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말하는 행복에 대하여

작고도 충분한 순간들

by 달토

어느 눈 내린 겨울날.


2학년 도현이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보건실을 찾았다.

체온을 재보니 38.4도. 더 이상 수업은 어려워 귀가하기로 했다.


잠시 후,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귀마개까지 단단히 낀 채 책가방을 메고 돌아온 도현이.



아픈 와중에도 표정은 의외로 멀쩡했다.

부모님을 기다리며 침대에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걸 보니
여간 심심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침대에서 내려와 보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부모님 곧 오실 거야. 열나니까 조금만 쉬자.”

“그렇지만 너무 심심해요. 뭐라도 볼 게 있나요?”


보건실 한쪽에는 어린이용 도서가 꽤 있다.


‘어디 보자. 2학년 수준이면…’

마침, 알퐁스 도데의 <별>이 눈에 띄었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동화책이었다.


“이거 읽어볼래?”


도현이는 책 표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기대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발소리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책 다 읽었어?”

“그럼요!” 도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해 줄래?”


“좋아요!


산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어요.
소년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를 좋아했지요.


어느 날 물에 빠진 소녀를 소년이 구해주고


같이 밤하늘 별을 바라보는데,
소년이 참 행복했대요!”




“잘 읽었구나. 소년은 왜 행복했을까?”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으니까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참 똘똘한 아이였다.


“그럼 도현이는 언제 가장 행복하니?”


나는 속으로 예상 리스트를 떠올렸다.


1. 마라탕 먹을 때

2. 학원 안 갈 때

3. 장난감 살 때


과연 이 중에 있을까.


무엇을 말할지 궁금해 씨익 웃으며 바라보는데,

도현이는 망설임 없이 또렷하게 입을 열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응? 뭐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도현이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9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보건실 문이 다시 닫히고

도현이가 돌아간 자리에는
잠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왠지 마음이 잠깐 멈칫했다.


어른이 되면서 놓친 건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이었구나 싶었다.


지금 나는 내 옆의 따뜻함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진 않을까.


행복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우리는 어릴 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가끔 그렇게,

어른에게 중요한 걸 다시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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