닛, 저 자… 손에 들고 온 게 아니라 손가락에 낀 거였어?


“이리 와보자. 다른 친구들은 조금만 기다려줘. 부탁해.”


민아의 손에는 플라스틱 자가 단단히 끼워져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꽉 낀 건 아니었을 텐데,

혼자 빼보려고 용을 쓰는 사이 손가락은 점점 붓고

결국 아무리 당겨도 빠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비눗물도 바르고, 로션도 바르고, 오일까지 동원해 봤다.
차가운 물에 손을 잠시 담가 부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고,
자를 이리저리 돌려 틈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민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혹시라도 ‘이대로 못 빼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눈가에 가득했다.


“민아야… 안 되겠다.”


“…네?”


“이 자를 부러뜨려야 할 것 같아.”


나는 손가락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내고

곧바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민아 손가락이 자에 끼었는데요…
어떤 방법을 해도 빠지질 않아서 부러뜨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혹시나 상처가 날 수도 있어 말씀드립니다.”


“아이고… 네, 그렇게 해주세요.”


부모님의 짧은 탄식과 함께 동의를 얻은 뒤, 드디어 자를 잡았다.


어린 손 피부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기에

입안이 바싹 마를 만큼 긴장이 됐다.


“자, 이제 조금씩 자를 부러뜨릴게!”






자를 쥔 양손에 힘을 꾹 줬다.

너무 세게 부러지면 혹시 상처가 날 것 같고,

너무 약하게 하면 또 자가 부러지지 않을 것 같아

힘 조절이 정말 필요했다.


뽀각.


헉-


손가락 근처가 아니라 엉뚱한 부분이 먼저 부러지고 말았다.
순간 속으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내 표정 하나에 아이가 더 불안해질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하게 다음 조각을 살폈다.


필요하면 펜치라도 가져와야 하나…

아니, 그건 더 위험하려나…

혹시 손가락 부분만 남기고 다른 데가 죄다 부러져 버리면 어쩌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그러다 마침내, 문제의 부분만 남겨두고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민아야, 이것만 부러뜨리면 돼.
꼭 가만히 있어야 해. 알겠지?”


“네… ㅠㅠ”


뽀… 각…



드디어 빠졌다.

성공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민아는 마치 목숨이라도 구해낸 듯,

울컥하다가 또 안도하고,

슬프면서도 기쁜 표정을 번갈아 지었다.


아마… 이대로 영영 끼어버리면 어쩌나,

저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한가득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마음을 고스란히 함께 느꼈다.

그 작은 손가락 하나를 두고

둘이서 한바탕 모험을 치른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손가락은 안전했다.









그날 오후, 민아가 괜히 보건실 문 앞을 어슬렁거렸다.

기웃기웃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더니


슬쩍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후다닥 사라졌다.


아마도 아침의 요란했던 대작전을 떠올리며,

머쓱하지만 안심된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러 온 게 아닐까.


그 아이의 수줍은 발걸음을 보며 생각했다.

보건실이 오늘도 누군가의 걱정을 덜어냈구나.


참 귀여운 친구다.

…하지만 앞으로 자에 손가락을 넣는 행동은 꼭 자제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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